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붉은 지붕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희동 김작가 Jun 25. 2023

나의 왼손

나 홀로 입원환자의 수난기

마스크 자율화가 된 요즘에도 나는 외출할 때면 제일 먼저 마스크부터 챙긴다. 이젠 안경이나 모자처럼 몸에 익숙해져서 전혀 불편을 느끼지도 않는다. 오히려 마스크로 인해 화장을 하는 수고가 줄어들고 햇빛도 막아주어 지금은 편리한 소모품이 되어버렸다.


내가 마스크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지난  코로나 기간 동안 마스크 착용만으로 위기를 넘겼기 때문이다.


마스크는 코로나뿐 아니라 매년 한 번씩 연례행사처럼  치렀던 감기까지도 막아준 나의 고마운 방패다. 그러니 지금까지 한 번도 PCR검사라 걸 해 본 적이 없다.


입원을 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PCR 검사실에 들어가기 전 유난히 마음이 불안했다. 겨우 솜뭉치 하나로 콧구멍을 쑤시는 게 뭐가 두렵겠냐마는 정작 내가 두려워하는 건 지금껏 소나기 피하 듯 잘 비켜온  코로나가 혹시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입해 있지나  않았을까,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검사결과가 나왔다. 음성으로 합격, 무난히 입원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어 줄 나의 남편은 코로나 양성 확진결과가 나와 버렸다. 결국 남편의 확진으로 인해 나 홀로 입원환자가 되었다.


우리 부부는 그 후 내가  입원을 마치고 퇴원을 하는 5박 6일 동안 서로 마주치지 못했다.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2층에서 격리생활을 하며 서로 문자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나의 입원 수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갑자기 응급실에서 입원실로 직행한 환자인지라 도움을 청할 곳도 없이 막막했다. 


"까짓것 혼자 견뎌보지 뭐"


다행히 경과를 지켜보는 이틀까지는 혼자서도 수월했다. 다른 사람의 수발을 받아야 정도로 힘든 일은 없었다.


의 원인이 밝혀지고 혈관조형시술을 하기로 결정되었다. 원래 약했던 기관지에서 출혈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수술동의서도 혼자 작성하고 수술 중에 일어날 사고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겠다는 서명도 혼자서 날인했다.


오른손  팔목에 링거 주삿바늘이 꽂혀있을 때는 그래도 나았다. 항생제 지혈제 식염수등을 나르는 링거바늘이 손등으로 옮겨 오면서는  나를 수발하는 건 온전히 왼손 몫이었다. 왼손은 모든 잡다한 일을 도맡아 해야만 했다.


가락으로 반찬 집기. 식판 들기, 소변측정하여 기록하기, 옷 갈아입기. 양말 신기, 칫솔질하기. 바지춤 올리고 내리기, 아뿔싸 병실 화장실엔 비데가 없었다. 평생 해보지 않은 일을 하려니 왼손이 무척이나 힘들어하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잘 길들여 놓을 걸, 신데렐라 같은 오른손만 힘들게 하고 왼손은 고이 모셔만 두었더니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


그나저나 우리 남편은 지금 혼자서 얼마나 힘들어할까, 전화를 했다.


"아무래도 PCR 검사가 잘못 됐나 봐, 확진결과받고 곧바로 자가진단  치트로 검사를 해봤는데 음성이었고 열도 없고 기침도 안 해, 병원에서는 약도 주지 않았어 "


이런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님  내가 운이 없다고 해야 할까,


우리집 왼손은 복도 많다, 오른손이 힘들어도 여전히 편하다. 그래도 엄연히 확진 판정을 받은 코로나환자로 공인이 되었으니 퇴원을 해서도 남편의 도움을 받는 건 언감생심, 정해진 격리기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남편과 나는 사회적 거리를 두고 있.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은 제발 안녕하였으면 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