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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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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Jun 28. 2023

보리수 나무같은 나의 친구야

흔히 인생을 여행에 비유한다. 그렇다면 나는 얼마 전 높은 산 하나를 넘은 이다. 그 산을 넘어오면서 나 혼자 힘들다고 징징댔지만 돌아보니 내 등을  밀어주며 용기를 준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건강을 다시 찾았고 나의 새로운 삶 속에는 따뜻한 마음들이 함께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반찬을 바리바리 싸들고 온 여동생,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마스크 사이 남편의 눈빛, 힘내라고 용기를 준 전화기 너머의 음성들, 내 하소연을 글로 풀어놓을 수 있었던 브런치, 라이킷과 댓글로 위로해 준 독자님들, 이 모든 이들의 염려가 부드러운 바람처럼 내 땀을 식혀주었기 때문에 나는 높은 산을 용케 넘을 수 있었던 것 같다.


1층과 2층에서 따로 지내기는 하지만 아직 시술 후유증이 남아있는 내가 코로나 환자인 남편과 한 집안에 있는 건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그때 친구가 손을 내밀어 주었다. 2년 전에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서 지내고 있는 동네 친구다.


남편을 떠나보낸 후 우울해하는 친구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 밖에 없었다. 내가 다니는 헬스클럽에 등록을 하고 파크골프에도 입문시켰다. 친구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우울을 벗어나고 지금은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남편의 격리기간이 끝나고도 한참 동안 나는 친구집에서 회복기를 보냈다. 혼자서 적적했는데 내가 있어서 든든하다는 말로 나의 부담감 덜어 주었지만 나를 위해 애쓰는 모습이 고맙고 미안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는 천사 미하일의 미소를 통해 여러 가지 형태의 사랑을 보여주었다.


평생 동안 신을 수 있는 질긴 구두를 맞추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죽음을 맞이한 오만한 신사의  이야기는 한 치 앞도 모르는 인간의 모습을 말해준다. 발가벗은 천사 미카엘에게 웃옷을 벗어 준 제화공 세몬을 통해서는 낯선 이에게 베푸는 인정과 사랑을, 자신의 아이는 죽었지만 대신 엄마를 잃은 다른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는 여인의 모습에서 사랑은 단지 혈육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걸 이야기하고 있다.


부엌 싱크대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의 텃밭에서 기르는 유기농 야채로 반찬을 만들어 매번 새로운 메뉴로 식탁을 차려 친구 덕분에 몸은 예전의 모습으로 회복되고 있다. 고맙다는 말을 하면 손사래를 치며 오히려 도움을 줄 수 있어 자신이 고맙다고 하는 친구에게서 미하일의 미소를 본다.


나는 누구에게 이 사랑을 전해줄까? 그동안  혈육에게 하듯 누구에게 사랑을 베푼 적이 있었던가, 친구의 삶을 바라보며 깨달음을 얻는다.


아직도 집안 구석구석 빈자리가 남아있는 친구의 집에서 며칠을 보내며 나는 여생을 혼자서 살아가야 하는 일이 얼마나 외롭고 고달픈 일인지 여실히 느꼈다. 요즘 갑자기 날아드는 러브버그조차 자신은 절대 죽이지 않는다는 그는 세상에 짝 없는 게 가장 슬프다며 돌아가신 남편을 그리워한다. 그런 친구를 보며 나는 아침마다 남편에게서 오는 문자를 슬그머니 감춰야 했다.


집으로 돌아온 날, 드디어 내 사랑을 전해 줄 수혜자를 발견했다. 내가 집을 비운 열흘동안 남편 역시 핼쑥해져 있었다. 함께 나이 들어가는 저 사람을 사랑해야겠다.


보리수나무 아래 가지 않고도 도를 닦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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