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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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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Dec 31. 2022

돌아보자 70

어떤 이별식

성탄과 연말사이에 맞물려 있는 내 생일날. 나는 언제나처럼 집안을 꾸몄다. 꽃병에 꽃을 수북이 꽂고 벽에 가랜드를 걸었다.

집에서 축하파티가 있는 날이면 걸어두는 장식이다

오래전에 내가 만든 가랜드에는 그때마다 알맞은 문구를 써서 붙인다

이번 내 생일에는 어떤 글을 쓰면 좋을까 하다가 매년마다 쓰는 '축 생일'이라는 글보다  '돌아보자 70'이라는 글자를 써서 오려  붙였다.

가까운 친지들과 함께 하고 싶었지만 잦아들지 않는 코로나로 인해 가족들과 조용하게 생일을 보내기로 했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엄마의 칠순 생일파티를 준비하는 눈치다.

사위와 딸 아들은 직장에 휴가까지 내어서 시간을 마련하였다. 연말과 맞물려 술렁거리는 분위기에서 아이들과 함께 외식으로 점심을 즐긴 후 가족대항 볼링대회를 가졌다.

손녀와 한 팀이 되어 열심히 공을 굴렸지만 오랜만에 굴려보는 볼링공은 자꾸만 옆라인으로 빠진다. 승부욕이 강한 손녀는 그럴 때마다 나보다 더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저녁에 집에서 간단한 파티가 시작되었다. 생일케이크에 불을 켜고 생일축하 노래를 부른다. 해마다 가족의 생일이면 늘 하는 모임인데 일흔 번째 생일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다. '돌아보자 70'은 내 생각일 뿐, 분위기는 '놀아보자 70'으로 변하고 있다. 손녀딸의 재롱잔치에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아이들이 모두 돌아가고 오늘 하루 피곤했던지 남편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저녁 이후로는 잘 마시지 않던 커피였는데 오늘밤은 유난히 커피가 생각난다. 오늘밤은 카페인이 잠을 훼방해도 그다지 억울하지 않을 것 같다. 지나간 일들을 뒤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모자랄 테니까...,

혼자서 떠들어 대는 TV도 꺼버렸다.


조용한 집 안에 혼자 앉아서 타다 만 촛대를 바라본다. 촛불 한 자루에 십 년씩, 모두 일곱 개의 촛대가 스러져 있다. 식어버린 내 젊은 날을 보는 듯하다. 나는 함부로 할 수 없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집어 정성스럽게 모았다.

그렇게 나만의 이별 의식을 치렀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젊음이란 옷, 금수저나 흙수저나 상관없이 똑같이 주어지는 이 옷은 정작 입고 있을 때는 그 귀함과 아름다움을 모른다. 그런 단순한 진실을 아는데 무려 70년이 걸렸다.  

 

겉모습이야 조금 젊든 늙어 보이 든 상관없이 70살 이후의 삶은 노년이다. 어느 날 소리 없이 곁을 떠나는 젊음을 아쉬워 하기보다 그동안 수고했노라고 고마웠다고 토닥이며 보내주고 싶다.


흔히  젊음을 바쳤다는 말을 많이 한다. 뭔가를 이루기 위해 나를 잊고 열심히 살았다는  다른 표현으로 들린다.

나는 젊음을 바치지 않았다. 아이들이 자라는 걸 보며  엄마로 함께 자랐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내 앎을 오롯이 퍼주는 게 즐거웠다.

모든 것은 나를 지치지 않게 하는 젊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젊음을 알차게 보낸 것처럼 내 앞에 놓인 새로운 시절도 아깝지 않게 보낼 것이다.


촛불을 끈다. 나의 젊음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 다시는 돌아오질 못할 나의 젊음아, 고마웠어 그리고 사랑해,

오늘 밤 너를 배웅하고 나면 나는 더 이상 뒤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구독자님들 새해에도 늘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기를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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