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가 없으면 아를도 없다

별이 빛나는 밤. 아를

by 연희동 김작가


어젯밤 ‘고흐의 편지’를 마저 읽었다.

이곳에 오기 전 파리 외곽에 있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고흐의 마지막 자취를 만났다. 바람에 일렁이는 밀밭과 쓸쓸한 그의 무덤을 보면서 불꽃같은 열정의 그림을 더는 볼 수 없게 만든 아를을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고흐를 만나러 아를로 간다.


버스는 아를 시내에 우리를 내려 주고 이내 떠났다. 우연히도 오늘이 아를의 장날이었다. 길가에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긴 시장이 섰다. 시끌벅적한 장터 옆에 있는 성곽을 사이로 두 시대가 공존하고 있다.

성문 안으로 들어서자 시곗바늘이 멈춰버린 듯 중세의 모습이 나타났다.


입구의 원형경기장은 크고 웅장하다, 로마의 콜로세움보다 더 완벽하게 원형의 틀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아레나의 돌층계에서 나이 지긋한 여가수가 노래를 한다. 그가 연주하는 기타 소리와 고뇌에 찬듯한 여가수의 노래가 조용한 아를 시가지로 울려 퍼지며 마치 영화의 서막을 알리듯 중세도시의 문이 서서히 열리고 있다.


나는 느긋하게 앉아 그 여가수가 햇빛을 피해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노래를 들었다. 샹송을 부르기에는 조금 거칠고 쉰 음성이지만 힘이 있는 목소리였다.


늙고 가난한 사람들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들을 묘사하기에 적합한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캔버스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무한하게 비어 있는 여백.

삶이 아무리 공허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더라도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진 사람들은 쉽게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고흐의 편지 중에서-


여가수의 비어 있는 그릇에 동전을 넣으며 고흐가 바랐을 파이팅도 함께 담았다.


경기장 앞으로 난 골목길을 따라 들어갔다. 널찍한 광장이 나온다. 화강암으로 만든 오벨리스크가 우뚝 서 있는 시청 앞 광장에 네 마리의 사자가 내려 다 보고 있다. 분수대에서는 시원한 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지만 늦은 봄날, 정오의 광장에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어쩌다가 그런 일을..., 자신이 자른 귀를 싸매고 이 광장을 질러갔을 고흐와 그를 경멸하고 업신여긴 군중의 무리가 가장 많이 모였을 장소, 나는 지루한 햇빛이 내리쬐는 광장을 피해 그가 입원했던 요양원으로 갔다.

요양원 앞 뜰의 화단이 먼저 눈에 뜨였다. 고흐가 그린 그림 속의 풍경과 똑 닮은 방사형의 화단에는 그 시절에 피었던 꽃들이 그날처럼 자라고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금 나를 정신병원에 가둬 버리든지 아니면 온 힘을 다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내버려 다오….

일 할 수 있는 기회는 한 번 가면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맹렬히 작업하고 있다.

나의 경우 더 심한 발작이 일어나면 그림을 그리는 능력이 파괴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고흐의 편지 중에서-


동생 테오에게 보낸 참으로 절박한 심정을 쓴 편지다. 자신이 언제 발작을 일으킬지 모르는 상황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할 수 있게 도와 달라는 간절한 부탁의 글이다.

고흐는 이 곳에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그렸다. 고흐가 바라보았을 시선에서 나도 그곳의 사물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고흐의 문화원으로 변해 버린 요양원 건물의 하얀 창틀 사이로 예리한 빛살이 꽂힌다 고흐의 절실한 심정이 빗맞고 나가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밤의 카페테라스'속 배경의 건물이 어디쯤 있느냐고 물었을 때 가봐야 별 것 없다고 한 관광안내소 직원의 말이 의아했다. 안내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반 고흐 카페’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간이 의자로 가득한 포럼 광장 주변에 고흐의 그림 속 노란 카페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노란 차양과 발코니, 붉은 의자 들, 틀린 그림을 찾아보기라도 하듯 그림과 꼭 닮은 모습이다.


“피자와 스파게티가 맛있어요 들어오세요”


날씬한 몸매의 아가씨가 호객을 한다. 누군가 이 곳을 130년의 역사를 가진 맛없는 레스토랑이라고 했다. 이 곳에서 고흐는 레스토랑의 수익을 올려주는 브랜드가 되어 있었다. 관광 안내원이 내뱉은 말의 뜻을 알 것 같았다.


어쨌든 점심은 먹어야 하겠기에 '반 고흐 카페'의 노천 의자에 자리 잡고 앉았다. 내 곁에 한 무리 여학생들이 친구의 생일파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졌다. 아시아인은 무조건 일본 사람 아니면 중국인인 줄 아는 그네들 중 한 명이 나에게 한국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기를 기다린 듯 모두 함께 “방탄”과 "fake love"를 외치며 유쾌하게 떠든다. 소녀들이 부르는 떼창으로 인해 갑자기 고흐의 시간에서 한류 열풍의 시간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한류의 본토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로 우리 부부는 소녀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반짝 스타가 되었다. 서로 우리 부부 곁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아우성이다. 사실 나는 방탄이 부른 노래 중 아는 게 하나도 없어서 그들에게 조금 미안했다.


