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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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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Mar 10. 2022

힘을 주면 삶도 튕겨 나간다

오래전부터 내 책장에 꽂혀있는 에세이집이 있다.

돌아가신 동화작가 정채봉 선생님과 시인 류시화 님이 함께 엮은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라는 제목의 책이다.

김수환 추기경님과 법정스님을 비롯하여 예술계의 거목인 조수미 씨와  김기창 화백 등 그 외에 이름만으로도 알만한 대중  인기스타 이름도 보인다. 이분들이 쓴 어머니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사회의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사람들,  성공했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어머니에게는 더 없는 행복을 안겨 준 그들이 쓴 글에서 어머니라는 이름의 공통분모는 사랑과 희생이었다. 각자 살아온 환경은 다르지만 자신에게는 가혹하고 자식에게는 너그러웠던 어머니의 모습은 누구랄 것 없이 한결같았다.

성에 평등하지 못한 시대에 여자로 태어나 어머니라는 이름에 모든 걸 걸고 살았던 우리들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품에서 자란 자식들이 바라본 어머니의 모습은 안타까움과 회한, 그리고 그리움 외에 여성으로서의 어머니의 모습이 장하게 그려져 있다.


 책이 내게로 온 날이 언제 적이었나? 책의 속표지에 적혀 있는 단문의 글귀와 함께  책을 보낸 연도와 날짜가 아니었으면 누가 언제 보냈는지조차 모를 뻔했다.  셈하여 보니 벌써 25년 동안이나  내 책장에 꽂혀 있었던 셈이다. 그동안 수차례 장의 책들을 정리했음에도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걸 보면 누구의 어머니든 에 대한 숭고함이 책의 수명을 늘린 것 같다.


최근에 다시 책을 펼쳐 들면서 전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25년 전 처음 책을 접했을 때 자식과 남편의 그림자로 살아야 하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안타까움을 느꼈다면 두 아이를 둔 어머니가 되어 다시 읽는 지금은 자신을 억압하고 있는 개인적 사회적 조건에 크게 저항하지 않고도 어머니라는 이름의 정체성을 뚜렷이 나타낸 묘약이 뭔지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하였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라는 책의 제목을 다르게 말하면 어머니는 때론 신의 대리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고도 마다하지 않고  살신성인하며 그들의 고통을 껴안아  위로하고 걱정 근심을 내려놓게 하는 수호천사가 되어야 한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어머니는 항상 약자였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누군가의 어머니는 본처라는 호적상의 명맥만 잇고 살았지만 어린 자식을 위해  열심히 살았고 뒤늦게 병들어 돌아온 남편을 자식들의 아버지이기에 용서하고 받아들였다. 어머니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자란 자식은 여성의 권리가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알리며 페밀리즘의 선봉에서 여권 신장을 외친다. 그런가 하면 첩의 집에 쳐 들어가 첩의 머리채를 잡아놓은 일이 세상에서 가장 통쾌하였노라고 말한 어머니도 있다. 어머니의 한숨과 울음이 있는 삶을 보고 자란 글쓴이는 연극인이 되었다. 극작가이기도 한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겪은 한스러운 삶을 오늘의 예술로 승화할 수 없을까를 생각하며 글을 쓴다고 했다.

또 어떤 어머니는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아들이 유독 남보다 특출 나게 보일까 봐 오히려 수수한 옷을 입히어 학교에 보냈다고도 한다. 성직자로서 근면한 삶을 살고 계신 작가의 글이다.

자신의 거처인 수녀원 뜰에서 주워 온 솔방울을 평생 보물처럼 간직하시기도 하였다는 어머니 이야기,  비 오는 날 자식에게 줄 떡이 젖지 않게 하려고 자신의 몸은 홀딱 젖어 오셨다는 글도 있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은 자식들에게 무한한 긍정의 힘을 갖게 하였고 자신뿐 아니라 이 사회가 원하는 인물이 되게 하였다. 어느 한 편의 글에서도 감히 나는 모방할 수 조차 없는 인고의 삶이었다.


나는 이들 어머니에게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모두 삶에 힘을 주지 않고 살았다는 것이다. 가난과 맞서 용감하고 억척스럽게 살림을 일구어 나가기는 했지만 이는 가장으로서 생활에 강했을 뿐 어머니 본연의 이름 앞에서는 한없이 부드럽고 약한 존재였다.

  

페미니즘에는 어긋나는 이야기지만 불공평한 대우를 참고 인내하며 지켜온 어머니의 자리는 어떤 운동보다도 더 큰 변화를 맞게 한다.

밖으로 떠돌던 남편이 돌아와 무릎 꿇게 하고 품으로 지켜낸 가정에서 자란 자식들이 세상을 정화시키는 눈을 가진다. 여성의 인권이 많이 상승되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미흡한 구석이 많다. 그렇다고 누구나 나가서 싸울 수는 없다. 각자의 직분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도 이기는 길이다. 어머니의 직분은 싸우러 가는 용사를 지키는 일이다.

부드러운 바람이 동토의 땅을 녹이 듯 그렇게 어머니는 세상을 변화시킨다, 과연 어머니는 신의 대리인이 맞다.


"힘이 들어가면 안 돼"

내가 취미생활로 처음 탁구를 배울 때, 몸에 너무나 힘을 주면 공이 튀어 나간다며 힘을 빼라고 했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골프채를 잡은 팔에 너무 힘을 주면 원하는 방향으로 공이 날아가지 않는다고 했다.

삶 역시 힘을 빼고 살아야 한다. 욕심을 부린다고 해서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삶도 일종의 경기다. 승리자가 있고 패배자가 있다.


글 속에  어머니들과는 비교도 안되지만 나 또한 어머니이다.  내 아이들이 힘들고  아파할 때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 

그럴 때 신은 내 편이 되었다. 책장 속에 오랫동안 묵혀둔 책 한 권을 눈에 띄게 해 주신 건 분명  신이 주신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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