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휴일의 프로방스 마을은 어디나 적막할 것이라고 생각한 건 나의 우려였다.
이곳 액상프로방스는 마치 금요일 저녁 홍대 앞을 보는 것 같다. 골목에는 젊은이들의 열기가 가득하고 거리는 활기차다. 조금 전까지 내가 머물러 있었던 살롱 드 프로방스의 적막한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분위기다.
월요일인 오늘은 프랑스의 국경일이어서 토요일과 일요일에 이어 사흘 동안 휴일이 계속되었다. 연휴기간 동안 이곳은 택시 외에 다른 교통수단이 없었다. 움직일 수 있는 거라곤 두 발밖에 없는 우리 같은 여행자들은 가장 힘든 날이기도 했다.
액상 프로방스 구도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수령 500년이 넘는다는 플라타너스 가로수였다. 제네랄 드골 광장을 향해 곧게 뻗어있는 미라보 거리의 양 옆에 무사처럼 도열해 있는 고목들, 살아있는 것 중에 이처럼 오래된 것이 있을까?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세월의 온갖 풍상을 이겨낸 나무들은 아직도 청정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왠지 나무가 아니라 큰 어른을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 곳 액상 프로방스는 분수의 도시라고 할 만큼 각양각색의 분수들이 많이 있다. 액상이라는 말은 라틴어로 물을 의미한다. 흐르는 물을 이용하여 도시 곳곳에 물을 뿜어 올리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었을 것만 같다.
관광 안내소에는 반갑게도 한글로 된 안내책자가 준비되어 있었다. 관광지도에는 30여 개가 넘는 분수가 표시되어 있지만 작은 분수까지 합치면 이곳에는 100여개가 넘는 분수가 있다고 한다.
구 도시 입구에 있는 제네랄 드골 광장의 로통드 분수는 하늘을 향해 거대하게 물을 뿜는 전형적인 분수였으나 때마침 공사 중이어서 시원한 물줄기를 볼 수는 없었다. 대신 지도에 표시된 대로 분수들을 찾아가며 걸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여행이 될 것 같았다.
몇 발 걷지 않아서 첫 번째 분수가 보였다. 미라보 거리 중간에 있는 생장트 마트 성당 앞에 있는 오벨리스크 분수였다. 높이 솟은 오벨리스크의 주변을 떠 받치고 있는 네 마리의 귀여운 돌고래가 입에서 물을 뿜어내고 있다. 네 가닥 물줄기가 떨어지며 내는 소리가 청량감을 준다.
또 다른 거리에서 특이한 분수를 발견했다. 멀리서 보고 분수대 위에 돌덩이가 앉아 있는 줄 알았는데 다가가서 보니 촉촉하게 물이 번지고 있는 바위를 이끼가 감싸고 있는 이끼 분수였다. 처음부터 이끼를 계획하고 만든 분수 같았다. 분수 위에 새들이 앉아서 무언가를 쪼아 먹고 있는 모습이 생동감이 있다.
포효하는 사자의 입에서 물이 품어져 나오는 분수와 북치는 소년의 북채에서 물줄기가 떨어지는 분수도 있다. 육교 아래 교각으로 물을 흘려보내어 교각이 온통 푸른 초목으로 덮인 곳도 있었다. 서로 눈을 흘기고 있는 아랍인의 얼굴을 한 부조의 분수도 재미있었다.
이 곳의 분수는 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다. 또 분수는 아래에서 위로 솟구친다는 고정관념도 깨트렸다. 촉촉하게 또는 잔잔하게 흘러내리는 분수는 조형물과 물, 그리고 주변에 모여드는 생물의 조화로 비로소 완성되는 것 같았다. 어느 곳에나 분수 곁에는 살아있는 것들이 있었다. 이끼와 풀잎, 새와 강아지, 그리고 사람들이 모여서 목을 축이기도 하고 주변에 미스트가 되어 흩어지는 산소에 청량감을 느끼기도 한다.
거리와 광장은 물론이고 정원과 건물의 입구, 집안의 뜰에도 분수가 있다. 이 많은 분수들은 모두 각자의 이름을 지니고 있지만 나는 그 이름을 다 기억할 수 없어서 대신 왕의 분수, 이끼 분수, 아랍인 분수. 돌고래 분수, 풀잎 다리 분수, 와인 잔 분수 등 분수를 이루고 있는 조형물의 특징을 떠 올리며 생각나는 대로 이름을 붙였다.
“와인잔 분수에서 목욕하던 강아지는 너무 귀여웠어''
''이끼 분수 위의 새들도 이뻤지''
우리는 본래의 이름보다도 더 정스런 닉네임을 만들어 주며 시내에 있는 분수들을 하나씩 만나보며 여행을 즐겼다,
분수는 삭막한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하지만 이 도시에 생기를 주는 것은 분수뿐 만은 아니었다.
이곳 액상 프로방스에는 대학교가 밀집해 있어서 젊은이들이 유난히 많다. 거리와 공원 카페 할 것없이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젊은이들은 이 도시를 생기있게 만드는 또 하나의 분수처럼 느껴진다.
누군가 이 도시에 분수를 처음 만든 사람은 훗날
열정 가득한 젊은이들이 도시에 가득할 줄 알았던 것 아닐까?
하늘로 치솟는 분수와 생기 가득한 젊은이들의 에너지로 액상프로방스는 낡음조차 싱그러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