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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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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Sep 17. 2022

막둥이

60년 전에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아홉 살 소녀는 건넌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귀를 틀어막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미묘한 호기심으로  문틈 사이의 상황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짐승처럼 울부짖는 고통의 소리가 엄마가 질러대는 소리라곤 차마 믿기 어려웠다. 저러다가 울 엄마 죽겠네.., 눈물 한 방울 뚝 떨어지려는 순간에 갑자기 찾아온 정적, 그리고 곧이어 우렁찬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나는 큰 한숨을 내 쉬었다.


살며시 미닫이 문을 열고 바라본 그곳에서 맨 처음 내가 본 것은 산파의 손과 이불에 얼룩진 핏자국이었다.

가슴이 뛰었다.

 엄마가 죽었나 보다. 두려움에 문고리를 쥐고 어쩔 줄 모르는데 전에 없이 들뜬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막둥이가 태어났다!''

또다시 큰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내  막둥이 동생이 예순 살을 맞는 생일날이다. 이상하다 내가 예순 살을 넘길 때도 느끼지 못했던 감회가 새록새록 생각난다.


현직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으로 어느새 정년을 앞두고 있지만 나는 지금도 귀여운 막둥이로만 보이니 어찌할꼬? 


어린 시절 우리 형제들은 제삿날에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모인 아버지 형제들을 보며 우리도 저런 날이 올까?라고 상상한 적이 있었다.

그때 누군가 아마 막둥이가 환갑이 되면 우리도 모두 저렇게 하얗게 될 거야,라고 해서 웃은 적이 있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코로나로 발이 묶이기 전까지 친정 가족들은 매년마다 한 번씩 가족 야유회를 가지며 우애를 다졌다.

대 가족인지라 장소를 고르는 일부터 이동하거나 식사 준비를 하는 모든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런데도 대학생들의 MT를 방불케 하는 규모의 모임을 늘 즐겁게 치러내는 건 만년 총무인 막둥이 덕이 다.


제일 맏이인 큰 오빠와 막둥이는 무려 19년의 세대차이가 있지만 가족모임에서는 함께 어울려 놀았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

올케들은 모르는 어린 시절 우리들의 별명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며 엄마의 회초리가 무서워서 말 못 했던 일들을 고백하여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지금에야 와서 생각해보니 늦게 태어난 막둥이는 알 수 없는 일화들이 수두룩 할 텐데도 제일 크게 웃고 뭐든 묵묵히 따라 해 주었다


오늘 아침 일찍부터 가족 카톡방이 생일 축하 인사로 분주하다.

60년 전의 공기와 기온이 똑같이 느껴지는 오늘, 나는 아홉 살 소녀가 되어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집안의 분위기와 알 수 없는 초조함으로 잔뜩 웅크렸던 그날로 돌아간다. 그리고 아들이 태어났음을 알리는 환희에 찬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 아이가 그새 환갑이랍니다 아버지, '


우리말 어원사전에서 막둥이의 본래의 뜻을 찾아보면 '잔 심부름을 하는 사내아이'라고 되어 있다. 막 부리는 아이라는 뜻이다.

이럴 수가...

마지막에 태어난 어린아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며 지금껏 서슴없이 '막둥이'를 애칭처럼 부르며 살았는데 이젠 그렇게 부르지 말아야 할 것 같다.


60년을 불러온 애칭인데 대신할 호칭이 없다. 그깟 의미야 고치면 되는 거지 뭐,


이제부터는 '마구 부려먹는 아이' 막둥이가 아닌 '마구마구 귀여운 귀염둥이'라는 의미로 다시 고쳐 불러야겠다. 막둥이들은 나이가 들어도 귀여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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