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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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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Jun 15. 2023

나의 선인장

내가 가장 아끼는 물건을 누군가 훼손했다면 어떻게 할까요 형복구를 요구하든지 손해배상을 청구하든지 했겠지요 만약 가족 중에 누군가가 나의 소중한 물건을 훼손했다면 말해 무엇합니까, 성질을 있는 대로 부렸겠죠


런데 저 지금 너무 화가 납니다. 원형복구는 커녕 손해배상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화조차 낼 수도  없으니 더욱 미칠 지경입니다.


오늘 아침, 저희 집 지붕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완전교체와 부분수리를 고민하다가 완전교체 쪽으로 정하고 어제 지붕 위에 세워 둔 태양광을 모두 철거했습니다. 미관상 태양광을 지붕에 착하여 설치한 게 실수였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네요 뜯고 재설비를 하는데 상당한 비용이 들더군요 아무튼 태양광은 무사히 철거했고 오늘은  낡은 지붕을 모두 뜯어내는 작업을 합니다.


아침 일찍 인부 두 명이 기다란 사다리를 들고  도착하였습니다. 우리 집 지붕은 옥상을 통해 가야 하므로 인부들이 실내로 들어와서 이층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저희 집 현관 입구에는 내가 우리 집에서 가장 애지중지하는 선인장이 있습니다. 십 년이 넘게 키운 선인장은 키가 2미터는 족히 된답니다. 늘 그 자리에 수문장처럼 서서 위용을 자랑하던 건장한 아이였는데 그만 아저씨들이 실수를 하고 말았답니다. 옮기던 사다리가  넘어지면서 선인장의 목을 스쳤다고  합니다. 목이 뎅강 잘린 선인장은 처참했습니다. 억장이 무너지더군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집 일을 하러 온 인부들이 한 실수이고  그 앞에서는 화를 낼  조차 없으니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며 마음을 다독이 있답니다.


미안해하며 어쩔 줄 모르는 인부들은 지붕 위로 올라가고 나는 부러진 선인장 바라봅니다. 얼마나 아플까, 눈물 같은 진액이 뚝뚝 떨어집니다. 선인장을 다른 화분에 옮겨 심고 보살피느라 지붕공사는 잠깐 잊고 있다가 뒤늦게야  옥상으로 나가보았습니다.


햇빛이 쨍쨍한 지붕 위에서 두 사람이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선인장 소란으로 인해 얼음물 한잔도 챙겨주지 못한 게 미안해집니다.


얼음을 듬뿍 넣은 냉커피를 준비했습니다. 목덜미로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조심스럽게 냉커피를 받아 드는 인부의 모습에서 아까 부러진 선인장의 목덜미가 보입니다. 왠지 둘 다 짠합니다.


언젠가 나의 왼쪽 눈에 갑자기 비문이 생겨 안과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의사 선생님께서 적응만이 치료라고 한 말이 생각납니다.


우리 뇌는 오래 바라보다 보 눈에 거친 것조차 익숙하게 만드는 신비한 기능이 있다고 합니다. 하루아침에 키가 줄어든 나의 선인장도 언제인가는 적응이 되어 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게 되겠지요.


마음이 쓰리고 아플 때 술꾼은 술로 마음을 풀고 소리꾼은 노래로 기분을 풀 것입니다. 나는 지금 글로 화를 풀고 있습니다. 처음 글을 쓰기 전보다 지금 글을 마치면서 마음이 많이 순해졌습니다.


제가 글을 쓰는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상처가 잘 아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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