맛집 앞 긴 줄에 서서

창평 순대국밥

by 연희동 김작가



여행을 하다 보면 먹거리도 볼거리 못지않게 중요하다. 무얼 먹을까...,

고창 선운사는 풍천장어 구이가, 담양에서는 대통밥과 떡갈비가 유명하였다. 그 지역만의 특징이 있는 대표적인 음식은 그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재료가 들어간다.


창평의 한옥골목에서 이곳에 사는 원주민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마침 자기 집에 온 친척들을 배웅하고 돌아서는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 국밥 때문에 내 주머니가 또 가벼워지는 구만요''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주머니까지 뒤집어 보여줘 가며 너스레를 떠는 아저씨가 순박해 보였다.

국밥이라고 했던가? 그렇지 않아도 저녁식사 장소를 물색하던 중이었다.


''국밥이 맛있나요?''

''그럼요 창평 순대국밥이 유명하지요''


순대라는 말에 더 묻지 않아도 되었다. 시장에서 파는 순대를 어쩌다가 사 먹은 적은 있지만 순대를 물에 말아놓은 국밥은 전혀 먹어본 적도 먹을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까 자신의 주머니가 가벼워진다고 한 말은 그걸 먹으러 이곳으로 오는 친척들을 자신이 대접하기 때문이라는 뜻이었다.


창평 시장에는 순대국밥집이 많았다. 식당 대부분이 순대국밥을 파는 집이었다. 코로나 여파 때문인지 식당들이 텅텅 비었다. 그런데 유독 한 집만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순댓국을 먹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던 나조차 그 맛이 궁금했다. 줄 끝에 서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이 집이 그렇게 잘하나요''


자신도 그저 입소문만 듣고 왔을 뿐이란다.

얼마나 맛이 있길래..., 묘하게 순댓국에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인생 처음 먹어보는 순댓국인데 이왕이면 입소문 난 집에서 먹어보자며 줄 끝에 섰다.


음식점 앞에서 줄 서기를 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의지대로 그 줄에 섰는가 하면 또 누구는 소문만 믿고 서기도 한다. 나는 지금 이도 저도 아닌 줄 서기에 의한 줄 서기를 하고 있다.


얼마 전에 줄을 서서 들어간 식당은 그 전날 TV프로에 맛집으로 선정된 곳이었다. 그 식당은 마침 우리 집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점심 식사 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이어서 아직 오픈을 하지 않았는데도 문 앞에는 이미 줄이 기다랗게 형성되었다. TV에 출연한 것이 커다란 광고효과를 가져다준 것이다. 줄끝에 서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서 묻는다


"이 집이 맞지요".

"네 맞아요"


주어도 없이 묻는 맥락 없는 말에도 용하게 알아듣고 대답해 주었다. 내 뒤로도 줄이 생겼다.


정오가 되자 식당의 문이 열리고 기다리던 사람들은 마치 국수가락처럼 쭈욱 식당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내 앞에 두 팀을 남기고 줄이 끊겼다.

나머지 손님들은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자리를 비워줄 때까지 유리창 너머에서 상상으로 배를 채워야 한다.

이만큼의 기다림과 배고픔이라면 웬만한 음식쯤은 다 맛이 있을 것 같다.

맛집으로 소문이 난 집들은 여유 있게 식사를 할 수가 없다. 기다리고 있는 뒷사람들을 생각해서 부지런히 먹고 일어서 줘야 하기 때문이다.

초조하게 바라보는 눈들이 안보는 척 레이저를 쏘고 있는데 여유를 부리다니...,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구석자리를 배정받았지만 대수롭지 않다. 차라리 창가에서 멀수록 수많은 눈빛 레이저를 피할 수 있어서 어쩌면 구석진 자리가 편할 수도 있다. 이제 곧 기대하는 음식을 먹게 될 텐데 구석이면 어떠리,


주인은 며느리에게도 밝힐 수 없는 비법을 카메라 앞에서 과감하게 공개하였더랬다. 소스 하나를 만들기 위해 서른 가지가 넘는 재료들을 버무리고 찌고 발효시키는 정성은 온 천하에 공개한 들

너무나 복잡해서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비법들이었다.


