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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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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Sep 24. 2022

9월의 밥상

일 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달은 9월이다.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하지만 한낮에는 아직 떠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맥 풀린 더위가 있는 요즘, 매미들의 함성이 사라진 나뭇가지에는 진한 녹음이 정적을 이루고 있다.

여름의 끝자락과 가을의 첫 발자국이 겹쳐져 있는 9월은 마치 달콤한 아이스크림 위에 쌉쌀한 커피를 끼얹어 먹는 아포가토의 첫맛 같기도 하다.


일 년 열두 달을 펼쳐놓고 가장 살만할 때를 고르라고 하면 나는 지금 이때, 9월을 꼽을 것이다.


9월은 과일에 단맛이 들고 곡식은 알곡이 여물 준비를 한다.  위에 사는 생물들 뿐 아니라 바닷속 물고기들도 지금이 가장 살이 오르고 기름질 때이다.


풍요로운 계절이 시작되는 9월에는 우리네 밥상도 풍성해진다.


우리 가족 중, 남편과 딸과 손녀의 생일이 모두  9월에 들어있. 9월에는 그래서 가족모임이 잦고

 나는 더욱 분주 해진다.


오늘은 남편의 생일이다. 일 파티를 집에서 하기로 하고 아이들을 초대했다.

에서 사 먹으면 편하고 좋을 걸 굳이 집에서 음식을 만드느라 애쓸 것 있냐며 외식을 하자던 아이들도 푸짐한 생일상보면서 한껏 흐뭇해하였다.


특별한 요리 솜씨가 없어도 최고의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비법은  따로 있다. 바로 이 시기에 제 맛을 품는 전어와 살이 차오른 게, (가을엔 숫게를, 봄에는 암게가  살이 좋다고 한다.) 살아서 튀어 오르는 새우등, 이 모든 재료들이 생일상을 풍요롭게 만들어  때문이다.


가을 전어는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지 않는가,

숯불에 은근히 구운 전어는 냄새도 좋지만 맛은 더욱 고소하였다. 평소 퓨전음식에 입맛을 들인 아이들 조차 거침없이 살을 발라 먹었다.

올해는 게도 풍년이다. 내가 한 일은 살아서 움직이는 게를 사서 씻어 놓은 게 전부, 모든 수고는 찜솥이 다했다.

살이 꽉 찬 게살을 먹으며  ''네가 게맛을 알아?''라는 말에 대꾸할 답이 생각났다.

''9월에 먹으면 누구나 알게 되지요''


꼬치에 꿰어 직화로 구운 대하는 소금 위에서 구운 것보다 더 연하고 고소하다.

껍질을 까서 서로의 입에 넣어 주는 딸네 식구의 모습이  바라보기만 해도 마냥 흐뭇하다.


생일파티의 클라이 막스는 남은 게를 넣고 끓인 라면이다. 게살 어디에 이처럼 깔끔하고 시원한 맛이 숨어 있었는지, 정성 들여 끓인 생일 미역국은 이날 얼큰한 게 라면에 치여 생일상의 주 메뉴에서 하락, 세컨드 메뉴가 되어 버렸다.

찜통에 쪄 주기만 하면 게 요리는 끝



음식 중에는 양념 맛으로 먹는 게 있는가 하면 순수한 재료 맛으로 먹는 게 있다. 오늘 준비한

생일상은 내 손맛도 양념 맛도 전혀 들어있지 않은 온전히 순수한 제맛으로 먹는 음식이었다.


가장 맛있는 음식은 제 계절에 나는 재료로 만든 음식이다. 올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려서 작물이 피해가 컸다고 하는데 그런 중에도 시장에서는 풍요로움이 느껴진다.

밭에서 나는 채소와 바다의 생선, 온갖 과일들이 계절의 단 맛을 품고 있다. 


9월의 밥상은 바람 맛이고 햇빛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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