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풍의 잘 꾸며진 집

아비뇽의 에어비앤비

by 연희동 김작가


여행을 시작한 지도 한 달이 가까워지고 있다. 남편과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매일 똑 같이 하는 일이 있다. 잊지 않고 혈압약을 먹는 일이다. 여행 날짜만큼 준비해 온 약이 점점 줄어드는 게 안타까운 나와 달리 남편은 아직도 남아있는 약을 보며 흐뭇해한다. 서로 표현은 달라도 어쨌든 두 사람 다 이번 여행을 즐기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동안 프로방스의 구도시들을 여행하면서 중세의 골목길이 가장 인상 깊었다. 물방울 하나 스며들 틈새 없이 꼼꼼하게 박힌 자갈바닥과 언덕으로 오르는 들 층계, 낮은 담벼락 안으로 보이는 오래된 집의 현관에 걸린 예쁜 화분들을 보며 그 집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궁금했었다.


아비뇽에서는 예약해 둔 호텔을 과감하게 취소하고 안에 있는 에어 비앤비에서 생활해보기로 했다. 리뷰를 확인해 볼 여유도 없이 그냥 작은 뜰이 있는 주택이었으면 좋았다. 그리고 집 한 채를 우리 부부가 전부 사용하기보다는 집주인이 함께 거주하는 곳을 원했다. 혹시 지내는 동안 불편한 점이 있으면 바로 요청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구도시에 있는 아담한 이층 집이 우리가 아비뇽에서 지내는 동안 거주할 게스트하우스였다.


기차역에서 나오자마자 도시 전체가 거대한 성곽으로 둘러져 있는 있는 아비뇽 구도시가 나타났다. 가슴이 설렌다. 막연하게 꿈에 그리던 도시, 중세의 회색빛 도시가 폴라 로이드처럼 내 앞에 펼쳐져 있다. 믿지 못할 광경이다. 성은 간간히 무너지고 부서졌지만 아직도 아비뇽 구도시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었다. 성문 안으로 들어서면서 나는 마치 중세의 유물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침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보낸 이메일이 도착했다. 집을 찾아오는 방법이 달랑 주소 한 줄이 아닌 긴 문장의 글로 되어 있다. 자동차가 아닌 기차를 타고 가는 우리 부부를 배려한 듯, 기차역에서부터 집 까지 걸어오는 길을 꼼꼼히 적어 놓았다, 얼마나 자세하게 썼는지 마치 글로 그린 그림과도 같았다.


''성문으로 들어서자마자 오른쪽 성 문 옆 플라타너스 나무를 따라 300미터쯤 걸어오세요. 길 왼편에 온통 푸른 줄기가 덮인 담장이 보이면 바로 그 골목에서 두 번째 집, 브라운색 현관문이 저희 집입니다.''


한글 보기로 해석한 주인의 편지는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플라타너스 나무와 푸른 줄기가 덮인 담장, 갈색 현관문이 집을 찾는 포인트였다. 울퉁불퉁한 돌바닥 길이 캐리어를 끌고 가기에는 불편했지만 우리가 지낼 집을 찾느라 남의 집을 바라보는 재미에 들려 힘든 줄을 모르고 걸었다.






"프로방스 풍으로 잘 꾸며 놓았더군"


유럽식으로 잘 꾸며놓은 카페를 보고 우린 종종 이런 말들을 했다


프로방스 풍이란 어떤 것일까? 모서리나 가장자리가 약간 낡은 듯한 느낌이 나도록 거칠게 만든 가구가 놓이고 식탁이나 찬장 위에 왕골 바구니 하나쯤, 또는 창문에 투명한 레이스 커튼을 달고 필히 빗살무늬의 덧창 문(볼레)을 창가에 달아 놓으면 나는 그게 프로방스 풍인 줄 알았다. 이곳 아비뇽의 에어 비 엔 비에 오기 전까지는 나도 프로방스풍의 인테리어에 대해서 완전하게 알지 못했다.


번지수나 거리 이름 대신 플라타너스 나무와 푸른 나뭇잎 담장, 브라운색 현관문, 이라는 세 가지 힌트만으로 나는 어떤 내비게이션보다도 빠르고 정확하게 집을 찾았다.

