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뇽에서 만난 젊은 친구가 아를과 님(nimes) 중에 어느 곳이 더 좋으냐고 묻는다. 시간상 두 곳 중에 한 곳만 가야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치 어린아이에게 "엄마와 아빠 중 누가 더 좋으니"라고 묻는 것처럼 애매한 질문이다.
님(nimes)으로 가는 노선은 어제 아를을 가기 위해서 갔던 노선과 비슷하다. 다만 아를과 같은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타 하스코에서 갈라진다. 타 하스코까지는 어제 갔던 길과 똑같은데 기분 탓일까? 오늘은 어제와 다른 풍경을 보는 것 같다.
버스에서 내려 도심으로 들어가는 문을 통과하면 마치 길 안내라도 하듯 수로가 길게 펼쳐져 있다. 펼쳐져 있다는 느낌이 든 것은 마치 칸에서 보았던 귀빈들을 위한 레드카펫처럼 푀세르 대로를 따라 샤를 드골 광장의 분수 앞까지 낮은 물 길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도로변에 펼쳐진 수로
님(nimes)은 샘의 정령인 '니마 우수스'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름만 들어봐도 이 도시에는 물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현지인 들은 ‘님’이 아닌 '니마'라고 불렀다.
이곳은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로마시대의 도시다. 거대한 원형 경기장인 아레나는 아를의 경기장보다도 규모가 컸다. 더구나 보존 상태도 거의 완벽해서 지금도 이곳에서는 투우 경기를 한다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이곳 내부의 전시관에 들어서자 로마시대 검투사들의 모습과 그들이 사용한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영화 속에서 왕이 엄지 손가락을 아래로 꺾으면 검투사는 자신의 칼 아래 있는 상대 검투사의 목을 베는 장면을 보았다. 잔인했다. 바로 이곳이 무고한 생명을 사라지게 한 장소였다고 생각하니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왠지 억울한 영혼의 한이 스민 것 같은 중앙 광장의 흙은 밟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검투사 대신 그토록 순한 소를 상대로 사람들은 흥분하고 열광하고 있다. 아직도 2000년 전 로마 시대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아레나는 그 시대의 함성 소리까지도 변함없이 전승하고 있는 듯했다. 아레나 안에서는 지금도 로마제국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절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구 도시로 갈수록 이곳이 로마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드는 것은 로마에서 본 건물들이 이곳에도 건재해 있기 때문이다. 뼈대만 남은 아폴론 신전과는 달리 메종 카레 신전은 그 형태가 완전해서 어디서 봐도 세월의 흔적조차 느껴지지 않는 건축물이었다. 더구나 길 하나 사이로 초현대식 건물 카데다르가 있었으나 전혀 기죽지 않고 오히려 현대와 중세가 함께 어우러진 조화로운 모습을 보았다.
가끔 무언가 비교를 하다 보면 한쪽이 기울거나 다른 모습이 보이게 된다. 그런데 고대 건물인 메종카레와 초현대식 건물 카데다르는 건물의 재료는 물론 건축의 디자인까지 완벽하게 다른 데도 같은 시대에 만든 것처럼 융화가 된다. 내가 보기엔 코린트식의 쭉쭉 뻗은 원기둥의 메종 카레가 현대적인 건물에 더 뒤지지 않아 보였다. 역도경기 같은 기록경기에서 서로 동점일 경우 나이를 기준으로 승리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처럼 나는 역사가 깊은 고대의 건축기술에 손을 들어주었다.
퐁 텐 공원에서 지친 다리를 쉬어 준다. 커다란 분수와 수로에서 미스트처럼 흩어지는 물안개가 몸과 마음을 촉촉하게 해 주는 듯하다. 울창한 나무와 연못, 거대한 수로가 있어 여행자들의 쉼터가 되기에 꼭 알맞다. 이곳 공원에서의 휴식은 물의 에너지를 흠뻑 받아서 인지 한 여름에 여행을 온다 해도 지칠 것 같지가 않다.
도시 전체에 물길이 촉촉하게 흐르고 있는 님(Nimes)은 야성과 감성을 겸비한 매혹적인 도시이다.
아를과 님(Nime)을 굳이 비교하자면 아를은 아름다운 여성으로 표현할 수 있고 님(Nimes)은 근육이 튼튼한 멋진 남성과 같다고 할까? 이 둘을 함께 보아야만 완전한 여행이 될 것 같다.
바로 이웃하고 있는 두 도시는 마치 성격이 전혀 다른 부부가 백 년을 해로하며 사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여행을 왔다는 젊은 친구에게 하루 늦게 집에 가더라도 님(Nimes)은 꼭 들렸다가 가라고 말해 주었다.
내가 기분 좋게 촉촉한 이곳에서 옛 것과 새것의 조화를 느낀 것처럼 그도 새로운 직장에서 조화롭게 잘 견뎌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메종카레
마뉴의 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