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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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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Feb 13. 2022

아무짝에나 쓸모 있는 것들


''15000원이 입금되었습니다''  계좌내역이 뜬 문자를 읽는 마음이 뿌듯하다.


당신의 근처를 줄여서 당근이라고  한다지? 오늘 당근 마켓에서 처음으로 물건을 팔았다. 이런 기분이구나. 계좌에 입금된 15000원이라는 금액이 이렇게 커 보이다니, 돈을 처음 벌어보는 사람처럼 기분이 좋았다.

계좌입금이 아니라 현금으로 받았다면 더 흐뭇했을까?

아무려면 어때, 오늘 처음으로 물건을 팔았다는 게 중요하지


내가 당근 마켓에 내놓은 물건은 자전거 안장이다. 본체에 딸린 가죽 안장인데 슬림하고 멋스럽기는 하나 라이딩을 한 후 엉덩이가 마취를 한 듯 얼얼하게 아파서 다른 안장으로 바꾼 뒤 내놓게 된 것이다.


먼저 사진을 찍고 금액을 정했다. 얼마를 받아야 할지 값을 정할 수 없어서 다른 사람이 내어놓은 제품과 비슷한 수준으로 값을 매겼다. 올리자마자 알람이 울린다. 누군가 문자를 보냈다.

2000원만 깎아달라고 한다. 구매자가 나타난 것만으로도 감사해서 덜컥 깎아줄까 하다가 안장을 바라보니 헐값에 팔기에는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할인은 안 되겠네요"


그쪽 역시 쿨하게 포기한 것 같다. 다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 후로 알람은커녕 누구 하나 매물을 보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 다른 판매자들이 써놓은 글을 읽어보았다. 역시 제품에 대한 PR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이 제품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것입니다

*150만 원짜리 **전기 자전거에 딸린 본체  안장입니다

* 천연 가죽 소재입니다.


휴.. 남의 주머니에서 돈 꺼내기가 이처럼 힘들다니...,

그런데 잠시 후 거짓말처럼 알람이 울리더니 임자가 나섰다. 역시 홍보문구를 써서 올린 게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부른 값에서 깎지도 않고 물건을 가지러 오겠다고 한다. 집과 가까운 쇼핑센터 앞에서 구매자를 만났다.

구매자는 자전거 안장을  보자마자 무척 흡족해하였다.

나에게는 쓸모없는 물건이지만 다른 누구에게는 요긴하게 쓰이는 물건이 되는 게 흐뭇하다. 더구나 타고 온 자전거를 보니 전문가 다운 필이 났다.  내 물건이 나보다 더 좋은 주인을 만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실제로 내가 판 자전거 안장을 판매점에서 사려면 그보다 열 배의 가격을 더 줘야 살 수 있다고 했다.

팔기 아까운 물건이라도 나에게 필요 없는 물건은  필요한 사람에게 기부한다는 생각으로 팔아야 임자가 나타난다.


코로나가 유행되기 전 해마다 내가 다니는 성당에서는 바자회를 열었다. 모두 신자들이 기부한 물품들인데 물건들이 다양해서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 모두 잔칫날 같은 기분으로 흥청거렸다.

성당 앞마당에서 벌여진 이 행사에서 생긴 이익금은 가난한 이웃들에게 보내지거나 성당을 고치고 새로 짓는 곳에 기부를 하기도 한다. 각자 집에서 필요 없는 것들이 모여 꽤 큰 목돈이 되고 남을 돕는데 쓰이는 걸 보면서  이 세상에는 쓸모없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어제 대문 앞을 쓸다가 애완견 한 마리를 안고 가는 사람을 만났다.  동네에서 처음 보는 사람인데 내가 먼저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혹시 강아지용품 필요하지 않으세요"

"네?"라고 되묻는 강아지 주인에게 작년에 무지개다리를 건너 간 우리 강아지 이야기를 하였다.  노견이 되어 산책이 힘든  반려견을 태우고 다니던 유모차와 개봉하지도 않은 채 그대로 있는 패드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다. 누군가 필요한 사람에게 나눔 하고 싶었지만 소중하게 다뤄 줄 적당한 임자를 찾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하얀 털을 지닌 강아지를 보는 순간 우리 아이를 본 듯하여서 대뜸 먼저 말을 건 것이다.

"그렇잖아도 걸어가기 싫은지 떼를 부리네요" 라며 강아지 주인은 내 호의를 선뜻 받아들였다. 오히려 남이 쓰던 물건이지만 감사하게 여기며 사용하려는 그 모습이 고마웠다.

걷기 싫다고 주인에게 앙탈을 부리던 강아지는 유모차가 마음에 들었던 듯 편안해 보인다. 안 쓰고 버려진 물건이 새 주인을 만나는 것은 물건에 생명이 새로 주어지는 것이다. 유모차에 강아지를 태우고 걸어가는 견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음 한편이 따뜻해져 옴을 느꼈다.


실은 거래를 성사시킨 적은 없지만 이전에도 당근 마켓에 여러 가지 물건을 내놓은 적이 있었다.

집안 분위기와는 전혀 상관없이 사들인 청동으로 만든 와인셀러는 남 주기는 아깝고 나 쓰기는  버거운 물건이었다. 요즘은 와인냉장고가 따로 있어서 임자가 있을까 싶었지만 역시나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읽은 흔적이 전혀 없는 과학도서전집도 버리지 못하고 마냥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짐덩어리였다. 가격을 몇 번이나 다운시키다가 결국 무료 나눔으로 쌍둥이 초등학생을 둔 엄마에게 보내졌다.


곧, 봄맞이 대 청소를 하게 되면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이 생길 것이다.

옷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옷들 중에 내가 자주 입는 옷은 몇 벌 되지 않는다. 거실에 놓인 장식장 안에는 여행 중에 사서 모은 기념품들이 가득하다. 이제는 물건을 사기보다 지니고 있는 물건들을 서서히 보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다시 누군가의 쓸모가 되어 내가 아끼던 것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찾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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