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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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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May 10. 2022

캠핑에 대하여

내 여동생의 아들, 그러니까 나의 조카인 이 젊은이는 이모인 나에게 무척 살갑게 한다. 언젠가 전화를 했더니 혼자서 캠핑을 왔다고 한다. 그런 델 왜 혼자서 가 이모도 데리고 가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말인데 마음에 담아 두었던가 보다.

바로 어제, 어버이날 전날 밤에 초대를 받았다. 장소는 한강 난지 캠프장,

한강변으로 라이딩을 할 때 가끔 스쳐 지나가던 곳이다. 모락모락 장작 연기가 피어오르고 고기 굽는 냄새와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리던 곳, 왠지 궁금은 하면서도 나와는 상관이 없는 듯한 장소였다.


캠핑에 관한 나의 잘못된 인식은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다녀온 여름휴가로 부터 시작되었다. 동네의 친분 있는 이웃끼리 강원도 정선으로 휴가를 떠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휴가철 도로 사정은 답답하기가 마찬가지였다.

해가 뉘엿해질 무렵에야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더위에 지친 아이들을 계곡에 풀어놓고 엄마들은 저녁을 준비하고 남편들은 텐트를 쳤다.


혹시 밤에 비라도 내려서 계곡물이 불면 위험할까 봐 산 중턱 평지에 텐트를 쳤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텐트 안에서 여름휴가의 첫 날을 보냈다. 가지런히 지어 놓은 세 개의 텐트 안에서 아이들이 지르는 소리는 똑같았다.


" 아빠 바닥이 불편해요"

"저리 좀 가 좁아 죽겠어"

"자다가 쉬 마려우면 어떻게 해요"


덥고 습하고 좁고 무섭고...,  텐트 치고 자면서 하늘의 별을 바라보자던 낭만은 쥐뿔, 빨리 날이 밝았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여행은 편하려고 오는 게 아니야 그러려면 집에 있지 왜 여행을 와" 아이들과 한 편이 되어 투덜대는 나에게 남편의 개똥철학은 묘하게도 그럴듯하게 들렸다.


고대하던 날이 드디어 밝았다.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려던 아이가 소리를 질렀다.


 " 엄마 내 신발이 사라졌어요"


 곧이어 다른  텐트에서도 똑같은 소리가 들렸다.


 " 내 신발도 없어졌어"


밤 사이에 불청객이 다녀 간 것도 모자라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할 일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바로 어젯밤 우리가 텐트를 치고 잤던 그 자리가 이 마을에서 초상이 났을 때 사용했던 상여를 보관해 두는 상여집 장소라고 했다.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어쩐지 자꾸만 무서운 마음이 들더라니...,. 공포와 스릴러, 써스펜스의 절정이다.

그날 이후, 캠핑이란 '불편한 텐트 안에서 잠자기'라는 의미로 각인되었다.  


그런 뜻에서 오늘의 초대는 나에게는 파격이다. 잘 지어진 캠프를 보는 순간 그동안의 편견이 와르르 무너졌다. 30년 전 내가 체험한 캠핑이 열악한 고시촌이었다면  지금 이곳의 캠프는 5성급 호텔이다.

깔끔하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마련된 캠핑장에는 각자 개성 있게 지어놓은 캠프들이 들어서 있고 조카가 쳐 놓은 텐트 안에 침대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예쁘게 쪼개어 놓은 참나무 장작이 타는 소리라니...,

캠핑을 가면 라면이 최고인 줄 알았는데 가정식이 울고 갈 만큼 다양한 요리를 척척 만들어 내놓는다.

전채요리로 나온 꼬막 국수 무침, 새콤 달콤한 요리를 먹고 나니 푸짐한 소고기 등심과 버섯, 소시지 장작구이가 준비되었다. 참나무 연기로 훈제된 구이와 와인 한 잔으로 기분이 말랑 말랑해 지려는데 주꾸미 삼겹살 볶음이 웬 말? 밀 키트로 손쉽게 요리를 만들어 먹을 수 있어서 좋단다. 먹다가 배부르면 주변 산책을 하고 또다시 먹고 마시며 잔잔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청양고추를 썰어 넣고 끓인 시원한 어묵탕을 끝으로 무려 세 시간에 걸친 식사가 마무리되었다.  


무엇보다도 어스름 저녁을 나붓이 앉아서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좋다. 해 떨어지기 전에 서둘러 들어가야 하는 게 집인 줄만 알았는데 이런 집도 있구나 참 좋다야 소리가 연신 나왔다.


해가 지자 등불을 켜 놓았다. 알코올을 태워 밝히는 불빛이 너울너울 춤을 춘다.  

밤바람에 어디선가 향긋한 아카시아 향기가 실려온다. 온풍기가 텐트 안을 훈훈하게 해 주었다.


모닥불에 둘러앉아서 도란도란 추억을 나누는 동안 캠핑에 대한 나의 불편한 기억들은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새로운 추억을 선물해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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