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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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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Jul 22. 2022

그때는 옳았고 지금은 아니다

손녀가 코로나에 걸렸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목이 따끔거린다는 말에 혹시나 해서 자가진단을 해 봤는데 글쎄 두 줄이 선명하더랍니다.


이런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이틀 뒤면 딸네 가족은 멀리 하와이로 여름휴가를 떠날 계획이었답니다.

만약 여행 중에  타지에서 아이가 아팠다면 어땠을까요,  생각만으로도 아찔하지만 여행을 이틀 남겨두고 손녀가 확진 판정을 받은  오랜만에 여행 계획을 세우고 마음이 들떠있을 딸네에게는 너무나 황망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실은 올봄에 딸과 사위가 함께 코로나에 걸렸습니다. 그때 나는 재빠르게 손녀를 격리해서 외가인 우리 집으로 데려왔더랍니다. 덕분에 손녀는 코로나를 피해 무사히  학교를 다닐 수 있었지요

하지만 결국 뒤늦게  코로나에 걸리고 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차라리 가족이 함께 아파서 항체가 생겼더라면 지금 가족여행을 취소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판단이든 그 당시에는 최선의 결정을 합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때는 옳았지만 지금은 아닌 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잘못된 상황에 대하여 자신의 실수였어라고 쉽게 말해 버리지만 실수 이전의 결정 단계에서는 누구나 옳다고 생각했을 니다.


다행히 손녀의 상태는 아직은 평소 감기 정도의 증상이라고 합니다. 이제는 여행을 취소하는 일이 남았습니다.

비행기 티켓은 물론, 머물 곳의 숙소와 렌터카 등 미리 예약해 둔 것들을 취소하는 게 한 둘이 아니랍니다. 물론 그중에는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도 있답니다.


직장인들에게 휴가는 쉼을 통해 다시 활력을 찾는 에너지 축적기간이기도 합니다. 집안 살림뿐 아니라 아이를 건사하며 회사를 다니고 있는  딸아이가 계획한 이번 가족 여행은  어쩌면  자신에게 주는 포상일지도 모릅니다.

아이의 코로나 확진으로 인해 여름휴가를 포기하는 것도 안타까운 일인데 위약금까지 물어야 한다니...


이럴 땐 엄마인 내가 나서야지요 대책 없는 오지랖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제 결정은 그 순간만큼은 진솔했습니다.


저희 집은 다행히 위층과 아래층이 독립적인 구조로  되어있어서 손님들이 와서 묵어도 전혀 불편하지가 않습니다.

아픈 손녀에게 위층을 내어 주고 내가 손녀를 보살핀다면 아마 딸과 사위는 여행을 떠나도 될 듯하였습니다. 나의 결정에는 마스크에 대한 신뢰도 한몫했음은 물론입니다.


아이는 내가 보살 필테니 너희 둘만이라도 여행을 다녀오라고 했지요

사실 나는 면봉을 콧구멍에 쑤셔 넣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만 나중에 내 결정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되더라도 지금은 그게 최선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딸이 영상 통화를 보냈습니다. 지금쯤  푸른 태평양 바다에서 파도를 즐기고 있어야 할 이 가족은 세 명이서 누우면 비좁은 침대 위에 함께 누워 행복한 얼굴입니다.


하마터면 나는 또 한 번 잘못된 결정을 할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행을 피하려는 사람보다 불행을 이겨내려고 하는 사람이 결국 행복해진다는 나는 지금 아이들이 보낸 영상을 보며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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