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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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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Jan 29. 2022

언 강물 아래에서도 물고기들은 헤엄을 치고 있다.

그곳에 가면 무엇이 있을까?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무언가 나를 자극시킬만한 것들을 먼저 찾았다. 그게 경치이든 먹거리이든 아님 놀거리이든...,

그런 내가 달라졌다.

아무려면 어때, 집을 떠나 하루쯤 머물다가 오면 되는 거지, 더없이 안락하고 포근한 보금자리라고 해도  변함없는 일상은 지루하고 심심했다.

여행은  하루에서 벗어나 새로운 변화를 갖는 것만으로도 족하.


그동안 도서관에서 내가 빌려 본 책들은 모두 여행 관련 서적이었다. 책을 읽으면 언제 떠나게 될지 모르는 미지의 여행지에 대한 준비가 되기도 하고 당장 떠나고 싶은 마음을 조금은 가라앉혀 주기도 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사위 제천에 있는 직원 휴양소 예약을 두었으니 두 분이서 나들이를 다녀오라고 한다. 


복잡한 곳을 떠나 조용히 쉬다가 오는 여행도 좋지만 요즘처럼 사람을 만나지 못하여서 적적할 때는 오히려 서로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루를 지내는 여행이 더 소중하다.


근에 여섯 까지는 만남이 허용된다고 한다.  나는 공기 좋은 제천 숲 속, 휴양지로 동생 부부와 오빠 부부를 초대했다.


전주에 사시는 오빠와 올케, 그리고 안산에 사는 동생 부부가 비슷한 시간에 도착했다.

만남과 기쁨, 서로의 안부 묻기 그  뒤부터는 자연스럽게 먹거리 파티로 이어졌다.

청평호 변에 볼만한 관광지가 많다고 하였지만 우리 모두는 추운 날엔 그저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게 최고라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솜씨 좋은 동생 댁이 준비해 온 돼지갈비가 숯불에서 구워지는 동안 나는 된장찌개를 끓였다.

식사 후, 선물 나눔의 시간에 오빠는 손수 밭에서 기른 무를 주셨고 동생은 골프에 필요한 소지품들을 선물로 준비했다. 선물을 준비하지 못한 나는 다음날 맛집으로 소문이 난 매운탕집에서 점심을 쾌척하는 걸로 대신했다.


우리의 모임은 언제나  기. 승. 전. 놀이로 진행된다.

부대항 윷놀이에 이어 고스톱까지, 창밖으로 노을이 질 무렵에 시작한 게임은 밤까지 이어졌다.


''형님 개 밖에 못하는 남편하고 더는 못 살겠네요 ''

''그럼 갈라 서던가~~''


잡고, 업고. 죽이고..., 누군가 밖에서 들으면 심상치 않을 단어들이지만 방안에서는 깔깔깔 웃음소리가 가득하.


얼마나 오랜만에 느끼는 회포인지 모른다. 코로나로 인해 해마다 갖었던 가족 모임을 멈추었고 지난해 혈육을 잃은 슬픔으로 가족들은 모두 웃음을 잃었다. 혹시 웃을 일이 있어도 돌아가신 분에게 죄스러움을 가져야 했고 가족 카톡방에 기쁜 소식조차 언급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더 건강할 때 형제들과 많은 추억을 남기고 싶기도 하였다.

나이가 들면 시금치도 시래기도 물컹해진다. 두 올케들과 함께 시누이가 아닌 동질의 여자로 이야기 꽃을 피우며 밤을 보냈다.


점심에 이곳에서  유명하다는 민물 매운탕집에서 식사를 했다.

강에서 직접 잡은 잡어로 끓였다며 자부심을 갖는 주인에게 겨울에도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당연하지요 얼음을 깨고 잡지요''라고 한다.


강물이 얼어 있었다. 언 강 위로 눈이 내렸던지 하얀 강줄기가 끝없이 이어져 있다.

강변에 놓인 철교 위로 기차가 지나가는 모습이 아련해 보인다. 여행 중에 느끼는 잠깐의 쓸쓸함이 쳐간다.

얼어있는 강물을 깨고 물고기를 잡는다는 조금 전 음식점 주인의 말이 생각난다.


코로나로 경직되어 있는 세상은 지금 꽁꽁 얼어있다.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의 삶은 고달프다. 

하여 움직이지 않는다면 스스로 도태될 수밖에 없다. 헤엄치다가 잡혀 죽는 물고기가 되더라도 우리는 계속 움직여야 한다.

법이 허용하는 한도에서 만나고 헤어지고 계획하고 준비해야 한다.


오빠와 동생을 만나서 한바탕 회포를 풀고 나니 또 얼마 동안은 그럭저럭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하룻밤 사이에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사람들이 많은 곳을 피하느라 부러 휴게소도 들르지 않았다. 


꽁꽁 언 강물 저 밑바닥을  어부가 쳐 놓은 그물을 피해 헤엄치고 있는 한 마리 물고기가 느낌이 든다.


새하얀 남한강 강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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