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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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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Dec 09. 2022

나의 특별한 티셔쓰


12월이 무덤덤하게 시작되지는 않으려나 보다.  국내 유일의 감성 잡지를 만들어 내는 '어라운드' 기획실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다.

연예인도 유명인도 아닌 평범한 독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이끌어내려고 이런 무모한 초대를 했을까?

연남동에 위치한 사옥 앞에 도착하기까지 궁금증이 떠나지 않았다.


내가 사는 연희동과 연남동은 굴다리 하나 사이로 이웃해 있다. 별로 길지 않은 굴다리지만 나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든다. 닮은 듯 다른 문화 차이를 느끼기도 하고 고요와 역동의 교차점 같은 느낌도 든다. 물론 그건 순전히 나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연남동 골목에 있는 '어라운드' 사옥을 마주하면서 문득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어쩌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의 나지막한 옛집들 사이를 비집고 지어진 현대식 종이접기 모양의 삼각형 건물은 참신했다. 내가 생각했던 전형적인 회사의 건물이 아닌 오히려 감각 있는 레스토랑이라고 하면 맞을지..., 그래서 였을까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발견담: AROUND 10 주년, 우리가 머문 자리들) 영상 프로젝트에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곳에 와서야 알았다. 그냥 인터뷰가 아니라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영상 인터뷰라고 한다. 최근 들어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카메라다. 놈은 왜 그리도 쓸데없이 솔직한지.., 다행인 것은 나와 카메라의 거리가 3미터가량 된다는 거, 줌과 확대라는 기능이 있으니 거리 차이는 무의미하지만 심리적으로 카메라와의 거리가 멀수록 피사체의 얼굴 근육은 자연스러워진다.


이곳에 오기 전 안내사항이 있었다.( 내가 가장 자주 입거나 서랍에 모셔 둘 정도로 아끼는 혹은 각별한 사연이 있는 티셔쓰를 준비해 주세요)였다.


옷의 하위 개념, 치마나 바지가 아닌 콕 짚어서 티셔쓰여야 한다. 어쩌면 좋으냐 이 양반들 인터뷰 상대 한번 잘 골랐네 나에게 특별한 티셔쓰가 있는 줄 어찌 알고..,


무릇, 옷 중에서도 티셔쓰는 간편함이 으뜸이다. 누군가는 나부랭이라는 속된 말로 격식 운운하지만 자유스러움을 구속하고 사고와 행동을 규제하는 타 복장에 비해 어떤 옷과도 잘 어울리고 경제적이며 실용적인 티셔쓰는 사랑받아 마땅하다.


언제부터 티셔쓰 예찬론자가 되었는지 나도 모른다. 아마 질문자가 티셔쓰를 왜 좋아하게 되셨나요? 라고 물었던 것 같다.


나의 특별한 티셔쓰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달란다.

지금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손녀가 네 살이 되었을 무렵, 아이가 스케치 북에 그림을 그렸다.

붉은 나무와 사람, 그리고 조각난 활자 등, 거침없이 그린 아이의 그림을 다른 가족들은 낙서라고 함부로 규정해 버렸다. 하지만 나는 그저 아이가 그린 그림이 좋았다. 오래오래 두고 보고 싶었다.  

흰 티셔쓰에 아이가 그린 그림을 그대로 옮겨 수를 놓았다. 아이의 그림이 수놓아진 티셔쓰를 입으면 나는 아이가 된다. 우리는 친구처럼 둘이 똑같이 수놓아진 티셔쓰를 입고 산책도 하고 여행도 다녔다.

훌쩍 자란 아이는 이제 더 이상 작아진 티셔쓰를 입지 못한다. 그런데도 8년이 지난 지금까지 할머니가 수놓은 티셔쓰를 간직하고 있는 걸 보면  소중함에 대한 의미를 아는 것 같다.


특별한 티셔쓰에 얽힌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지 않았다. 내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질문자와 그저 몽롱한 대화를 나눴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이곳 인터뷰 장소에 오자마자 나는 회사에서 마련한 티셔쓰를 갈아입고 있었다.

'월간 티셔쓰 Volume O'  라는 이름의 굿즈를 계획한 것 같다. 상품을 기획한 의도가 작은 것의 가치를 살피기 위한 것이라 하니 어쩌면 내 아이의 낙서에 의미를 두고 오래 기억하려는 나의 의도와 일치한 것 같다. 어쩐지..., 처음 삼각형 건물 사옥에 들어설 때부터 예감이 좋더라니...,


선물로 받은 티셔츠의 가슴에 새겨진 로고가 이채롭다.


"Why are you Wearing a book?" ( 당신은 왜 책을 입고 있나요)


이 티셔쓰도 나에게 특별한 옷이 될 것 같다,

모두를 낙서라고 규정지은 그림을 초현실주의 작품이라고 우겼던 나, 오늘 그들은 내 편이 되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들이 만든 옷을 볼 때마다 오늘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나는 그들의 공감을 입을 것이다.

                                            나의 특별한 티셔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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