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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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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Aug 21. 2021

그 옛날의 여수 밤바다

글쓰기 좋은 밤이다. 와인 한잔에 곯아떨어져서 초저녁부터 일찍 잠이 들었다. 새벽인 줄 알고 눈을 떴더니 겨우 한 시, 이미 내 곁을 한 번 다녀 간 잠이 다시 올리 없다는 걸 알기에 더는 미련을 두지 않고 조용히 거실로 나와서 아이패드를 켰다.

낮에 워터 풀장에 다녀온 손녀가 꿈속에서도 놀고 있나 보다. 뭐라고 잠꼬대를 한다. 방 안에서 들리는 코 고는 소리조차 평화롭게 들리는 밤, 소소한 행복을 활자로 묶어 담아둬야겠다.

무엇보다도 지금 내 눈앞에는 여수 밤바다가 펼쳐져 있지 않은가...,


딸아이 가족과 함께 여수에  왔다. 이곳 여수는 뒤늦게 임용고시를 치른 남편이 교사로 첫 발령을 받은 곳이었다. 뜻하지 않게 주말부부가 되어 남편 혼자 사는 이곳으로 가끔 내려오면 풍부한 먹거리와 허물없이 다가오는 사람들의 정스러움마냥 주저앉고 싶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 트기가 무섭게 시내 중앙로의 길 편으로 끝없이 길게 늘어  새벽시장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었는데 지금도 그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을지 궁금하였다.


남편이 이곳에서 생활하던 15전의 여수와 지금의 여수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2012년 세계 해양박람회를 치러낸 이후로 지금은 그 옛날의 소박한 항구도시가 아닌 화려한 관광도시로 변해버린 여수,

편과 함께 즐겨 던 게장골목도 단정하게 다듬어져서 번듯하여졌고 산등성이에 오밀조밀 모여있는 동네 집들이 모두 주홍빛 지붕을 이고 있는 모습흥미롭다. 멀리서 보면 흡사 이국적인 모습의 마을처럼 보이지만 내 눈에는 어쩐지 남의 옷을 빌려 입은 듯 어색해 보였다. 그렇지만 남편이 매일 학교를 오고 가며 건너던 돌산대교와 겨울에는 섬 전체가 붉은 동백꽃으로 물들던 동백섬만은 예전 모습 그대로 였다.


우리가 묵고 있는 리조트에서 바라보면 반대편 해안가에 불빛들이 밤바다에 투영되어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세련되고 아름다워진 도시의 모습과 달리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 볼품없이 변하는 인간의 삶은 먼바다 만큼이나 격차가 생긴 듯하다.


남편은 이곳 돌산대교 건너 바닷가에 위치한 아파트에서 살았다. 베란다 앞에 펼쳐진 푸른 바다 뷰, 이 곳은 낮과 밤의 풍경이 달랐다. 군데군데 디딤돌처럼 놓인 무인도를 온통 내 것처럼 집 안에 걸어 두었던 낮과는 달리  밤이 되면 칠흑 같은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선의 불빛이 외로운  되어 반짝거렸다.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들과 낮게 비상하는 갈매기, 바다 위로 튀어 오르는 작은 물고기들이 살았던 바닷가 마을에 지금은 근사한 호텔이 서 있고 갈매기 대신 짚라인을 즐기는 사람들이 쏜살같이 날아가고 있었다.


딸네 부부는 손녀와 함께 모터보트를 타며 액티비티를 즐기는 동안 나와 남편은 이곳 종합 시장으로 왔다.

남편이 퇴근길에 사들고 오던 연탄불에 구운 장어 양념구이집이 혹시 있을까 해서 찾아보았지만

말끔히 단장된 어시장에 옛날의 허름한 식당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도 우리에게 추억의 한편을 남겨 둔 곳이 있었다

새로 단장을 한 종합시장의 길 하나 사이로 흑백사진 같은 재래시장의 모습이 예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맞아, 바로 이 모습이었어..., 깡그리 바꿔놓은 줄 알았는데 15년 후에나 돌아온 나 같은 여행객이 그리움을 채울 장소가 있다는 게 너무나 반가웠다.

시장바닥에 좌판을 벌이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생선을 파는 상인들의 모습이 예전 그대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었다.

서대 한 무더기가 수북이 올려져 있는 채반 위에 두 어 마리를 더 집어 얹어주며 싸게 해 줄 테니 사 가란다. 서울보다 싼 가격에 놀라고 싱싱함에 더 놀란다. 이제야 여수답다.

아..., 물건을 사고 카드를 내민 건 나의 불찰이었다.


''카드는 저 짝이나 되지 이 짝은 안 돼야''


이들에게 저 짝은 차가운 카드의 세계, 깔끔하고 단정한 길 건너 종합시장을 말한다.

횡재나 한 듯이 이것저것 사다 보니 어느덧 남편과 나의 양손에는 물건으로 가득이다. 살아서 꿈틀거리는 문어와 갓담은 갓김치, 서대, 고들빼기, 아구 포, 등...,

나는 세련되고 깔끔한 도시도 좋지만 이처럼 변하지 않고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모습이 더 좋다. 그런 곳에서는 아낌없이 지갑을 열게 된다. 그 안에는 힘들어도 꾸준히 참고 견뎌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값도 포함되어 있다.


이 밤에도 젊은 연인들은 여름밤 바닷가의 낭만을 즐기고 있나 보다. 어디선가 나지막하게 누군가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여수 밤바다.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

네게 들려주고파 전활 걸어

뭐 하고 있냐고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가사가 귀에 쏙쏙 들어와 박힌다. 스커버스커의 노래 여수 밤바다는 전 국민 애창곡이 될 정도로 유명한 노래다.

여수를 발전시킨 것은 엑스포지만 여수를 기억하게 하는 것은 장범준이 부른 노래라는 말도 있다.

혹자는 이 노래가 여수를 먹여 살린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닌 것은 이 음악을  들으면 여수에 가고 싶고 또 여수에 오면 이 노래를 들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곳으로 오는 승용차 안에서 내내 이 음악을 들으며 따라 부르기도 했다. 이처럼 노래로, 맛으로, 또는 아름다운 경치로 여행지를 추억 하겠지만 나는 옛날의 기억을 그대로 떠오르게 하는 정경에서 그곳을 억한다.

나폴리에 비교하는 지금의 화려한 밤바다도 좋지만 그 옛날의 쓸쓸했던 여수 밤바다가 나는 더욱 좋다. 그때는 바다보다 내가 더 젊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수 종합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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