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에서 오월을 보내고 유월을 맞았다. 양귀비가 지천으로 피어있는 들판위로 하늘은 구름 한점없이 푸르다.
하늘과 땅의 색깔이 마치 태극의 문양과도 같이 빨강과 파랑의 보색으로 극렬하게 대비되고 있다.
오늘 퐁텐느 보퀼리즈 마을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스페인으로 건너갈 계획이다.
마을 입구 주자창에서 내려 마을로 들어가는 순간 나는 동화책 속으로 걸어가는 듯한 착각을 했다. 말도 안된다.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를 두고 떠나야 하다니...,
물레방아의 철거덕 거리는 소리. 시냇물 흐르는 소리. 짙은 녹음과 꽃들, 그리고 초록 물풀과 호수 위를 둥둥둥 떠다니는 오리들, 도대체 뭐냐? 너라는 곳은..., 나를 홀릴 준비가 이미 되어 있었구나,
숲속 마을은 아름답다는 말이 무의미하게 들린다. 그냥 천천히 젖어든다는 말이 맞다.
어렸을 적에 나는 빨래를 하러가는 어머니를 따라서 시냇가를 가곤 하였다. 맑은 물이 흐르는 돌바닥에 하얀 이불홑청을 펼쳐놓고 빨래를 하는 어머니 곁에서 물장난을 치며 노는게 즐거웠다.
산속 마을 퐁 텐느 보퀼리즈에서 계곡물을 보았을 때 나는 빨래가 하고 싶어 졌다. 어머니처럼 하얀 이불 홑청을 활짝 펴서 흐르는 물에 헹구어 내고 싶었다.
'퐁텐느'는 프랑스어로 '샘'이라는 뜻이다. 샘물이 솟아나는 마을, 이름만으로도 싱그럽다.
계곡상류에 있는 샘에는 물의 정령이 살고 있어서 맑은 샘물을 쉼 없이 퍼내고 있지만 아직까지 누구도 샘의 비밀을 알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현대의 측정장비로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프랑스 최고의 샘. 신비한 '비밀의 샘'을 찾아 산길을 오른다.
나무들의 잎사귀가 축축하게 젖은 숲, 그 옆 계곡에서 흐르는 물은 제법 성깔이 있다. 부서지고 내려치면서 구르기도 한다. 하지만 호수에 닿으면 이내 순해져서 맑고 고운 속내를 그대로 드러낸다. 호수에는 초록 물풀이 가득하였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온 보람이 있다. 아침의 숲은 청명하였다. 나무들이 내뿜는 푸른향기가 계곡에서 뿜어져 나오는 적당한 습기와 함께 몸에 스며들어 정신이 맑아진다.
계곡 옆에 있는 공터에 허름한 카페가 보인다.
이끼 낀 나뭇가지가 하늘을 가리고 숭숭 뚫린 나뭇잎 사이로 동그란 햇빛이 동그란 탁자 위에 동그란 무늬를 만들어 내고 있다. 미러볼 불빛 같은 햇빛이 호객을 한다.
숲 속 카페
비밀의 샘을 찾아가기 전에 이 곳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에 마음까지 달콤해진다. 하기야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는 계곡물에 꽃잎만 띄어도 향기로운 차가 될 것 같다.
산길을 타고 용감하게 올라갔다. 도대체 이 물줄기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샘의 정령이 살고 있는 신비한 샘이 과연 있기는 한 걸까?
산길이 사라지고 거짓말처럼 절벽 아래에 깊고 푸른 샘물이 보였다.
샘은 감춰두지 않고 그냥 펼쳐져 있는 게 오히려 더 신비로웠다. 울타리도 없고 방어벽도 없다. 커다란 바위 벽 아래 웅덩이에서 솟아나는 샘물의 검푸른 물빛만으로도 무한한 샘의 깊이를 느낄수 있었다.
신비의 샘
샘물은 계곡이 되어 흘러 내리고 강으로 떠나기전 이곳 산마을사람들곁에 잠시 머무르며 함께 어울린다. 물레방아를 돌리고 초록물풀의 둥지를 쓰다듬으며 오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 물은 옆동네인 닐 쉬르라 소르그를 거쳐 프로방스의 강물인 소르그강의 물줄기가 된다고 한다.
호수위에 오리들이 한갸롭게 헤엄을 치고 있다.
"오리야 오늘은 네가 참 부럽구나"
샘물을 따라 나도 이웃마을로 흘러가고 싶다
오리야 네가 정말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