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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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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Oct 18. 2022

수수  안녕


하루에 두 번, 아침과 저녁나절이면 어김없이 앞뜰 데크에 올라앉아 간식을 청하던 고양이 '수수'가

오지 않는 오늘 아침,  그동안 사용하던 수수의 빈 그릇을 치우며 안녕이라는 말을 되뇌었다.

안녕이라는 말에는 기쁨과 슬픔이 함께 내재되어 있음을 실감한다.


안녕? 수수

수수 안녕!


수수가 내 마음에 들어오게 된 것은 이제 겨우 6개월 남짓, 그 전에는 그냥 아래층에 사는 이웃집 고양이에 불과했다. 가끔 거실 유리창 밖에서 집안을 바라보다가 인기척이라도 나면 쏜살같이 도망가버리는  '창밖의 고양이'일 뿐이었다.


서로 마음이 통하게 되는 건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언뜻 스치는 몸짓이나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눈빛등, 어느 짧은 순간에 정이 스며든다.

수수와 내가 마음을 열게 된 것은 올봄, 어쩌다가 같은 공간에서 지내게 되면서부터였다.


지난 5월,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수수가 살고 있는 1층을 리모델링하기로 했다.

세입자가 입주하여 엄연히 살고 있는 기간에 공사를 한다는 건 입주자의 관대한 배려가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의 안방 천장을 뚫어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창문을 내는 커다란 공사여서 안방을 비워줘야 하는 상황임에도 아래층에 사는 집주인 수수 맘은 쾌히 승낙해 주었다.

공사를 하는 한 달여 동안은 집을 비워 주고 대신 우리 집 위층을 사용하기로 했다.  


사람들은 서로 대화를 통해서 이해관계를 해결 하지만 우리가 가장 염려했던 건 고양이 수수였다. 하루아침에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하면 혹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아님 자신의 터전을 고수하느라 먼지투성이 집에서 버텨내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의 걱정은 기우였다.

주인과 함께 낯선 곳으로 왔지만 수수는 금세 적응하고 위층 베란다에서 햇빛을 쬐며 확 트인 정경을 즐기는 여유를 부렸다.


그렇게 한 집안 식구가 되어버린 한 달 동안 수수와 나는 정이 흠뻑 들었다.

쓰윽 엉덩이를 스치고 지나가면서 관심을 표현하지를 않나 제 이름을 부르면 다가와서  땅바닥에 배를 드러낸 채 누워 재주넘기를 하질 않나 수수는 고양이가 아닌 개냥이였다.


공사가 끝나고 제 집으로 다시 돌아가서도 수수는 자주 우리 집으로 올라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평소 좋아하던 간식을 주곤 하였다.

간식 시간은 아침과 저녁, 누가 정하지도 않았는데 하루에 두 번씩 수수 자신이 꼭 시간을 지켜서 어김없이 다녀간다.


세입자와 집주인 관계를 넘어서 엄마와 딸처럼 오래오래 함께 지낼 줄 알았계획대로 살 수 없는 게 사람의 일이다.


아래층 처자에게 애인이 생겼다. 나이가 찬 젊은이에게 무엇보다 기쁜 소식이기는 하지만 누군가의 만남이 누군가에게는 이별을 안겨주기도 한다. 남자 친구가 살고 있는 부산으로 떠나게 되었다고 할 때 나는 기쁨과 걱정이 교차되었다.


수수 때문이다. 수수는 다른 고양이와 달리 야생의 본능이 숨어있는 집 고양이었다.

집 안과 밖, 어디에고 수수가 가지 않은 곳이 없다. 단독주택이 많은 우리 동네는 수수가 생활하기에는 적합한 환경이었다.

앞집 지붕을 운동장 삼아 뛰어다니는가 하면 옆집 정원 어디쯤인가에 자신의 전용 화장실도 있었을 법하다.

가끔 어린 쥐새끼를 물고 들어와서 주인을 놀라게 하는가 하면 수수에게 희생되어 뒷산에 묻은 새의 무덤도 서 너개  남짓 된다.

온갖 망나니짓을 하지만 귀여운 걸 어쩌나, 누군가 귀여우면 끝이다라고 한 말이 맞다.


수수는 나에게 유일한 고양이다. 고양이를 좋아하기는커녕, 행여 길고양이라도 만나면  멀찍이 피해 다녔던 내가 수수를 만나고 음의 문을 열었다. 아직 고양이를 데려다가 키울 만큼은 아니지만 남의 집 고양이나 길고양이를 바라보는 눈길이 전과 많이 달라졌다.


이별이나 헤어짐이라는 단어는 사랑이 전제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말인가 보다

제 주인을 따라 이사 가는 날  아침. 여전히 수수가 데크 위로 아침 간식을 먹으러 왔다.

전날, 수수 맘이 나에게 부탁했었다. 내일 긴 시간 차를 타고 가려면 힘들어할 것 같아 진정제를 먹여야 하니 절대로 수수에게 간식을 먹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빈 간식 그릇을 바라보다가 이내 등을 돌리고 돌아가는 뒷모습이 자꾸만 생각난다.

하필 그날은 가을비까지 촉촉이 내리고 있었다.


지금도 아침저녁 수수의 간식시간이 될 때쯤이면 내 시선은 데크 위에 머문다.

나에게 또 다른 사랑을 눈 뜨게 해 준 고양이 수수,


수수야 사랑해

그리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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