십 년 전 동유럽을 여행할 때는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한국인만 보면 말춤을 추곤 하였다. 올림픽을 치르고도 코리아를 몰랐던 사람들이 ‘오빠는 강남 스타일’라는 노래 하나로 코리아뿐 아니라 강남이라는 서울의 동네 이름까지 알게 된 것이다. 음악의 위력을 느꼈다. 그런데 오늘,

한류의 쓰나미가 이곳 프로방스 시골마을까지 휩쓸었을 줄이야,


저 아이들의 우상이 방탄 소년인 것처럼 지금 나의 우상은 빈센트 반 고흐다. 가는 곳마다 그의 숨결이 닿아있는 이곳에서 나는 고흐를 느끼고 있다. 고흐는 아직도 이곳 아를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우리는 노력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일이 우리 다음에도 계속될까 두렵다. 다음 시대의 화가들이 더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우리가 발판이 되어 준다면 그것 만으로도 무언가 이루어졌다고 할 것이다.

-고흐의 편지 ‘노력이 통하지 않는 시대’ 중 에서-


고흐는 아를에서 ‘유토피아 미술집단 만들기’를 꿈꿨다. 다음 시대의 화가들이 자신들처럼 가난하지 않고 풍족한 삶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는 서로 협력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여긴 것이다. 유토피아 미술집단은 만들어지지 못했지만 노력이 통하지 않는 시대는 더는 대물림되지 않았다. 단지 그림의 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인들이 지금은 그들이 가진 능력보다도 노력을 인정받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저 소녀들이 열광하는 방탄 소년들이 바로 노력이 인정받는 시대의 결과물이다.


사실 아를은 어느 도시보다도 아름다웠다.

언덕을 오르면 나타나는 공원. 골목을 걷다가 보면 몇 번이나 마주치게 되는 원형경기장과 그 옆에 폐허가 되어 나 뒹글고 있는 고대 극장의 돌기둥들,

고흐가 아니었다면 아름다운 도시로만 기억되었을 이 오래된 도시는 어디를 걸어봐도 고흐의 방황과 상실감,뿌리 깊은 고뇌가 서려있는 듯 하다.

아를은 고흐가 사랑한 도시이며 그의 영혼의 고향이다. 고흐가 없으면 아를도 없다.


나는 고흐의 그림을 때마다 강렬한 붓터치 뒤에 오는 진한 슬픔을 느낀. 고흐에 대한 연민으로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고흐도 항상 우울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여기 우리 집 외벽은 신선한 버터 빛깔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어 셔터는 반짝거리는 녹색이지

이 집은 광장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광장에는 플라타너스 협죽도 아카시아가 자라는 녹색 정원이 있지

집 안은 온통 회반죽이고 바닥에는 빨간 벽돌을 깔아 놓았지

-누이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마치 자신의 집을 찾아오라고 설명하는 것처럼 자세하게 표현된 이 편지는 한 편의 동화를 생각나게 한다. 신선한 버터 색깔과 반짝거리는 녹색 집이라니, 나는 편지에 쓰인 대로 광장 주변의 노란 집을 찾아다녔다 아를에서 노란 집 찾기는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와 같다. 노란 집이 한 둘이 아니었다. 한참을 헤매다가 결국 지나가는 여행자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노란 집은 제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되었고 지금은 그 자리에 유스호스텔이 들어섰다고 한다. 경상도 사투리가 심한 한국인 여행자에게서 얻은 정보다.


저녁무렵, 론 강 위의 하늘엔 보랏빛 신비한 노을이 번지고 있다. 조금 전만 해도 사람들이 뜸했는데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강으로 모여든다.

그냥 걷다 보면 발길이 머무는 곳이 강가일 수도 있고 노을을 보기 위해서 또는 별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강으로 간다. 화구를 메고 이 곳에 와서 론 강의 별을 그린 고흐의 자리에는 어김없이 많은 사람들이 서성거린다. 별이 뜨면 아마 그림 속의 풍경이 그대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밤은 낮보다 색깔이 더 풍부하다. 어떤 별은 레몬 빛 노란색이고, 어떤 별들은 분홍색 ,

또는 녹색 파란색, 물망초 색으로 빛나기도 하지

-누이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_


마치 시를 읽는 듯한 서정적인 편지는 고흐가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그린 뒤에 보낸 편지가 아닐까,


강변에서 아침에 우리와 함께 버스를 타고 왔다가 성벽 앞에서 헤어진 영국인 여행객을 다시 만났다. 이 부부는 론 강 위에 뜨는 별을 바라보고 싶어서 오늘 하루 이 곳에서 머물기로 했다고 한다.별빛이라는 말에 마음이 잠깐 흔들렸다.


강물이 더욱 붉어졌다. 아비뇽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면 지금 뒤돌아서야 한다.

누군가 내 옷자락을 자꾸만 붙잡는 것 같다.


반 고흐 카페앞에서 방탄소년의 팬들과 함께

아를 시청 앞 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