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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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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Jul 05. 2023

위로받지 못하는 자의 독백

비 오는 날 화도 슬리퍼도 아닌 운동화를 신고 걸었다. 비에 젖은 운동화는 빨면 그만, 축축한 내 마음이 좀체 마르지 않는다.


어쩌다 보니 작은 양산을 쓰고 나왔다. 우산이 아닌 양산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가려주기는 커녕 오히려 더 굵은 빗방울이 되어 어깨 위로 떨어진다. 


비 오는 날, 공원 산책길은 무섭도록 조용하다


오늘은 친정어머니의 기일이다. 코로나 기간 동안 기일에 참석하지 못하다가 코로나가 해제되고 첫 기일인데 이번에는 갑자기 병원 신세를 지는 바람에 친정에 가지 못하게 되었다. 친정 (親庭) 이란 한자어의 어원이 '친한 뜰'인 걸 보면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울타리 안에서 생명을 키우는 정원사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어언 삼십여 년이 되었지만 따뜻한 기운은 아직도 내 가슴에 남아있다


친정어머니에게 딸이란 때론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되기도 하고 때론 서로에게 동지가 기도 다. 아들들은 든든해서 좋다 하시던 우리 어머니도 딸인 나에게서는 많은 위로를 얻고자 하셨다. 남에게는 차마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한 보따리 들고 와서 풀어놓으면 나는 밤새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어머니의 엉킨 마음을 풀어 주는 일은 간단했다. 마음을  헤아리는 말 한 마디면 족했다.


"많이  속상했겠네"


상처를 보듬는 한마디 에 어머니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음날이면 훌훌 털고 오셨던 길로 다시 셨다.


지금의 내 나이에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그 나이쯤에 겪는 아픔을 나도 지금 겪고 있다. 남들에게 이야기하면 흉이 되고 나 혼자 삭이기에는 버거운 일들, 나도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다.


시간이 돈인 요즘 아이들은 엄마의 속앓이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역시 언제인가부터 비극보다는 희극이 좋다. 웃고 즐기며 살아도 짧은 인생인데 굳이 막장으로 가는 드라마를 보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예전에 없는 직업군이 늘어나는 것도 그 이유다.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으면 심리상담사를 찾아가면 된다. 예전처럼 밤새워 풀어놓은 이야기보따리를 들어주고 따뜻한 위로를 하는 처방이 아니라 학문적으로 연구된 처방을 내린다.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는 그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오랜 시간을 걸은 것 같다. 온몸은 비에 젖었지만 뜻밖에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평소에 사람들로 꽉 차 있던 카페골목이 조용하다. 언제나 웨이팅 줄이 길게 늘어서 있던 유명 카페도 오늘은 한적하다.


쉼,


비는 나뿐 아니라 모든 걸 쉬게 한다. 비의 처방이 옳았다. 모든 소음에서 벗어나 조용히 쉬고 싶다.


작은 우산 아래에서 비를 가리려고 용쓰기보다 때론 운동화처럼 용감하게 빗줄기와 맞짱을 뜨는 것도 세상 살아가는 방법이다.


위로받기보다 위로하는 자가 되게 하시고....


그 말씀 하나 깨닫게 하려고 참 멀리도 돌아서 왔다.



비 오는 날,  연남동카페들도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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