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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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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Mar 17. 2023

삼 년 묵은 수다

꽃보다 할매

파마를 할까? 염색을 할까?

내 단골 미용실 원장은 파마와 염색은 동시에 이뤄질 수 없다고 한다.   긴  시간을 요구하는 지겨운 작업을 짧게 한 번에 끝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누군가 이 두 가지를 함께 할 수 있는 기능 좋은 미용재료를 연구하여 만들어낸다면 로또에 기대를 거는 일보다도 부자가 될 확률이 훨씬 높을 것 같다.


파마로 갑시다

굵게 말아주세요 너무 곱슬거리면 할머니 같거든요

이런 모순덩이 할머니를 봤나. 방금 전에 염색을 고민하지 않았었나? 온통 희끗한 머리카락이 민망하 망발을 하고 다.


"어디 모임에 나가시나 봐요? "


20년 단골손님오래된 루틴을 훤히 꿰고 있는 베테랑의 질문이다.

파마를 할 때가 되었어도 미루고 미루다가  모임 약속이 잡힌 전날에야 거사를 치르는 내 계획을 익히 알고 하는 질문이다.


"3년 만에 갖는 친구들  모임이에요"

  

코로나 상황이 안정세가 되면서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 드디어 만남을 갖기로 했다. 오늘 보게  친구들은  동네에 살았던 고향친구이자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닌 동창생이기도 한 아주 오래된 친구이다. 결혼 후, 서울하늘 아래에 살면서 새댁의 고충을 서로 나누었고 지금은 모두 다 똑같이 손자 손녀 재롱을 보며 사는 할머니가 되었다.

 경아, 연이. 희야, 숙이 이렇게 서로 이름을 부르며 아직도 소녀적 감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네 명의 친구들은 자칭'F4'라고 일컫는.


전에는 예쁘게 보이려고 화장을 했다면 이제는 조금이라도 젊게 보이려고 화장을 한다. 3년의 세월 동안 친구들은 얼마나 변해있을까. 만나지 못한 동안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뀌어 버린 지금

그 모습이 궁금하다.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만큼 친구들도 변했겠지. 오랜만에 입술에 연붉은 립스틱을 발랐다.  


 나만 그런가? 집안일에 에너지를 쏟으면 금세 기운이 고갈되는데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나면 오히려 더 생생해진다.

강남의 일식집은 따로 룸이 있어서 좋았다. 미닫이문 사이로 옆 방에서 나누는 대화가 훤히 들리지만 서로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떠들어도 대수롭지 않다. 하지만 이야기의 톤이 조금만 높아져도 검지 손가락을 입술로 가져가는 요조숙녀 연이 때문에 우리의 목소리는 항상 나긋 거려야만 한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기쁜 이야기부터 할까 슬픈 이야기부터 할까?

이왕이면 기쁜 소식부터 주라

첫 번째 소식은 내가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

그거 정말 기쁜 소식이다. 우린 다 한 번씩 코로나에게 당했거든,  

두 번째  기쁜 소식은 오늘 2차는 내가 쏜다.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이집트 미이라전 티켓 준비되어 있거든,

오 홀..,. 잘 되었네 꼭 보고 싶었는데 ,


애들아 우리 또찌가 하늘나라로 갔어..,.,애완견 또찌를 모르는 친구가 없다. 저런... 얼마나 마음이 아팠니,


한동네에 살면서 내 오빠들을 자신의 오빠처럼 잘 따랐던 친구들은 2년 전 돌아가신 오빠의 이야기에 모두 함께 숙연해지기도 했다.

93세 되신 연이의 친정어머니께서 넘어져 허리를 다치셨지만 지금은 회복되셨다는 소식에 일동은 모두 가슴을 쓸어내린다.


수다의 절정은 뭐니 해도 남편들 흉보기이다. 우울한 소식을 듣고 다운된 기분을 한순간에 날려버리는 남편들의 실수담, 이 시간만큼은 웨이팅이 길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틈새공격을 잘해야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그래도 남편밖에 없다'라는 훤한 결말의 이야기지만 말하는 친구나 듣는 친구 모두 가장 신바람이 나는 시간이다.


기 승 전 손주자랑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토크, 공정하게 돈 내지 않고 무료로 들어주기로 하고 마음껏 자랑하라고 자리를 깔아준다. 핸드폰에 담긴 손주사진  콘테스트까지 마치고 나니 언제 시간이 이렇게 지났을까? 삼 년이나 묵혀 둔 수다를 떨기엔 하루가 모자라다.

이왕 늦었으니 오늘은 실컷 수다나 떨고 이집트미이라전은 다음 주에 다시 만나서 관람하자는 견에 만장일치로 합의를 보았다. 


역시 우리는 죽이 척척 잘 맞는  60년 지기 친구 '꽃보다 할매'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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