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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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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Dec 15. 2022

크리스마스 트리에 불을 밝힌다

일 년 중 가장 마지막 달, 12월이 되면 어찌 되었든 아쉬운 마음이 앞선다.

"새해를 맞이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가 지나가

는구나 "

"세월 참 빠르다"

누구나 한 번쯤 마지막 남은 달력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중생(?)들이여 너무 우울해하지 말게나 12월엔 성탄절이 있지 않은가 

잠깐의 무력함을 가볍게 날려버리고 나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준비한다. 

오래된 트리를 꺼내 장식을 매달 때면 뭔지 모를 설렘이 있고 이 잔잔한 즐거움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우리 이웃들 대문에 걸린 각양각색의 리스들



12월이 되면 우리 동네에는 대문에 크리스마스 리스를 걸어두는 집들다. 집주인의 개성에 따라 각각 다른 모양으로 만든 리스들이 정겹다.

문화라는 게 심리적으로 공동체 의식을 가져다주는 것 같다.

길에서 만나면 서로 눈인사 정도를 나누는 이웃이지만 대문 앞에 걸어둔 리스 하나로 왠지 친근감이 느껴진다.

그도 나와 닮은 마음을  있구나라는 생각 때문인 듯하다.

이때쯤이면 우리 집 대문에도 내가 좋아하는 리스를 걸어 다.  집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주는 작은 기쁨이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나는 집안 곳곳에 트리를 만들어 세우는데 우리 집에 있는 트리는 대부분 그 재료를 자급자족한다

가을에 전지 하면서 버려진 나무 가지들을 엮어서 트리를 만들기도 하고 측백나무나 주목나무 같은 초록 잎들은 넓은 양철 대야에 꼽아 놓기만 하여도 충분히 트리의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잎이 떨어져서 앙상한 벚나무 가지에 황금빛깔의 오너먼트와 아기 전등을 달아두었더니 자칫 황량해 보이는 뜰이 따뜻해 보인다. 밤이면 별빛이 반짝이는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 덕분에 창밖 풍경이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하였다.



버려지는 나뭇가지와 잎으로 재활용해서 만든 트리들


우리 집에서 가장 오래된 물건이 크리스마스트리라고 한다면 믿으실지....,

올해로 나이 43세가 되는 트리는 지금까지 정정하게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첫 아이와 함께 나이가 들어가는 이 트리는

아이의 백일날에 구입한 트리다. 해마다 겨울이 되어 트리를 꺼낼 때마다 그날의 감회가 새롭다.


9월에 태어난 아이의 백일은 12월 중순, 크리스마스 무렵이었다. 나는 조촐한 백일상 곁에 트리를 세워 놓았다. 그때의 트리가 아직도 건재하다. 

플라스틱은 오래도록 변하지 않고 썩지 않는 게 단점이자 장점이다. 군데군데 잎이 떨어진 곳이 있지만 전체 모형은 지금도 그대로이다.

 

해마다 12월이 되면 나는 보관해 둔 트리를 꺼내어 먼지를 턴다. 결혼하여 가정을 꾸린 딸아이의 어린 시절 모습부 손녀와 함께 트리를 꾸미는 지금까지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고 세월이 덧없이 흐른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저절로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트리처럼 변함없이 건재한 나의 삶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더 오래 우리의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도록 염원하며 트리를 장식한다.


 올해 나이 43세 된 우리 집의 올드 트리



며칠 전 조회수 30만이 넘는 인기 유튜브를 보다가 나는 황당한 말을 하는 유트버에게 놀랐다. 그리고 화가 났다.

외국에서 그곳의 친구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기면서 한국의 크리스마스 문화에 대하여 묻는 친구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크리스마스는 SS 데이예요 젊은 연인들은 너도 나도 호텔이 나 모텔을 찾아가죠 그래서 짝이 없는 사람들은 유난히 외로워한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외국인 친구들만큼 나도 놀랐다.

개인이 느끼는 주관적인 생각을 전체적 문화로 몰아세워 이야기를 하다니...

우리 집의 43년 된 트리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면 낯붉힐 이야기다.


서양처럼은 아니지만 우리 역시 성탄절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마음은 한결같다. 자신이 지향하는 신앙과 관계없이 세워 둔 트리를 보면서 잠시나마 소외된 이웃을 생각하고 한 해 동안의 나의 모습들을 돌아보기도 한다.  자칫 황량했을 뻔한 겨울, 그 겨울을 기대와 희망으로 부풀 게 하는 것만으로도 성탄절은 큰 의미가 있다.


오늘은 눈이 소복하게 내렸다.

벚나무에 달아 둔 오너먼트가 하얀 털모자를 썼다. 나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소원이 이루어 지기를 소망하며 트리에 불을 밝힌다.



우리집에서 가장 큰 크리스마스 트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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