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장화도 슬리퍼도 아닌 운동화를 신고 걸었다. 비에 젖은 운동화는 빨면 그만, 축축한 내 마음이 좀체 마르지 않는다.
어쩌다 보니 작은 양산을 쓰고 나왔다. 우산이 아닌 양산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가려주기는 커녕 오히려 더 굵은 빗방울이 되어 어깨 위로 떨어진다.
비 오는 날, 공원 산책길은 무섭도록 조용하다
오늘은 친정어머니의 기일이다. 코로나 기간 동안 기일에 참석하지 못하다가 코로나가 해제되고 첫 기일인데 이번에는 갑자기 병원 신세를 지는 바람에 친정에 가지 못하게 되었다. 친정 (親庭) 이란 한자어의 어원이 '친한 뜰'인 걸 보면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울타리 안에서 생명을 키우는 정원사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어언 삼십여 년이 되었지만 따뜻한 기운은 아직도 내 가슴에 남아있다
친정어머니에게 딸이란 때론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되기도 하고 때론 서로에게 동지가 되기도 한다. 아들들은 든든해서 좋다 하시던 우리 어머니도 딸인 나에게서는 많은 위로를 얻고자 하셨다. 남에게는 차마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한 보따리 들고 와서 풀어놓으면 나는 밤새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어머니의 엉킨 마음을 풀어 주는 일은 간단했다. 마음을 헤아리는 말 한 마디면 족했다.
"많이 속상했겠네"
상처를 보듬는 한마디 말에 어머니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음날이면 훌훌 털고 오셨던 길로 다시 가셨다.
지금의 내 나이에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그 나이쯤에 겪는 아픔을 나도 지금 겪고 있다. 남들에게 이야기하면 흉이 되고 나 혼자 삭이기에는 버거운 일들, 나도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다.
시간이 돈인 요즘 아이들은 엄마의 속앓이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나 역시 언제인가부터 비극보다는 희극이 좋다. 웃고 즐기며 살아도 짧은 인생인데 굳이 막장으로 가는 드라마를 보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예전에 없는 직업군이 늘어나는 것도 그 이유다.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으면 심리상담사를 찾아가면 된다. 예전처럼 밤새워 풀어놓은 이야기보따리를 들어주고 따뜻한 위로를 하는 처방이 아니라 학문적으로 연구된 처방을 내린다.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는 그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오랜 시간을 걸은 것 같다. 온몸은 비에 젖었지만 뜻밖에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평소에 사람들로 꽉 차 있던 카페골목이 조용하다. 언제나 웨이팅 줄이 길게 늘어서 있던 유명 카페도 오늘은 한적하다.
쉼,
비는 나뿐 아니라 모든 걸 쉬게 한다. 비의 처방이 옳았다. 모든 소음에서 벗어나 조용히 쉬고 싶다.
작은 우산 아래에서 비를 가리려고 용쓰기보다 때론 운동화처럼 용감하게 빗줄기와 맞짱을 뜨는 것도 세상 살아가는 방법이다.
위로받기보다 위로하는 자가 되게 하시고....
그 말씀 하나 깨닫게 하려고 참 멀리도 돌아서 왔다.
비 오는 날, 연남동카페들도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