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붉은 지붕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희동 김작가 Apr 18. 2022

꽃보다 아이

코로나에 확진된 엄마 아빠와 떨어져 우리 집에서 지내던 손녀가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가 떠난 오늘 , 빈자리가 헛헛하다. 

손자 손녀들이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더라는 말은 천방지축 어린 아기 일 때 하는 말인 듯, 의젓한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손녀는 올 때 반갑더니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뒤엔 집안이 온통 썰렁하다.


집에 아이들이 있으면 공기가 다르다. 잠시도 쉬지 않고 재잘거리며 바쁘게 돌아다니는 아이는 집안의 공기를 휘저어 주는 청량제이기도 하다.

2주일 동안을 우리와 함께 보낸 손녀와는 지금껏 중에 가장 긴 시간 살붙이고 지낸 기간이었다.


새로 돋은 연초록 잎들이 생동감을 주는 것처럼 아이가 온 후 , 우리 집은 생기 넘치는 봄날의 연속이다.

이 작은 소녀의 동선에 따라 걸어가는 발자국마다 새싹이 돋고. 시도 때도 없이 할머니를 부르는 소리, 피아노를 치는 소리, 매일 같은 시간에 울리는 대문 앞 종소리와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는 봄 들판을 적셔주는 시냇물 소리와도 같다.


이 아이가 즈이 엄마 배 속에 있을 때쯤, 나에게 커다란 위기가 닥쳤다. 정기적으로 받는 건강검진 후 대장에서 혹이 발견되었고 아무 일도 아닐 거라는 바람과 달리 수술 후 조직검사 결과 악성종양이라는 소견이 나왔다.

담당 의사에게서 청천벽력과도 같은 결과를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새로 태어날 아이와 얼마나 함께 할 수 있을까라는 것뿐,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캄캄하고 막막했던 지난날이 한 생명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잊혀 가고 있다는 건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기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솟아나는 엔도르핀이 내 의 나쁜 것을 소멸시켰는지 더 이상 다른 곳에 전이되지 않은 행운을 얻었다.


이는 자라면서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준다.

품에 안았을 때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가, 완두콩같이 토실한 팔뚝을 만졌을 때의 부드러운 촉감이, 첫발을 떼었을 때의 환희가, 빠진 이 사이로 헛바람이 세는 말을 하는 아이를 바라볼 때의 귀여운 모습, 그런 아이를 볼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미소가 터진다.

내 아이를 기를 때는 채 장착하지 못했던 할머니의 미소를 내가 갖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 사이 벚꽃이 지고 있다. 봄이면 꽃구경을 하러 오는 행락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벚꽃 성지가 우리 동네에 있다.

늦은 감이 있지만 동네산으로 산책을 갔다.

내 눈길은 꽃이 아닌 아이들에게로 자꾸만 간다. 세 살 남짓 되었을 아기에서부터 초등학생과 중학생들까지 모두 선생님들과 함께 야외학습을 나온 듯했다. 그중에서도 어린이 집과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눈에 가장 많이 띈다. 친구의 손을 꼭 붙잡고 행여라도 무리에서 이탈될까 봐 열심히 선생님을 따라 아장아장 걸어가는 아기들, 엄마 아빠가 밖에서 일하는 동안 그들도 자신들이 속한 사회에 적응 중이다. 그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여 한참을 바라본다.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밝음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 아이를 보며 꽃을 바라볼 때의 미소가 번진다. 손녀가 저만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손녀의 모습이 나의 늙음보다 빠르다는 걸 느낀다. 통틀어 아이가 한 명인 우리 집에서는 곧 아이의 모습 대신 사춘기 소녀가 출현할 것이다.


내가 꽃을 기르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의 꽃이 사라지는 게 아니듯이  혹여 내 아이가 아니더라도주변의 아이들을 내 아이처럼 바라보자. 온유한 마음이 얼굴에 미소로 나타나면 도 꽃이 될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리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