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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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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Mar 20. 2022

벌써 일 년

세월 참 빠르다. 오빠가 돌아가시고 그새 일 년이 지났다.  작년 이맘때 부음을 듣고 오빠가 계신 지방도시로 내려가는 길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누군가 해마다 꽃이 피면 오빠가 꽃향기로 오실테니 너무나 슬퍼하지 말라며 나를 위로해 주었는데  올해는 철이 이른 건지 꽃은커녕 길가에 새싹도 돋지 않았다.  날씨조차 우중충하여 봄인지 겨울인지 애매한 날이다,

가족들 중에도 확진자가 있어 형제들 모두가 모일 수 없는 오빠의 첫 기일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왔어? 하고 웃으며 언제나처럼 반갑게 맞아 줄 것 같은 오빠, 허름한 작업복 차림으로 한 손엔 전지가위를 든 채 우리를 기던 오빠의 환영은 일 년이 지났어도 그대로이다.

온실 가득 다육이와 분재를 기르던 오빠의 정원에서 그림이 지워지듯 오빠의 모습만 사라졌다. 남기고 간 모든 생명들은 일 년만큼의 키가 자라 있었다.


예전 오빠가 살아있을 때 오빠를 꿈에서 만난 적은 없다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난 일 년간 꿈에서 오빠를 자주 만났다. 어떤 때는 고등학생인 까까머리 모습으로 또 어느 날은  오빠의 부재를 인지하고 평소의 다정한 모습으로 온 오빠에게 사후의 세계에 대하여  묻기도 하였다. 비록 내 눈앞에 오빠의 모습은 사라졌어도 영혼은 불멸하다는 걸 꿈을 깨면 제일 먼저 느끼곤 하였다.


제사상이 차려졌다. 영혼을 불러오는 의식이 시작되었다. 현고 학생부군( 君)... 동생의 이름을 축문을 읽어 불러야 하는 바로 윗 형님의 목이 멘다. 이제야 비로소 오빠의 부재가 실감 난다.

두 아들이 잔을 치고 혼자 남은 언니가 잔을 올린다. 언니의 등이 흔들린다.


살아있는 사람은 살게 마련이라는 말로 남아있는 사람을 위로했다. 남아있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내 슬픔에 가려 헤아리지 못했다.

언니의 왜소한 등에서 혼자서 살아온 지나간 계절들이 보인다.


조상들은 탈상이라는 의식을 통해 상주가 평상인으로 돌아가는 식을 치렀다. 요즘에는 삼우제를 올리고 바로 탈상을 하기도 하고 불교에서는 49재를 기간으로 탈상을 한다. 벌써 일 년이라고 말한 나의 빠른 세월이 미망의 시간으로는 얼마나 기막히고 처절했을까?  


남아있는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식탁에 혼자 앉아있을 사람, 밤마다 커튼을 내리며 외로웠을 사람, 혼자서 정원의 잡풀을 뜯으며 슬픔을 다스렸을 사람,

한 영혼에 가려 신음중인 영혼을 방치하였다는 죄스러움이 밀려온다.


이젠 올케언니도 이 봄이 따뜻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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