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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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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Sep 03. 2021

욕쟁이 할머니

두 개의 뉴스를 보고

뉴스를 보고 화가 났다. 어제의 사회면 기사였다. 경기도 여주에 사는 고등학생이 길가에 앉아있는 할머니에게 담배를 사 오라며 들고 있는 꽃으로 할머니를 툭툭 때리는 장면이 착되었다. 또 다른 학생은 이 영상을 찍으며 낄낄거리며 웃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과연 우리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내 눈을 의심하며 영상을 보았다.

그리고 화가 났다. 막돼먹은 학생뿐만 아니라 손자 같은 어린놈들에게 당하고만 있는 60대 할머니에게도 뭔가 모를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나와 같은 세대, 이 시대의 60대들이 깡그리 당하는 수모처럼 느껴졌다.


또 하나의 뉴스는 대구시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자신의 친할머니가 잔소리하고 심부름을 시킨다는 이유로 형제인 두 명의 손자가 함께 할머니를 살해한 뉴스다. 이런 패륜이 또 어디 있을까...

둘 다 똑 같이 청소년들이 저지른, 어른을 능멸하는 부도덕적인 사건이지만 여주의 사건은 신체적으로 약하다는 이유로 당해야 했고 대구의 사건은 혈육인 손자들에게 어른의  도리를 하려다 당한 사건이다.

도대체 이 시대의 어른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해가 갈수록 세대차이로 인한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하긴 우리 시대에도 어른들을 꼰대라는 은어로 지칭 벽을 두었었다. 우리 시대의 꼰대들은 두려움을 몰랐다. 부정한 정치인들은 술자리의 안주가 되었고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을 보면 나이를 내세워 핏대를 올렸다.

만약 꼰대들 앞에서 어린놈이 담배를 피우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뉘 집 자식이건 꼰대의 험한 욕받이가 되어야 했다. 히피 스타일로 한쪽 눈을 가린 장발을 쓸어내리며 거들먹거리던 젊은이들은 꼰대의 간섭을 듣는 척 하지만 실제는 꼰대가 스스로 지치기를 바라며 시간을 세고 있었을 뿐이다. 미니스커트 핫팬티가 웬 말이냐며 세상 말세라고 한탄하는 꼰대에게 뭘 그만한 걸 가지고 놀라시나 세상이 변하고 있는데..., 말대답 대신 웃음으로 어물쩍 넘겨버리던 7080 세대, 그들은 꼰대가 싫었지만 절대  항하지 않았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고 그 말을 자랑스러워했으니까....,


요즘 아이들은 '꼰대'가 아니라 다른 말로 '라테'라 부른다. 세월은 무심하게도 바지를 땅에 끌고 다니던 힙합 청년들을 라테로 만들었고 미니스커트를 입었을 뿐인데 세상 말세의 주역이 된 어여쁜 처녀들을 꼰대와 이름만 다른 라테로 만들.


내가 라테가 되어보니 이제야 꼰대들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어떨 때는 요즘 막돼먹은 아이들의 뇌를 해부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시대 라테들은 꼰대처럼 눈에 차지 않는 젊은이들이 혹여 있다 하여도 가르쳐 들지 않는다. 무턱대고 용감했던 꼰대들과 달리 몸을 사린다. 이해되지 않지만 이해하는 척한다. 모르는 척 넘어간다. 부딪혀봤자 나만 손해지 괜히 나섰다가 몸이라도 상하면 큰일, 슬며시 눈을 돌린다. 그들 역시 ''너나 잘하세요'' 라며 꼰대들을 회피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성의 옷을 입고 조금은 비겁해졌다.

못된 녀석들은 그중 약자를 골라 담배 셔틀을 시킨 것이다. 요즘 아이들 무섭다고 한다. 어른들은 더 무서워져야 한다.


무서워져야 한다고? 할머니가 잔소리했다고 죽였대잖아 그것도 손자들이..,  죽어도 할 말은 했으니 그 죽음은 헛되지 않다 비록 그 할머니 눈감고 편하게 저승은 가지 못하였겠지만 죽어서도 손자가 바르게 살길 원했을 것이다. 못된 손자 놈들, 감옥 안에서 처절하게 회개하겠지 평생을 후회하며 살지도 몰라. 너희의 아랫세대들은 그러는 너희를 뭐라 부를지 모르겠구나.

대도 라테도 아닌 분명  너희 모두를 멍텅구리로 만드는 어떤 단어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라테는 말이지.....



옛날 내가 살던 동네에 늙고 기운은 없어도 사람들을 꼼짝 못 하게 하는 무기를 가진 할머니가 있었지 누구나 한방에 쓰러뜨릴 수 있는 이 어마어마한 무기는 바로 욕이었단다.

 할머니는 정의의 화신처럼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였지

만약 세상의 순리를 거스르는 놈들이 있다면 앞뒤 재지도 않고 원색의 욕으로 독화살을 쏘아 백발백중 심장을 명중시키는 거야

할머니의 욕은 속어가 아닌 불의를 징벌하는 법이었어. 잘못의 정도에 따라 욕의 수위도 달랐거든,

요즘에도 가끔 어느 식당에 욕쟁이 할머니가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이미테이션에 불과할 뿐이야

진짜 욕쟁이 할머니는 어른 앞에서 담배 피우는 놈은 허리를 담배 분지르 듯 분질러 놓아야 한다며 분개하였고 저보다 약한 여자에게 함부로 하는 놈에게는 저런 것도 사내 새끼냐며 **을 떼서 개나 주라며 손 하나 대지 않고 불구를 만들어 버렸지.

그뿐만이 아니었어 진짜 욕쟁이 할머니는 남의 가정을 파탄 낸 불륜남녀에게 욕도 주기 아까운 것들이라며 목구멍 저 깊은 곳에서 가래를 뽑아 퉤하고 뱉고 뒤도 안 돌아보고 가더라,


쟁이 할머니는 욕으로 도덕과 윤리를 가르쳤다. 그리고 자신을 지켰다. 참 아니러니 한 이야기지

젊은이들은 뒤돌아서 망할 놈의 노인네라고 수군거렸지만 망할 놈의 노인네가 사라진 요즘 세상이 점점 망해가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말이나 욕설. 악플을 달면 모욕죄 내지 명예훼손죄라는 죄목으로 처벌을 받기도 한다지. 하지만 어린놈에게 담배셔틀을 부탁받았다는 뉴스를 보고 나니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욕쟁이 할머니가 그리워지는군,  욕쟁이 할머니가 저승에서 이 소리를 들었다면 어떤 욕으로 우리의 가슴을 시원하게 뻥 뚫어 주었을까? 나도 알아 어린 너희들보다 더 나쁜 어른들도 많다는 걸.


욕을 배워둘 걸 그랬나 보다. 하루 종일 마음이 답답하다. 이럴 땐 욕쟁이라고 소문나도 좋으니 시원하게 욕 한바가지 퍼 부어 주고 싶다.




웹툰 소설을 드라마화한 모범택시, 약자들의 편에 서서 시원하게 복수해주는 속이 시윈 해지는 드라마였다


커버 이미지  YouTube 리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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