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후의 일상은 가끔씩 툭툭 떠오르는 어떤 생각으로 감상에 젖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 방 창문으로 비치는 아침 햇살을 바라보다가 매일 아침 닫아 둔 덧창문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빗살무늬 햇살을 생각하고, 여행 중에 사 온 비누 향기 속에서 게스트하우스의 깨진 욕조 타일이 문득 생각났다.
언제나 일요일 정오가 되면 우리 동네 성당에서는 종이 울렸다. 오늘 그 종소리는 노곤한 잠처럼 나를 빠져들게 하였다.
꿈을 꾼 듯 아련하기 만한 프로방스의 풍경들, 언덕 꼭대기의 낡은 고성과 양귀비가 핀 들판, 물오리들이 떠 놀던 퐁텐느 보퀼리즈 마을 앞 호수의 맑은 물, 미칠 만큼 화가 나서 여행을 포기할까 도 했던 살롱 드 프로방스의 황망한 기차역이 그리워지는 건 왜일까. 나를 이끈 종소리는 중세의 도시 아비뇽에 닻을 내려놓았다.
처음 종소리가 들린 것은 오를로주 광장 근처 골목길에서였다. 광장 앞 노천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천천히 산책을 하며 골목길로 접어들었을 때 맑고 투명한 종소리가 들렸다. 무엇인가에 이끌리 듯 발을 멈추고 소리의 근원을 찾아 보았다, 근처에는 생디디에 성당이 있었다, 성당의 뾰족한 화강암 종탑에서 청동종이 움직인다.
이끌린다…라는 말의 뜻을 알지만 실제로 경험한 것은 처음이다. 주변이 조용하다, 내가 원하는 소리만 들린다, 움직일 수가 없다, 이끌림에 대하는 나의 행동과 마음의 변화다
지금껏 이렇게 아름다운 연주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고즈넉한 중세의 마을, 저녁 하늘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는 사춘기를 겪지 않은 어린 소년의 청량한 노랫소리와도 같았다.
종은 한 개의 커다란 종과 주변의 작은 종들이 함께 울렸다. 크게 울리는 종소리 뒤에 이어지는 작은 종소리..., 본캐인 큰 종소리는 똑같은 속도와 똑같은 음으로 종을 울리고 부캐인 작은 종소리는 호수 위의 여울처럼 물결을 만들어 내고 있다. 화선지에 꽃물이 번지듯 조용한 마을이 청량하고 아름다운 소리에 서서히 스며들고 있었다.
마지막 종소리가 높은 교황청의 담장을 넘어 멀리멀리 사라질 때까지 현실에서 잠시 멀어져 있었던 것 같았다. 나는 그제야 발을 떼었다.
종소리가 떠나고 나자 사방에는 어둠이 내리고 골목길엔 하나 둘 불이 밝혀졌다.
사찰에서 울리는 범종소리는 지옥에 있는 중생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울리는 종소리라고 한다. 아비뇽의 골목에서 들은 종소리는 외로운 여행자를 위한 종소리였다. 편안함과 여유로움이 있는 반면 항상 불안감을 동반해야 하는 여행지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는 퍽 위안이 되었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고, 내일 또한 별일 없을 것이라고,
사랑에 빠지면 곁에 있어도 보고 싶은 것처럼 여행을 하면서 더욱 여행이 좋았던 것은 이처럼 사소한 것에서 커다란 위안을 얻기 때문이다
소리에 대하여 연구한 학자들은 인간의 오감 중 가장 나중에 사라지는 것이 청각이라고 한다. 제일 늦게 사라지는 것뿐만 아니라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도 소리가 아닐까.
여행을 다녀온 후 가끔씩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있다. 오늘처럼 늘 들었던 성당의 종소리가 그런 것처럼 내 마음을 움직이는 소리들이 있다.
니스의 바닷가에서 자갈이 파도에 부딪혀서 내는 소리와 엑상프로방스의 분수에서 떨어지는 다양한 물방울 소리, 그리고 아비뇽의 중세골목에서 들었던 저녁 종소리.,.
소리는 움직인다. 멀리 갈 수가 있다. 나는 요즘 그 소리를 듣는다. 발이 묶여 내가 갈 수 없으니 소리가 나를 찾아온 것이다.
어느 오래된 건물의 창가에 있는 성모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