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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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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Oct 05. 2022

힘들 땐 밥이 최고다

도톰하게 썬 무를 냄비 아래 깔고 그 위에 고등어를 올린다. 고등어 졸임은 매콤 달콤해야

맛있다. 무가 뭉근해질 때까지 졸이면 더욱 맛있다.

고춧잎나물 그게 좋겠다. 여름내 풋고추를 따서 먹고도 아직 파란 고추가 주렁주렁 매달린 고추 가지에서 고춧잎을 땄다. 약 한 번 치지 않았는데 어쩜 이리도 잘 자라주었을까,  금세 작은 소쿠리에 초록 잎들이 가득 찼다.

끓는 물에 살짝 데쳐 고추장과 마늘, 참기름을 넣고 무쳐놓았다.

며칠 전에 담아놓은 고들빼기김치가 얼추 익었다.

지난주 시부모님 산소에 성묘를 다녀오는 길에 그곳 읍내 시장에 들러서 고들빼기다.. 

산에서 직접 캐서 가져온 라며 자신의 까만 손톱을 내밀어 보이던 할머니는 덤으로 알밤을 한 줌이나 주셨다

쌉쌀한 뒷 맛이 일품인 이 고들빼기김치는 아마 잃은 입맛도 찾아 줄 것이다.

갓 찧은 햅쌀로 지은 밥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난다.


군가 힘들어할 때, 나는 그와 함께 밥을 먹는다. 경치 좋은 레스토랑에서 먹는 일류 요리가 아니라 내가 지은 밥과 내가 만든 반찬으로 차려진 집밥을 함께 먹는다.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인의 정서 중에

" 언제 밥이나 한번 먹자"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가볍게 마시는 커피도 술도 아닌 밥을 함께 먹자는 약속을 하면서 정확한 날짜가 없다니, 기약 없이 정하는 약속도 이상하지만 그 약속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더 이상하다고 했다


그래, 그들이 알리 없지 함께 먹는 밥의 따뜻함을, 밥의 위로를, 밥의 힘을..,


숱한 하루 중에 어느 날인 그 '언제'는 함께 밥을 먹으며 정을 나누기도 하고 또 위로받고 싶은 날이기도 하다. 쌀 한알 한 알이 모여 밥이 된 것처럼 함께 밥을 먹는 행위는 "걱정 마 넌 혼자가 아니야 네 곁에 우리가 있어"라는 따뜻한 의미가 있다.

                                               

동생의 남편, 나의 제부가 갑자기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뇌경색' 진단이 내려졌고 다행히 골든타임넘기지 않아서 약물로 치료는 했지만 후유증이 남을 거라고 했다.


하루아침에 건강하던 가장이 환자가 되어버렸으니 그 놀라움이 얼마나 클까, 갑자기 변한 상황에 기막혀할 동생이 염려스러웠다. 코로나 이후로는 입원 환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환자를 만나러 갈 때마다 PCR 검사를 해야 하고 검사 결과 음성이 나와도 가까이서 만날 수가 없다. 가족들은 더 안타까울 뿐이다.

그 새 수척해진 동생을 위해 밥상을 차렸다.


"어서 먹고 기운 내"


나 역시 언젠가 나를 위해 차려놓은 밥상에서 한 그 말 한마디가 무척 위안이 되었던 기억이 다. 힘들 땐 밥이 최고다. 혼자서 먹는 밥이 아닌 누군가와 함께 먹는 밥,


"언제라도 좋으니 힘들면 와"


 힘들 때 만날 수 있고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건 너무나 큰 위로다. 그래서 우리는 정확한 날짜를 정하지 않고 아무도 모르는 그 어느 시점 '언제'를 말한다.


"언제 밥 한 번 먹자"


누군가에게 이런 약속의 말들었다면 그 사람은 마음부자가 될 복권하나 품고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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