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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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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Sep 03. 2022

세대차이

할머니와 손녀는 친구였다. 그들에게 세대차이는 제로 값과 같아서 나이에 어떤 수를 곱해도 똑같은 값이었다.

손녀의 말이라면 무조건 두둔하 편을 들어주는 할머니에게 손녀는 제 주변의 온갖 문제들을 가져와서 풀어놓는다.  딴에는 사뭇 진지하고 심각한 일이지만  할머니에게는 봄바람이 귓불을 간지럽히듯 살랑거리는 이야기들이다.

자기는 바지가 좋은데 엄마는 자꾸 치마를 입으라고 한다거나 아빠가 담배를 끊었으면 좋겠는데 자기 말을 안 들으니 고민이라는 등,


이럴 때 할머니는 '금쪽같은 내 새끼' 오은영 박사보다 더 속 시원한 해답을 준다.

엄마는 예쁜 종아리를 내보이게 하고 싶어 치마를 입으라 하니 네가 입고 싶은 바지를 입되 반바지를 입는 게 좋겠다 하고 담배를 끊지 못하는 아빠에게는 할머니도 곁에서 도와줄 테니 줄기차게 권유해 보라고 했다.


어떤 꽃이 이렇게 고울까, 무슨 열매가 이리 향기가 진할까, 멀리서 손녀를 바라만 봐도 할머니의 얼굴에는 미소가 절로 피어오르곤 하였다.


그런데 평생 아침 햇살처럼 눈부실 줄로만 알았던 그들 사이에 어느 날부턴가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초등학생 손녀의 사춘기가 시작되었나 보다.  


아이는 아프면서 자란다더니 코로나에 걸려 한번 되게 앓고 나더니 두 볼에 젖살이 빠지고 제법 숙녀티가 난다. 뿐만 아니라 말수가 부쩍 줄고 전처럼 잘 웃어주지도 않는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 품에 안겨 본 지도 퍽 오래전 일인 것 같다. 변한 건 아이뿐이 아니다

 언제부턴가 할머니도  

''어른에게 럼 못 써'라는 말을 아이에게 자주 하게 되었다.


이제  사람은 더 이상 세대를 뛰어넘은 친구가 아니라 베이비붐 세대와 MZ세대의 갈등을 함께 겪는 어른과 아이가 되었다.

말로만 듣던 세대차이가 틈을 파고들어온 것이다.


같은 대, 같은 문화를 누리며 살면서도 다른 감정이나 가치관을 가진 세대차이, 베이비붐 세대에서부터 386세대 , X세대.  Y세대. MZ세대까지, 겨우 백 년도 안 되는 시간의 흐름 속에 인간의 감정을 마치 화학기호처럼 분리해 놓은 단어가 머니는 못마땅하다.


래서 생각했다. 지난 십이 년간 손녀와 친구처럼 지낸 것은 서로 요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리광을 부리고 떼를 써도 예뻤던 것처럼 아이의 낯선 모습, 새로운 변화까지 사랑하자. 마음속에 완전 삭제 기능하나 설치해 두고 눈에 선 행동이나 말투는 삭제해버리자


할머니는 요즘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옳으면 너는 그르다고 생각한 자신의 가치관을 바꾸려고 생각하니 삶이 훨씬 부드러워졌다.

MZ세대뿐만 아니라 X세대와 Y세대까지 이해의 폭을 넓히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선을 긋는 순간 누구나 적이 된다. 다름을 인정하고 아집을 버리면 격차가 줄어든다.


오늘은 손녀가 함께 MBTI 검사를 해보자고 한다. 손녀와 할머니가 똑같은 결과가 나왔다.

둘은 어쩔 수 없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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