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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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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Sep 29. 2021

반갑지 않은 친구와 함께 살아가는  법

점하나 없이 푸르고 맑은 가을 하늘, 그런데 저게 뭘까? 동그란 실타래 한 올이 내 눈길 가는 대로 동동 떠다니고 다. 옥에 티가 맞다.

하늘뿐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모든 초점에 파리 한 마리가 어지럽게 날아다니고 있다. 손으로 휘저어 쫒아도 보고 을  비벼도 보고  씻어봐도 사라지지 않는 검은 물체, 참 황당한 일이 내  안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비문입니다. 눈 속을 채우고 있는 유리체라는 물질 속에  부유물이 생겼고 그 상이 점처럼 보이는 현상이라 병은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러다 보면 자연히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비문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놈과 오늘부터 친구처럼 지내라고 한다. 반갑지 않은 친구가 나에게로 왔다.


그동안  나는 눈을 너무 혹사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글과 함께 평생을 살다 보니 내 몸의 다른 기관보다 눈의 노동이 더 심했다.

사십 대에 근시 안경을 썼고 오십 대에는 돋보기를 써야 다. 급기야 시야가 온통 뿌여지면서 백내장 진단이 내려졌고 년에 혼탁한 수정체를 제거하고 인공수정체를 삽입하는 수술을 했다. 수술 후, 그동안 늘 함께했던 안경을 벗어냈다. 렌즈를 통하지 않고  눈으로 글자를 또렷이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맑고 투명 시야와 되살아난 본연의 색들을 바라보면서 다시 젊음을 되찾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평생을 또렷한 시력으로 살 줄 알았는데 비문이라니.., 더구나 이 반갑지 않은 손님을 친구처럼 받아들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은 탐탁지 않은 이웃을 무조건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신부님의 말씀보다도 더 힘든 보속이었다.


눈에 거슬리는데 모른 척 함께 살라니 그보다 더한 고역이 없다. 뭐든 내  눈길이 머무는 곳에 제일 먼저 날아가 앉는 놈, 희고 맑고 깨끗한 곳을 바라보면 더욱 그 형태가 진하게 나타나는 놈, 눈앞에서 항상 어른거리며 내 시야를 방해하는 성가신 녀석과 친구를 먹으라니..,


아침에 일어나면 눈을 뜨기 전에 잠시 생각한다. 혹시 지난밤에 성가신 친구가 사라진 건 아닐지 그러길 바라며 살짝 실눈을 뜨면 뙇! 하얀 천장에 두둥실 떠있는 까만 동그라미가 "굿모닝" 아침 인사를 한다.

그래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널 인정하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자신의 정체를 나에게 보여주는 게 차라리 숨어서 나를 힘들 게 하는 것보다 낫다.

영화 '미나리"의 한 장면에 그런 대화가 있었다.

손자가 숲에 나타난 뱀을 보고 놀라자 할머니가 말한다.

''에 보이는 건 무섭지 않아 무서운 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거란다 ''


눈에 보이지도 않고 통증도 느끼지 못했는데 어느 날 말기암을 선고받은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었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비문이라는 친구를 다시 바라보기로 했다. 내 눈동자를 따라다니며 귀찮게 구는 녀석이지만 숨어서 해코지하지 않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눈치는 없지만 못된 녀석은 아니니까 그냥 봐줄까 보다.

의사 선생님은 신경 쓰지 말고 무덤덤하게 지내면 뇌가 스스로 적응능력을 키워서 부유물을 무시한다고 했다.


그래 친구야 우리 한번 함께 살아보자. 지난여름의 무더위가 무색할 만큼 며칠 사이에 시원한 계절이 되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르다. 그 하늘에 네가 점 하나로 훼방을 놓는다고 하늘이 변하지 않듯이 나 또한 내 우주에 떠다니는 너라는 작은 존재에 대하여 무심한 척 봐주려고 한다. 


나이가 든다는 건 괭이처럼 굳은 상처들이 삶의 무늬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그루 나무가 고목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견디어 내야 할까? 가지가 잘려나가는 아픔과 태풍과 싸워 이겨내야 하는 어려움, 크고 작은 상처를 안으로 삭이며 비로소 고목이 되는 나무는 오래되어 늙은 나무라는 의미 외에 잘 견디어 냈다는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문득 나이 들어 늙어가는 일도 그저 쉬운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참고 견디고 이해하며 사랑하는 일련의 과정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비문 역시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귀찮게 하는 존재다. 지금껏 수많은 아픔과 어려움을 겪어 냈지만 눈앞에서 얼쩡거리며 산만하게 구는 비문도 그에 못지않게 참을성을 요구한다. 어쩌면 너는 고목이 되려는 첫 단계에서 나를 시험하는 레벨 테스트 인지도 모른다.


컴퓨터 화면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너. 글에 집중하면 비문의 존재를 잠깐 동안 잊을 수 있다. 하지만 문득 바라보면 여전히 그곳에 있는 너, 픽 웃음이 난다. 나는 이제 이 친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반갑지 않은 친구가 배려를 오해하고 자신의 동료들을 불러 모으지 않게 끔 적당히 관심을 갖고 적당히 외면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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