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를로 가는 버스 안에서 프로방스의 속살을 바라본다.
창문으로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올리브 나무에는 하얀 꽃이 가지가 늘어질 만큼 수북하게 피어있다. 퇴색된 양철 지붕 방앗간과 공터에 버려져 있는 녹슨 압축기, 뒤뚱거리며 지나가는 거위 한 쌍의 모습, 프로방스의 전원풍경이 내 눈앞에 거침없이 펼쳐지고 있다.
나뭇가지에 빨래를 널고 있는 아낙네와 그 곁에 쪼그리고 앉아서 담배를 피우는 여인, 공을 차는 아이들의 모습, 차창밖으로 소박한 삶의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오늘은 아침부터 일정이 꼬이기 시작했다. 아를로 가기 위해 일찍 역으로 나왔으나 열차는 파업 중이고 대신 마련해 준 버스마저 시간이 지났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비뇽에서 아를까지 기차로는 2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 버스는 한 시간을 넘게 타고 가야 한다. 평소에 기차역 앞에서 버스가 대기한다는 말만 믿고 기다렸지만 버스는 감감무소식이다. 누군가 버스 터미널로 가보라고 하기에 그곳으로 가 봤지만 그곳 역시 아를로 가는 버스는 없었다. 우왕좌왕하다가 할 수 없이 아를과 같은 방향인 님(nimes)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다시 님(nimes)과 아를이 갈라지는 곳인 타 하스코에서 시내버스로 갈아타는 방법을 택했다.
우리가 탄 버스는 시골 마을을 골고루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태우고 내려 주는 시골버스였다. 프랑스 사람들은 모두 몸에 향수만 뿌리고 사는 줄 알았는데 이 버스에서 타고 내리는 사람들은 흙냄새가 밴 수더분한 농부들이었다. 버스 창가에 기대어 끄덕끄덕 졸고 있던 사람이 자신이 내려야 할 곳이 지나쳤다고 달리는 버스를 길가에 세우기도 했다.
오늘은 일진이 꽤 나쁜 날이라고 생각한 처음과 달리 이 곳의 풍경과 이곳 사람들의 진솔한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여행의 재미란 이런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여행이 멀리 있는 창밖의 경치를 즐기는 여행이라면 버스를 타고 가는 여행은 바로 눈 앞에서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는 여행이었다.
기차여행으로 볼 수 없는 경치를 시골버스는 보여 주고 있다.
양귀비 꽃이 무리 지어 핀 언덕을 시냇물과 함께 달리다가 다리를 건너기도 하고 붉게 익어가는 버찌가 버스 창문에 손이 닿을 듯 스치기도 한다. 탁 트인 들판으로 난 길에서는 멀리 하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봉우리가 보인다. 앙드레 지드의 작품 속에 프로방스의 산들이 묘사되어 있었다. 저 산은 알퓌유 산이 아닐까? 아님 바람이 많이 부는 방투산 일지도 몰라, 정상이 평평한 걸 보면 뤼베롱 산이 맞겠는 걸… 틀려도 상관없다. 어느덧 나도 느슨한 여행객이 되어 경치를 즐기고 있다.
타 하스코에 도착했다, 고흐는 자신이 무거운 화구를 메고 걸어가는 모습을 그린 그림에 “타 하스코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고흐도 아를과 가까운 이 곳을 다녀갔던가 보다. 우리를 내려 준 정류장 주변에 로마시대 건물들이 보인다. 입소문이 난 동네보다 오히려 이 곳처럼 한적한 시골에서 더 여행의 맛을 느끼게 된다.
멀리서 버스 한 대가 우리가 있는 곳을 향해서 달려오고 있다. 어느 나라나 시골 풍경은 비슷하다. 버스를 보고 어디선가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버스에 빈 좌석이 없을 만큼 꽉 찼던 이유를 아를에 와서야 알수 있었다, 마침 오늘이 아를에서 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도로변으로 끝이 보이지 않을만큼 긴 장이 서 있었다.
이 곳의 버스는 대부분 여자 기사님이 운전을 한다. 몸집이 거대한 아줌마 기사님은 비좁은 버스 통로를 다니며 차표를 끊어 준다. 그리고는 이 버스는 아를로 가는 버스이니 님(nimes)으로 가는 손님은 내려 달라고 소리 지른다. 몇 사람이 주춤거리며 일어나서 내리고 있다. 아직도 글을 읽지 못하는 프랑스 사람이 있는 이 곳은 진짜 프로방스의 깡촌이 맞는 것 같다.
지루하지 않은 풍경 끝에 멀리 아를의 성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행중에 만난 영국인 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