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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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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Jan 26. 2022

 창밖의 고양이

고양이의 뇌는 사람의 뇌 구조와 비슷하다. 그래서 영특한 고양이는 대략 2ㅡ3세 아이 정도의 아이큐를 가졌다고도 한다.

지난해 가을부터 거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나와 고양이 한 마리가 교류 중이다


18년 동안 두 마리의 반려견과 함께 살다가 작년과  이전 해에 한 마리씩  하늘나라로 보내 나서 무력한 일상을 보냈다. 다시 강아지를 키워볼까 했지만 주변의 지인들이 극구 말린다. 그동안 반려견에게 쏟는 나의 정성이 자유스러운 생활의 속박으로 보였던 것 같다.

친구들이 몰라서 하는 말이다. 하루쯤 자고 가도 되지 않겠냐는 친구의 만류를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온몸으로 반기는 아이들 보면서 느끼는 감격이라니.... 사람들에게서 못하는 감동을 주는 녀석들이었다.

그런데도 다시 키울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은 이별의 두려움 때문이다. 둘 중 누구 하나는 갖게 될 아픔을 이젠 더 이상 고 싶지 않았다.

최근에 이런 내 음에 틈새를 뚫고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왔다.


'수수'는 옥수수밭에서 주워온 고양이라고 한다. 우리 아래층에 살고 있 고양이인데 앞에 '옥'자를 떼어내 버리 그냥 '수수'라고 부른.

사연을 듣지 않고 그냥 바라보았을 때는 초콜릿빛 윤기 나는 외피가 퍽 품위 있게 보이더니 원래 길냥이였다는 말을 듣고 나서 평범한 고양이처럼 보였다.


실은 같은 애완동물이라고 해도 나는 고양이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아파트에서 살다가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온 후, 밤마다 울어대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무척이나 신경이 거슬렸다.

두 마리 반려견이 젊었을 적에는 동네 길냥이들이 우리 집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시력도 후각도 흐려져가는 견을 업신여기기라도 하듯 빈번히 집 안팎을 출입하더니  어느 날  노견의 얼굴에 쨉을 날리는 광경을 목격한 뒤부터 고양이는 나의 천적이 되었다. 

내 아이를 무시하는 길냥이를 본 는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멀리서  길고양이가 나타나면 기척을 느끼지 못하는 반려견 대신 먼저 나서서 쫓아내기에 바빴다.

그러던 내가 고양이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아기였을 때부터 네 살이 된 지금까지 키웠다는 고양이 '수수'에게 최근에 야생의 본능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주인에게 외출을 시켜달라고 조르는 것이다. 할 수 없이 창문을 열어두면 그곳을 통과하여 온 동네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제 집을 찾아 들어오곤 한다.

동네 산책 중 첫 번째 코스가 바로 위층에 있는 우리 집이었다.

거실 창문을 통해 나와 눈이 마주친 '수수'에게 내가 처음 한 말은 놀랍게도''들어와''였다.

고양이를 내 집안에 들일 생각을 하다니..., 그런 나를 보고 더 놀란 건 '수수'였다.

문을 열어주려고 거실 창문 앞으로 다가서자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간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수수와 나는 거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만남의 시간을 갖고 있었다. 처음처럼 잽싸게 도망가지는 않았지만 언제라도 달아 날 태세를 갖추고 나를 응시하는 '수수' ,

수반에 담긴 물을 할짝거리는 걸 보고 그곳의 물을 자주 갈아 놓았다. 이제는 우리 집에 오면 당연한 듯 물부터 먹은 뒤 따뜻한 데크 위에 앉아창문을 통해 집 안 풍경을 바라보곤 한다. 처음과 달리 나의 관심에도 점점 적응이 되는 것 같았다.


요즘 '수수'방문이 뜸해졌다. 아직 우리의 은밀한 만남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수수'의  엄마에게 '수수'의 근황을 물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외출시간도 부쩍 줄었단다. 어딘가를 훌쩍 나갔다가 콧등이 차가워진 채로 들어와 따뜻한 난로 옆에서 거의 하루를 보낸다고 한다. 그리고 늘어져서 세상모르게 자고 있는 귀여운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아늑한 수수의 집


누군가에게 이름을 불리어진다는 건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다.

문득 이렇게 추운 날, 떠돌이 길냥이들은 어디에서 지낼까?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세워둔 자동차 아래 엎디어 있는 길냥이를  적은 있었는데 요즘은 그 모습도 보이지가 않는다.

고양이에게, 더구나 밖에서 나돌아 다니는 야생의 길냥이들에게는 전혀 관심조차도 없었던 내가 그들을 걱정하다니..., 다음 엘랑 집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녀석들에게 노랑이든 얼룩이든 이름 하나 지어줘야 할까 보다.


누군가에게 마음이 이끌리데는 이유가 없다. 다만 어떤 동기는 있을 것이다. 고양이 '수수'에게 마음을 고 길냥이의 안위 걱정되는 것은 내 곁을 떠난 두 마리 반려견이 나에게 주고 간 사랑의 내림인 줄도 모른다.

나는 지금 사랑이 떠난 자리를 사랑으로 메꾸고 있는 중이다.


올봄에는 창밖이 아닌 좀 더 가까이에서 서로를 느끼고 싶다.

그래 주겠니? 우리 서로 노력해 보자 '수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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