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에게는 낭비란 없다. 긴 기차 여행을 즐기지 못하고 멍때리거나 길을 잘못들어 시간을 낭비했다거나 야바위꾼에게 속아 물건을 잘 못 샀어도 결코 낭비는 아니다. 모르고 간 길에서 새로운 풍경을 만나게 되고 누군가에게 속았다면 조금 비싼 수업료를 내고 인생공부를 하였다고 생각하면 더는 같은 실수를 겪지 않게 된다. 오히려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런 것들이 글감이 되고 이야깃거리가 되곤 한다.
하지만 어떤 여행지에 대하여 역사적 의미나 사건, 그것에 얽힌 비화등을 모르고 눈으로만 훑는다면 그건 낭비다. 알고 보면 지나가는 바람소리조차 소중하고 혹은 안타깝게 느껴지지만 모르고 바라보면 기능좋은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보는 것과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아비뇽의 교황청에서는 더욱 더 앎이 여행을 풍요롭게 해 주었다.
여행자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입구에서 가이드 도슨트를 나눠주고 있었다. 물론 돈은 따로 내야 하였지만,
왕권과 교황권의 갈등으로 무려 68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일곱명이나 되는 교황이 로마가 아닌 이곳 프랑스 아비뇽에서 체류한 사건,
프랑스왕권이 교황권을 완벽하게 장악한 이 사건은
교황권의 몰락을 상징한다.
고등학교 세계사 수업시간에 나폴레옹 얼굴에 수염이나 그리고 앉아 있었던 나도' 아비뇽 유수'라는 말은 생각이 난다.
'유수'는 한자어로 ‘잡아서 가두다’라는 뜻이다.1400년, 당시 프랑스 왕 필리프4세는 로마에 있어야 할 교황청을 이곳으로 옮겼고 일곱 명의 교황이 선출되는 동안 교황청은 왕권의 감시하에 말 그대로 갇혀지낸 것 이나 다를바 없었다.
14세기에 지어진 아비뇽 교황청은 장엄하고 웅장한 고딕식 건물이었다. 하지만 위풍당당한 외관의 모습과는 달리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서자 허망하게도 텅 비어있다.
프랑스혁명 이후 모든 보물을 도난당했다는 건물 안은 마치 중세에 지어놓은 창고를 보는 듯하였다.
입구에서 나눠 준 3D 입체안경을 썼다. 방마다 비치된 기계 위에 들어올 때 받은 모바일을 갖다 대자 눈앞에 14세기 교황청의 모습이 순식간에 나타났다.
다시 부활한 흔적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나는 이 곳 저곳을 열심히 살피고 다녔다. 교황청의 낡은 벽은 온데간데도 없이 화려한 벽으로 재생되었고 사라진 가구가 방안 가득 채워졌다. 다른 방에서는 교황들이 모여 새 교황을 추대하는 '콘클라베'가 열리기도 한다.
방마다 그 시대의 물건들이 낡고 부서진 곳 없이 원형 그대로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바닥은 황금색 양탄자가 깔리고 천장에는 수 십 개의 촛불 샹델리에가 아름답다. 벽에는 역대의 교황 사진들이 위엄 있는 자태로 걸려있고 황금 문양의 가구들이 번쩍거린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놀랍고 신기해서 여기저기 비춰봤지만 점차 하기 싫었던 세계사 공부처럼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쓰고 있던 3D 안경을 벗어버렸다. 내 앞에 다시 공허한 교황청의 민벽이 드러났다. 그 시대의 가구나 장식품들이 사라진 자리를 자세히 바라보면 희미한 자취가 아직도 남아있다. 교황청 대강당의 벽을 장식한 문양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고 누군가 그려 놓은 프레스코화가 한쪽 벽에 어슴프레 하게 보인다.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보인다. 보인다…. 낡고 퇴색된 벽에서 세월의 흔적이 보이고 아직 지워지지 않은 천정의 벽화와 오랫동안 밟고 다닌 바닥의 타일에서 유구한 역사의 발자국이 보인다.
나는 오히려 사라져 가는 옛날의 희미한 자취가 더 좋았다. 사라지는 것은 사라지는대로 두는 게 자연스럽다.
마치 나이 든 늙은 여배우의 성형한 얼굴을 보는 것 같은 3D 영상보다 오히려 민낯의 텅 빈 건물을 보면서 과거의 대립이나 권위가 덧없는 것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비뇽 교황청은 이 곳 프로방스의 어디에서 본 성보다도 웅장하고 견고했지만 가장 허전하고 쓸쓸한 건물이기도 했다.
역사가들은 당대에 지은 건물중에서 위용이 사라지고 폐허가 된 석조건물을 빗대어 '채석장’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채석장은 말 그대로 돌을 캐는 곳이다. 한마디로 의미가 사라진 돌무덤이라는 뜻이다.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인간의 섭리와 닮았지만 왠지 한 시대를 풍미하던 건물에게는 가장 굴욕적인 말처럼 들린다
아비뇽 교황청은 채석장이라고 하기에는 아직은 쓸만하다. 그래서인지 시대를 거치면서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프랑스 혁명 때에는 군대의 막사가 되어 병정들의 발에 짓밟히기도 하고 때론 감옥이 되어 죄수들을 가두는 담벼락이 되기도 했다. 남의 나라에서나마 교황청의 권위를 지켰으나 한 순간에 패망을 겪은 연극과도 같은 운명처럼 현대인들은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페스티벌 장소로 만들었다.
교황이 산책하던 정원 로세대돔에는 철구조물이 세워지고 있었다. 매년 7월이 되면 이 곳에서는 전 세계 연극인들의 축제가 펼쳐지고 교황청은 연극의 무대가 된다고 한다. 불꽃을 튀기며 철판을 엮고있는 그 곳에서 오래된 건물은 연극같았던 역사의 서막을 재현하려는 중이다.
굴욕의 단어를 비껴 간 대신 파란만장한 시련을 겪고 있는 건물이다.
한때의 명예나 영광, 굴욕조차 세월앞에서는 물거품과도 같다는 말이 교황청의 구석마다 서려있다.
'없는 것이 있는 것'이라는 역설적인 말이 교황청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듯 하다.
교황청 앞의 예수성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