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붉은 지붕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희동 김작가 Apr 01. 2022

코로나가 현관 앞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아침, 희미한 두 개의 줄이 그어진 검사 키드 사진과 함께 문자가 도착했다.


''저 양성 나왔어요''


아래층에 사는 P가 보낸 문자다. 그것은 회오리바람 같은 코로나가 드디어  우리 집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젠 집집마다 코로나 확진자가 없는 집이 드물 정도로 전염병이 확산되고 있는데 우리 집도 이젠 안전한 곳이 되지 못한다.

P가 오미크론에 감염된 경로는 그의 착한 천성 때문이다. 


약육강식은 모든 동물의 생존본능이다. 그렇다고 해도 대부분 반려묘나 반려견은 주인의 성품을 조금은 닮기 마련인데 아래층에 사는 고양이 '수수'는 주인을 전혀 닮지 않은 맹랑한 녀석이다. '수수'가 이사를 오고 난 뒤부터 우리 집 근처에는 길고양이들이 얼씬도 못 하였다. '수수'는 자신의 눈앞에서 움직이는 것들은 모조리 억압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녀석이다.

'수수' 엄마인 P그런 반려묘의 행동에 대하여 항상 미안해하고 있다. 저보다 먼저 이 동네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 길고양이를 업신여기며 함부로 하는 '수수'가 어느 때는 밉다고도 했다.

P는 마치 동네 싸움꾼인 자식을 대신하여 용서를 빌러 다니는 엄마처럼 우리 집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는 길고양이들을 위해 그들이 먹을 사료를 멀찍이 놓아주고는 하였다.


그러고 보면  일주일 전, 갑자기 우리 집 뜰 안 데크 위에 나타난 고양이는 참 겁도 없는 녀석이었다.

자세히 보니 어딘가 귀티가 다. 토끼처럼 하얀 털에 까만 점박이가 있는 고양이는 사람을 보고도 피하지 않는 걸로 보아 누군가의 손길을 받고 자란 느낌이 들었다.


고양이를 오랫동안 키워본 P는 아무래도 고양이가 주인을 잃은 것 같다고 한다. 손 내밀면 품에 안길 듯한 순한 고양이도 수수에게는 예외가 없었다. 다음날 새벽, 앙칼지게 싸우는 두 마리 고양이의 카악 거리는 소리가 동네를 한바탕 소란스럽게 하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우리 집 주차장에는 하얀 털 뭉치가 여기저기 나 뒹글고 있었다.


우연과 필연의 차이는 뭘까? 갑자기 나타난 고양이가 우연이었다면 그날 저녁  동네 전봇대에 붙여진 전단지에서 잃어버린 고양이의 실체를 본 순간 전율을 느꼈다면 필연이 아닐까? 아무튼 핸드폰 속의 P의 목소리는 흥분되어 있었다.


''맞아요 그 고양이, 지금  주인이 찾고 있어요 ''


그때부터였다. P의 대책 없는 선량함이 발동한 것은..., 새벽에 '수수'에게 쫓겨나지만 않았어도 주인을 쉽게 찾았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자신의 반려묘 탓인 양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고양이 주인과 함께 온 동네를 다니며 찾아보기를 꼬박 이틀, 그날  밤은 봄비가 내렸고 바람이 차가웠다. 나는 밤늦게까지 남의 고양이를 찾기 위해 나서는 P가 진심으로 걱정이 되어 말렸다.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는 건 동물의 본능이다. 수수는 자신의 본능에 충실했을 뿐이다,라고 설득을 했지만 P는 마음이 편치 않다며 집 나간 고양이가 즐겨 가지고 놀았다는 놀이 방울을 들고 대문 밖으로 나섰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아직은 참 살만한 세상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날 밤 낭보가 들려왔다.


''고양이발견했어요''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골목길에서 잃어버린 고양이를 만났고 거의 일주일 동안 야생에서 견뎌온 고양이는 주인의 목소리를 듣고도 가까이 오지 않더라고 한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가. 하얗게 뜯긴 털 뭉치를 보면서 P는 어디선가 신음하고 있는 고양이를 상상하고 있던 터였다.


그날 밤 이후, 고양이 주인이 먼저 열이 오르고 바로 어제 아래층에 사는 P가 항원검사 결과 확진 판정을 받게 되었다.


처음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무턱대고 팔이 안으로 굽었다.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를 눈여겨보지 않았더라면  P는 아프지 않았을 것이다.

동물의 세계에서 강자만이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법칙을 당연히 여겼다면 차가운 봄바람을 맞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코로나가 내 집 담을 넘었다는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던 나는 참으로 부끄러운 어른이다.


도시가 삭막한 것은 이웃이 없기 때문이다.

눈길을 주지 않았다면, 관심을 갖지 않았다면,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무의미 해 진다. 함께 살면서 혼자인 도시생활에서 P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게 감사하다.

오늘도 나는 한 젊은이에게서 소중한 것을 배운다.


며칠 동안 P의 집 현관문은 굳게 닫혀있다. 그가 많이 아프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저 문이 활짝 열리는 날, 우리는 전보다 더욱 가까운 이웃이 되어 있을 것이다

                                                                                                                                                                                                                                                                          

눈길을 주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뿌듯하다 된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