드디어 우리의 식탁에도 음식이 놓였다. 이 음식 하나를 완성시키기 위해 그렇게 오랜 시간 연구하고 노력을 했다니 음식 앞에서 겸허해 지기는 처음이었다. 마치 의식을 치르듯 조심스럽게 맛을 음미해본다.

그런데

너무나 기대가 컸던 걸까? 왠지 내 입맛에는 슴슴했다.

MSG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재료 본연의 맛이어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함께 간 남편도 다른 집과 별 차이가 없는 맛이라고 했다. 오랜 시간 줄 서서 기다린 대가치곤 그리 특별한 맛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내가 방송을 통해서 보고 기대했던 맛에는 미치지 못하는 맛이었다.

며칠 후 자전거를 타고 그 집 앞을 지나다 보니 그날의 긴 줄은 간 곳이 없이 사라져 버렸다.


창평의 순대국밥집은 어제오늘 유명세를 떨친 집이 아닌 듯했다. 오랜 시간 고객을 유지하는 집은 분명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줄이 점점 줄어들고 우리 차례가 되었다.

커다란 질그릇에 보글보글 끓는 순대국밥이 내 앞에 놓였다. 이전에 순대국밥을 먹어보지 않은 나는 비교대상이 없지만 첫 숟갈이 나쁘지 않았다. 두 번째도 세 번째도 연거푸 순댓국을 떠마시는 나를 보고 남편이 정말 처음 먹어보는 것 맞냐고 물을 만큼 순댓국에 열심하였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맛을 품고 있는 순댓국이었다.


최근에 먹방에 관한 프로가 많아졌다. 종방까지 합한다면 일주일에 서너 집은 TV에 나온 맛집으로 유명세를 탄다. 같은 음식이라도 음식을 맛있게 복스럽게 먹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먹는 모습만 봐도 충분히 맛있어 보인다. 광고에 출연한 그들은 일을 할 뿐이다. 널리 소문내어서 사람을 모으는 게 광고다.


소개된 맛집들은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그 앞에 긴 줄이 형성된다. 광고의 효과다. 하지만 그 줄은 언제라도 방향을 틀어 또 다른 맛집을 향하여 떠날 준비가 된 미미한 줄이기도 하다.

가끔은 SNS의 리뷰를 보고 음식점을 선정하고 가게 앞에 붙은 'TV 소개된 맛집'이라는 표지를 보고 서슴없이 들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한 집 걸러 탄생하는 맛집도 이제 그 의미가 없다.


맛집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입소문을 타고 멀리서도 손님을 찾아오게 하는 맛집이 진짜 맛집이다.

좋은 재료로 한 가지 음식을 꾸준히 만들어내는 맛집이 있는가 하면 자꾸만 변하는 입맛에 맞는 음식을 개발하여 손님을 이끄는 맛집이 있다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난 집. 언제 와서 먹어도 그 맛을 볼 수 있는 집이어야 한다.

사람들의 입맛은 가지각색이라 모든 사람들의 입맛을 전부 맞출 수는 없지만 그런 사람조차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게 진짜 맛집이다.


여행 후 일상으로 돌아온 뒤 가장 적응이 더딘 것이 주방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그동안 편안하게 남이 해 주는 밥을 먹다가 직접 해 먹어야 하는 게 힘들다. 이럴 때 생각나는 것은 여행 중에 먹어 본 음식들이다.


나도 놀랐다. 순대국밥을 처음 먹어본 내가 오늘 아침, 매콤 구수한 순대국밥이 생각날 줄은...

창평시장의 순대국밥 집은 단연코 맛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