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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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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Apr 13. 2022

봄,  벚꽃


해마다 봄이 오면 우리 집 뜰안에 벚나무가 가장 먼저 꽃을 피운다. 

벚나무에 꽃망울이 맺히기 시작하면 새들이 모여든다. 커다란 까치와 비둘기, 참새와 작은 박새까지 온종일 벚나무 가지를 날아다니며 새 순을 뜯어 먹으며 조잘거린다. 그렇게 먹히고도 때가 되면 뜰안 가득 수북히 꽃그늘을 만들어 주는 벚나무는 멀리 꽃구경을 가지 않아도 거실에 앉아서 충분히 봄을 즐길 수 있게 해 준다.


벚꽃이 질 때 쯤 화단의 다래넝쿨에 보랏빛 꽃이 피고 뒤이어 아주가 꽃이, 그 다음에는 철쭉이 순서대로 다.


오늘 아침, 창문 밖이 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한 두 송이 벙긋하던  밤 사이에 활짝 피었다.

 년에 한번 벚나무에게 받는 소담한 꽃다발은 봄이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누가 가지라 한 적은 없지만 나는 뜰 앞의 벚나무를 오래전부터 내 나무로 점찍어 두었다.


만의 나무 한그루를 갖는 일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우선 나무를 심을 터가 있어야 하고 매일 바라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어느 날  뜰 앞에 작은 싹이 돋아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새들이 떨어트린 씨앗에서 움튼 새싹이었다. 거실에서 바라보이는 위치, 적당히 햇빛이 비치는 곳에 자리를 잡은 식물은 무럭무럭 자랐다. 내가 직접 심은 적이 없는지라 무슨 나무인 줄도 몰랐다. 곧게 올라오던 줄기에서 세 갈래 가지가 나오더니 이내 멋진 수형을 갖춘 나무로 자랐다.

어느 해 꽃이 피고 나서야 벚나무인 줄 알았다. 그리고  스므해가 넘는 지금까지 봄이면 어김없이 한아름 꽃을 선물하고 여름이면 초록의 청량감을, 가을엔 고운단풍까지 아낌없이 주고 있다.


작년 한해, 누군가가 그리울 때 자주 벚나무 아래를  서성였다. 

나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애완견 또찌도 벚나무 아래에서 하늘을 쳐다보곤 하였다.

작년 이맘때 또찌가 하늘나라로 간 뒤 한줌 뼈가루를 어디에 묻어줄까 하다가 벚나무 아래 우리가 늘 함께 있었던 그 자리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었다.

그래서일까 올해의 벚꽃은 유난히 더 곱다.

벚나무 아래 또찌의 보금자리

대부분 나무들의 이름은 그 열매이름을 앞에  붙여 짓는다.

사과나무 배나무 감나무 포도나무등...

아이를 낳 어느순간 자신의 이름을 잃고 누군가의 엄마로 불리는 우리네 삶과도 닮았다.


벚나무도 마찬가지다. 버찌라는 열매 이름을 붙인 버찌나무로 불리다가 축약하여 벚나무로 불린다.

그러고보니 벚나무도 열매가 있다. 무수히 많은 버찌가 열리는데 사람들은 열매보다 꽃을 더 기억하고 벚꽃나무로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쥐똥만한 버찌열매를 사람들은 관심조차 주지 않는다. 하지만  속의 새들에게 버찌는 중요한 양식이다. 

봄 풍경 중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모습은 먼 산에 벚꽃이 피어있는 경치를 볼 때이다. 사람도 들어 설 수 없을 만큼 깊은 산속에  군데군데 벚나무가 심어져 있는 모습은 '고향의 봄'을 떠 올리게 한다.  아마 이 나무들은 새들이 먹고 버린 씨앗에서 싹튼 벚나무일 것이다. 새들이 주인인 벚나무들이다.


뜰에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나는 분주해 진다. 집 안에 들여놓았던 화분들을 밖으로 내어 놓는 일, 옥상텃밭모종을 사서 심는 일도 벚꽃이 피고 난 후에야 하게 된다.

언젠가 날씨가 따뜻하여 화분을 일찍 내어 놓았다가 찬바람에 잎이 다 말라버린 적이 있었다.

 그후로는 벚꽃이 피는 날이 봄을 맞는 나의 기준이 되었다.


어린시절 '첫눈이 오는 날'을 기다린 것처럼 어른이된 지금은 '벚꽃이 피는 날' 을 기다린다 벚꽃이 활짝 핀 오늘, 비로소  나의  봄날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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