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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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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Sep 22. 2021

쉬운 일이 가장 어렵다

 우리 아버지는 언제나 어머니보다 한 발 앞서서 걸으셨다. 멀리서 아버지 뒤를 힘겹게 따라가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안타까웠으며 멀어진 거리만큼 두 분의 세월이 느껴졌다.

해외여행을 하면서 외국에 사는 노 부부의 다정한 모습에 눈길이 다. 특별한 행동도 아닌데 나는 그 모습이 그렇게 좋았다. 함께 손 잡고 함께 속도를 맞춰 함께 목적지를 향하여 걸어가는 것, 그게 부부의 모습 아닌가?

남편과 약속을 했다 우리도 나이 들면 저렇게 손잡고 함께 걸어가자고...,


남편이 내 앞에서 멀찍이 걸어간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어쩜 저리도 부모님을 닮아갈까? 오히려 한 술 더 떠서 날더러 빨리 오라고 성화다.

부부가 손잡고 걷는 일.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란 걸 요즘 와서 새삼 느낀다.

 

이웃에 나와 비슷한 연배의 부부가 살고 있다. 전직 대학 교수였던 이 부부는 금실도 좋아 보인다. 언젠가 골목에서 부부와 마주쳤다. 함께 손을 잡고 오다가 나를 보더니 휘딱 손부터 풀었다. 그리고 몹시 겸연쩍은 미소를 보냈다. 보기 좋은데요 라고 하려다가 말을 삼켰다.

젊어서는 우리도 곧잘 손을 잡고 걸었다. 그것도 모자라 잡은 손을 흔들면서 걷기까지 했다. 아이가 생기면서 한쪽 손에 아이를 잡고 아이를 통해 서로 온기를 느끼며 걸었다.

남편과 내가 손을 잡지 않게 된 건 숫제 남의 이목 때문이었다.

오십 대 중반쯤 우리는 처음으로 주말부부가 되었다. 서울에서 회사에 다니던 남편이 학교로 이직을 하면서 남쪽 도시로 발령이 났다. 일주일에 한 번 남편은 가족이 있는 서울로 오기도 하고 또는 내가 남편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일주일 만에 만나는 남편이 처음에는 서먹하다가 이내 손을 잡고 걸으면 서먹함이 해소되었다. 어느 때인가는 내가 남편이 있는 지방의 도시로 내려가서 그곳에서 함께 시장에 다녀왔다.

다음 날 학교 교무실에서 마주친 여선생님이 "어제 사모님과 손잡고 가시는 것 봤어요 "라고 하더란다.

지방 소도시에서 학교 선생님이 부인과 손잡고 걷는 일이 남사스러운 일이라는 걸로 받아들였던지 이후로 남편은 잡은 내 손을 슬며시 뺐다.


손의 언어, 전 세계 공통어인 수화는 손 만으로 약속된 언어를 만들어 서로 소통한다. 수화를 모른다 해도 손하나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표현은 다. 하트를 만들어 보이거나 엄지를 척 들어 보이는 것만으로도 말보다 더 큰 감동을 다.

어린아이들이 친구의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모습은 세상 무엇보다 사랑스럽다. 누구나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가장 먼저 손부터  덥석 잡는다.


서로 손을 잡는 일은 쉽고도 어렵다.  남 녀가 서로 만나 손을 맞잡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흐르는가( 개인차가 있겠지만) 하지만 누구나 손을 잡고 나면 부척 친해지게 된다.

우리의 신체 중에서 사랑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 건 손이다. 아픈 곳을 쓸어 만져 주는 할머니의 손, 눈물을 닦아 주는 친구의 손,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선생님의 손, 등을 다독여 주는 부모님의 손,  이밖에 셀 수 없을 만큼 다정한 손길이 있다.  


손하나 잡는 일이 뭐가 어렵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손 하나 잡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언제부터인가 다른 사람의 손을 잡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딸도 아들도 남편도 친구의 손도 잡아 본 적이 까마득하다. 아이들이 자라고 저 혼자 걷기 시작하면서 놓기 시작한 손이 점점 멀어져 이제는 같은 식구끼리도 손을 맞잡고 바라보는 일이 없다.

 

공원 산책 중에 노년의 부부가 손을 잡고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서 바라보니 할머니의 왼손이 가슴 아래에서 고정되어 있다. 왼발도 불편해 보였다. 문득 더 늙기 전에 아이처럼 친구처럼 남편의 손을 잡고 걸어보고 싶었다. 누구 하나 기운이 없어졌을 때 의지하고 보호해 주는 손도 고맙겠지만 같은 목적지를 향해 나란히 손잡고 걷는 모습은 누가 봐도 행복해 보인다.


손하나 잡는 일, 그렇게 쉬운 일도 다시 시작하려니 몹시 어색해진다. 아이 버릇 여든까지 가줬으면 하는 버릇 중에 서로 손을 잡는 일만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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