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상 프로방스에 있는 세잔의 아틀리에가 평범한 산동네에 있다는 것은 참 의외였다. 대문 옆에 '세잔의 아틀리'에 라는 작은 문패가 없었더라면 모르고 지나쳤을 만큼 아틀리에는 소박했다.
시골 민박집 문을 열고 들어 가듯 대문을 살짝 열고 들어 갔다. 마치 주인이 “누구세요” 하며 나올 것만 같다. 처음 느꼈던 소박함이 대문에서 마당을 지나 현관으로 가는 동안 깔끔하고 준수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직원에게 입장권을 받아 들고 나서야 세잔의 아틀리에라는 게 실감 났다.
이층 계단을 올라가면서 꼼꼼하고 단단하게 잘 지어진 집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편에 신발장이 얌전하게 놓여 있고 밖에서 입었던 옷을 걸어 두려는 듯 옷걸이 하나가 신발장 옆에 매달려 있다. 세잔이 오르내리며 붙잡고 걸었을 듯한 층계 난간을 세잔이 그랬던 것처럼 붙잡고 올라갔다.
아틀리에는 두 개의 벽이 온통 유리창문으로 되어 있어서 바깥의 빛이 그대로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림을 그리기 위한 작업실로 처음부터 구상하고 지었기 때문에 빛에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한쪽 벽에 세잔이 사용한 화구들이 진열되어 있다. 호두나무로 만든 가구는 아직도 건재하다. 수없이 열고 닫았을 서랍의 문고리가 반질하게 닳아 있다.
작품에 사용되었던 정물들과 그림을 그릴 때 사용했던 사다리. 그가 힘주어 짠 손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물감과, 화구를 담아가지고 들고 다닌 가방이 고스란히 진열되어 있어서 마치 방금까지 그가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외출을 한 것 같았다.
그곳에 세잔이 그림을 그릴 때 입었던 작업복이 걸려있다. 이 옷을 입은 모습의 자화상을 어디선가 본 것 같다.
세잔의 작업복은 방금 벗어 놓고 나간 듯이 벽 한편에 그냥 걸려 있었다. 유화물감으로 온통 얼룩진 그의 옷은 아직도 그를 감싸고 있는 온기가 남아 있을 것만 같다. 옷을 살짝 만져 보았다. 살아있는 세잔이 곁을 스치는 것 같다.
세잔의 그림도구와 소품들
친구였던 에밀 졸라와 주고받은 편지가 책상 유리장 속에 덮여 있다. 나중에 우정을 상실하였지만 그의 편지만은 소중하게 남아있었다.
미술관이 아닌 작가가 살았던 집이어서 일까, 군데군데 작가의 삶의 자취가 그대로 있다. 신발장과 층계의 난간, 벽에 박힌 못에서 세잔의 숨결이 느껴졌다.
세잔의 아틀리에 앞 마당
화실 앞에 있는 뜰로 나갔다. 마당에 놓인 의자는 그 시절 세잔이 앉았던 의자였을까? 정원 앞 산책길은 나무들이 우거져서 길이 좁아졌다. 그가 비에 흠뻑 젖은 채로 그림을 그렸던 정원은 지금은 숲이 되어버렸다. 아마 세잔이 걸었던 그 시절에는 나무들이 주인의 키와 나란했을 것이다. 창고와 우물, 쓰레기 소각장까지, 이 집은 아직도 세잔이 살았던 그 때와 변함이 없다고 한다.
그가 아끼고 사랑했던 그림 도구들과 손때묻은 살림살이들은 지금도 온기를 품고 있다.
주인이 사라진 후에도 주인의 체취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집, 세잔의 집에서 잠깐 외출한 주인을 기다리 듯 반나절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