성문을 들어서자마자 오른쪽 길에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보였고 그 길을 따라 꾸준히 걷다가 보니 온통 아이비 넝쿨로 덮인 담장이 보였다. 그 담장 옆 골목길 두 번째 집에 갈색 현관문이 모습을 보였다.


대문을 거치지 않고 바로 현관문을 통해 들어가는 구조였다. 현관문에는 초인종이 없이 청동으로 만든 손 모양의 조형물이 걸려 있었다. 동그란 공을 쥐고 있는 그 손을 몇 번 들었다 놓는 소리를 듣고 주인이 문을 열어 주었다.

부드러운 금발머리의 중년 부부는 준비해 둔 웰컴 주스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에어 비 앤비의 현관문


창문

우리가 머물 곳은 주택의 이층이었다. 아래층은 주인이 사용하는 넓은 거실이 있고 위층은 아래층을 거치지 않고 바로 층계를 올라가게 되어있다. 입구에 슬리퍼가 가지런하게 놓여있는 걸로 봐서 실내에서는 우리처럼 신발은 벗는 것 같다. 위층 역시 아래층과 마찬가지로 확 트인 거실이 있다. 확 트였다는 첫 느낌은 거실이 넓기 때문이 아니라 창문이 크고 높아서였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유럽의 건물은 유난히 창문이 많다. 창문이 없는 벽에는 그럴싸한 창문을 그려 넣기도 하였는데 그 이유는 예전에 그들이 내는 세금에는 창문세라는 게 있었기 때문에 창문의 숫자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돈이 없어 창문을 크게 내지 못하는 서민들은 그림으로 나마 창문을 만들고 위안 삼았다고 한다. 창문은 역시 프로방스의 첫 번 째 인테리어였다.

꽃과 함께 어우러진 현관문


아침에 일어나서 맨 먼저 창문을 막고 있는 볼레를 열면 갑자기 정지되었던 화면이 움직일 듯 실내의 모든 가구들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빛을 발한다.


"이거 어제도 여기 있었던 거야?"

"그새 이불을 또 빨았나?"


방안의 가구들이 새롭게 보이는 것은 아낌없이 쏟아지는 햇빛 때문이었다.‘찬란하다'라는 단어가 프로방스의 아침햇살에 가장 적합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방안 깊숙이 들어오는 찬란한 아침 햇살이 한낮에는 푸근하게 변한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투명한 하늘인 데도 쨍쨍하게 내려 쬐는 빛이 아니라 온화하고 따뜻하게 품어주는 부드러운 빛이다..

인상파 화가들이 프로방스를 자주 찾은 이유를 알 것 만 같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햇살이야 말로 프로방스의 낡은 듯한 가구들을 재생시켜 주는 최고의 인테리어다



우리 방 탁자에는 주둥이가 긴 병에 포도 넝쿨이 꽂혀 있고 식탁엔 이름 모를 꽃이 수북이 꽂혀 있었다. 우리가 거주하는 일주일 중에 한 번 청소를 하러 들른 청소부 아줌마도 한 손 가득 꽃을 들고 있었다. 어디에나 꽃들이 넘쳐난다. 꽃은 프로방스 인테리어를 돋보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소품이었다.


이곳 거실에는 원목으로 만든 푹신한 소파와 손때 묻은 장식장이 있다. 장식장 안에는 촛대와 꽃무늬가 있는 접시들과 유리컵, 투박한 식기들이 정갈하게 놓여있다. 새것이 아닌 오래된 가구들이지만 방금 왁스칠을 한 것처럼 윤기가 난다. 가구를 벽에 붙이거나 직선방향으로 놓지 않고 아무렇게나 놓은 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다.


우리나라의 자연 속에서 우리 것이 가장 아름답듯이 이곳 프로방스에서는 이곳의 자연에 가장 잘 어울리는 프로방스만의 인테리어가 있었다. 넓은 창과 그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보이는 화병에 꽂힌 꽃이 있는 이 집에서 나는 일주일 동안 프로방스 아주머니처럼 살아 볼 것이다.


낡고 오래된 것이 더 잘 어울린 구도시의 골목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