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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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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Apr 15. 2022

 내리사랑


이렇게 애틋할 수가..., 애틋하다 못해 애절하기까지 한 요즘 우리 집 풍경입니다.


 "우리 귀요미, 밥은 먹었고?"

"엄마, 나는 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아이고 내 새끼 너무 보고  싶어"


영화  비련 여주인공들이 따로 없군요. 밤마다 영상통화로 애끓는 정을 나누고 있는 이 모녀는 내 딸과 손녀입니다.


전쟁? 맞습니다. 지금 밖은 전쟁터입니다. 오늘도 십만 명이 넘는 아군들이 쓰러졌다고 합니다.

내 가족도 예외는 아닙니다. 회사에 다니는 딸아이가 며칠 전에 확진 판정을 받았고 이틀 뒤에 사위가 딸에게서 전염이 되었습니다. 딸이 확진 판정을 받자마자 제일 먼저 나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손녀를 우리 집으로 격리시켰답니다. 잘한 일이었죠 그동안 두 차례 신속항원검사를 받았지만 다행히 손녀는 건강합니다.


누가 알았겠습니까? 함께 살던 식구들이 갑자기 하루아침에 이산가족이 되어 떨어져 살게 될 줄을, 딸네는 지금 말로만 듣던 코로나 자가격리수용 중입니다.


중앙재난 안전대책본부도 이제 더 이상 코로나에서 국민을 보호해 주지 않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기하급수적으로 확진자들이 늘어나자 감당할 수 없었던지 오미크론은 감기 수준이라는 터무니없는 말로 슬그머니 정책을 바꿔 놓았습니다.

일주일간 자가 격리한 환자는 환자 본인이 온라인 처방하여 약국에직접 약을 처방받을 수 있게 되었답니다. 격리 중에 이탈하면 추적하여 벌금을 물게 하던 예전과는 너무나 느슨해진 시스템입니다.


이제 자신의 건강은 각자가 알아서 지켜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길 건너 아파트에 사는 딸네 부부가 코로나 확진자가 되어 신음하고 있고 다행히 일찍 격리하여 무사히 학교에 다니고 있는 손녀 아이는 내가 건사해야 되기 때문에 나는 신경이 바짝 곤두섰습니다. 이제 더는 코로나가 우리 가족을 위협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전보다 더 철저히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고 있습니다.


학교에 가는 손녀 아이의 치다꺼리는 물론  환자들을 위한 먹거리를 날라주는 일도 엄마인 내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배달음식을 사 먹을 테니 자기들 걱정은 하지 말고 손녀딸이나 잘 부탁한다고는 했지만 아픈 마누라를 간병하다 사위까지 환자가 되었으니 이것저것 챙겨 현관문 앞에 두고 오는 날이면 마음 한구석이 짠해집니다.


오미크론의 증상은 사람마다 다른 개별성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다행히 딸아이는 경증으로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사위는 고열과 기침 흉통으로 밤잠을 설친답니다. 무엇보다도 목이 너무 아파서 음식을 삼킬 수 조차 없어 영양주사라도 맞을까 하여 병원에 갔지만 일반 병원에서는 환자를 받아들여주지 않아 수소문하여 겨우 보건소에서 링거 주사를 맞았다고 합니다.

3년 전 우환에서 코로나가 처음 발병했을 당시 사회적 상황과는 너무나 다른 대처에 그저 화가 날 뿐입니다.

'각자도생' 이제 내가 살길은 나 스스로 찾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아픈 사람만 억울한 세상입니다.


일주일 후, 우리 집은 새로운 드라마가 펼쳐집니다.

사위보다 이틀 먼저 격리 해제 조치를 받은 딸아이는 격리 해제가 되자마자 자신의 딸이 있는 우리 집으로 달려왔습니다. 일주일간 떨어져 지낸 딸이 보고 싶어 한 달음에  달려온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이들 모녀의  만남을 허락할 수가 없었습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었지요.

딸아이가 격리 해제가 되었다고 해도 아직 딸네 집에는 아픈 사위가 있고  딸은 아직 음성이라는 확신이 없기에 집 안에 들일 수가 없었던 겁니다. 현관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 애타게 바라보는 두 사람을 보면서 전들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현관문 앞에 손녀가 입을 옷가지들을 두고 돌아가는 딸의  뒷모습이 어찌나 안타깝던지 그만 눈물이 찔끔 나더라고요

이거 원, 뒤늦게 팔자에도 없는 악역을 하려니 이것도 정말 못할 짓입니다.


유증상자의 격리 해제조건에는 발병 일주일 후 해열제를 복용하지 않고도 발열이 없는 상태로 증상이 호전되어야 한답니다. 딸은 그렇다 치고 문제는 사위입니다. 격리 해제 기간이 이틀이나 남았으며 아직도 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상황인데 그런 사위와 한 집안에서 지내고 있는 딸이니 아무리 격리 해제가 되었다고 해도 섣불리 집안에 들일 수가 없었던 겁니다.


둘 다 음성 확인 후 집안 소독을 말끔히 한 후에 손녀딸을 집으로 보내겠다는 나의 의견에 저 편에서는 결사반대입니다. 사위가 격리 해제 통보를 받은 후, 이번 주말에는 아이를 데려 가도 별일 없을 거랍니다.

양쪽의 의견이 팽팽합니다.


오늘로 벌써 열흘 째, 내 딸아이는 제 자식을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보고 싶고 만지고 싶을까요,

내리사랑,

물불을 가리지 않고 흘러가는 사랑인 줄 내 모르는 건 아니지만 어쩝니까 나 역시 내 자식이 힘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큰, 내리사랑을 하고 있는 중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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