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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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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Feb 27. 2022

엄마 저 오미크론 양성반응 이래요

올해는 유난히 봄이 더디게 오는 것 같다. 이때쯤이면 싹을 틔었을 화단의 식물들도 감감무소식이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아직도 희망의 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오미크론 확산으로  일일 코로나 확진자가 십만 단위로 늘어났다. 세 번의 예방주사를 맞고도 코로나에 걸린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밖에서 누구를 만난 적도 없는데 코로나에 걸린 사람도 있다. 그동안 기나긴 전쟁을 이끌어온 코로나가 종전 임박을 앞두고 무차별 사격을 하려나 보다.

이제는 코로나에 걸려도 감기환자처럼 재택치료를 하고 중증 아닌 이상 병원에도 가지 않는다. 질병관리국에서도 확진자가 정점을 찍고 내려오기 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는 전파력은 강하지만 중증이나 사망확률이 낮다고 하여 누군가는 인류에게 보낸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세력이 약해졌어도 여전히 나에게는 무서운 존재다.


사람들은 위드 코로나 시대에 점점 적응이 되어가고 있다. 하루 확진자가 천 단위를 넘어갈 때만 해도 두려워 했는데 이제 만 단위를 넘어 십만 단위의 숫자에 이르면서는 아예 둔감 해진 듯하다.

아무리 경미한 증상으로 변이가 된 전염병이라 해도 아직 손쉽게 약을 써서 물리칠 만큼의 여력은 되지 못한다. 이 기세가 한풀 꺾일 때까지 몸을 사리고 있는 요즘이다. 매일 나가던 헬스장도 당분간 쉬기로 하고 대신 밖에서 하는 운동으로 파크골프를 나갔다.

식당에서 마스크를 벗고 음식을 먹지 않으려고 따끈한 국물을  보온 통에 담고 김밥을 준비하여 조금 이른 야외 소풍을 하기도 했다.  


오늘은 두 달에 한 번씩 혈압약을 지으러 병원에 가는 날이다.

이른 아침, 환자들이 드문 시간에 맞춰 평소 다니던 동네병원의 엘리베이터를 탔다. 문이 닫히려는 순간

''잠깐만요''  이라며 중년 여인이 숨 가쁘게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섰다.

단 둘이서 타고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여인은 문 앞에 바싹 붙어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먼저 내려 나보다 한 발 앞서서 진료 접수를 하겠다는 요량이다. 얄미운 행동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중년 여인의 뒤를 따라 진료 접수를 마쳤다.


나보다 먼저 진료실 안으로 들어간 여인이 진료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간호원이 급하게 비닐장갑을 끼고 진료실 안팎에 소독제를 뿌렸다. 왠지 기분이 싸했다. 그다음 순서가 바로 나인데 진료실 문을 열어둔 채 한참을 기다리게 하였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예감일 뿐, 그런데 아까 그 여인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서 격앙된 목소리로 큰 소리를 치는 바람에 사태가 짐작되었다.

''의사가 PCR 검사받아보래, 내가 그 여자 옆에 있었단 말이야, 아프면 나오지 말 것이지 왜 나와서 남에게 옮기고 지랄이야'' 여자의 거친  욕지꺼리에

병원 안의 공기가 한동안 불쾌해졌다.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사회에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코로나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으로 환자의 진로를 탐색 추적하여 범위를 줄이는데 힘쓰다 보니 피해자와 가해자가 분명해졌다. 한 순간에 친구가 원수가 되고 지인을 멀리하게 만들었다. 전염을 시킨 자는 죄의식을 가져야 하고 코로나에 전염된 사람은 원망을 하며

즐거운 모임을 한 그날이 불운의 날로 기억된다. 며칠을 집에서만 지내다가 하필 병원에 간 오늘이 나에게도 불운의 날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집에 오자마자 옷을 벗어 밖에 두고 세면실로 갔다. 엘리베이터 안, 그 여인이 잡았던 병원 현관문의 손잡이, 체온 체크기, 진료 접수 코너 책상 모서리, 그중 어디에 묻어있을지 모르는 코로나 환자의 비말이 나에게 전염되지나 않았을까 하는 찜찜함을 비누로 박박 씻어 닦아 내었다.


저녁 무렵, 독립하여 사는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며칠 전 감기 기운이 있었는데 검사 결과 오미크론 양성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내 주변의 첫 환자가 아들이라니..., 놀라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감기처럼 별거 아니라고, 그냥 약국에서 약을 지어먹었고 회사만 가지 않았을 뿐 일상생활을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남이 아닌 아들이 감염되었다는 말을 듣자 오늘 내 앞에서 진료를 받은 환자 때문에 법석을 떤 내가 무색해졌다. 불과 몇 시간 차이로 남의 일이 내 일이 되어버렸다.


혼자서 아파하고 있는 아들이 걱정이 된다. 밥은 잘 먹고 있는지 아프지는 않은지 눈으로 보지 않고는 걱정이 되어 견딜 수가 없다.  

혼자서 노력해서 되는 일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몹쓸 바이러스가 내 주변 가까이 까지 침투한 걸로 보아 보이지 않는 무언가 서서히 조여 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최근에 오미크론 환자가 늘어나면서 질병 관리정책도 많이 느슨해졌다.

집 안에 확진자가 있어도 예방 주사를 접종한 가족에 한해서 격리하지 않는 방안을 곧 발표하겠다고 한다. 하루에 십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래도 괜찮은 건지, 코로나가 무력해질 때까지 각자 고전분투를 해야 한다.

지금 적은 인해전술을 써서 몰려오고 있다. 마스크 하나로는 힘이 부치는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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