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술경과를 보러 병원에 가는 날이다. 오전 11시 예약, 30분 전에 미리 영상학과에 들러 엑스레이를 찍고 주치의 선생님 진료실 앞에서 대기하면 된다.
종합병원 병동의 진료실 앞은 인산인해다. 환자 한 명에 보호자 한 명,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는 사람은 그나마 다행이다. 복도에 즐비하게 늘어서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만 하염없이 기다린다.
이곳에서 할수 있는 일이라곤 보호자는 핸드폰을 드려다보는 일과 환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방금 진료를 마치고 나온 환자에게 의사선생님의 처치를 설명하는 간호원의 말을 귀 쫑긋이 엿듣는 일이었다. 자신과는 전혀 다른 증상이라해도 어쩌면 한마디라도 자신에게 이로운 말이 얻어걸릴 수가 있다. 이를테면 환자가 홍삼같은 걸 먹어도 되나요? 라고 물었을 때, 그런건 절대 드시면 안됩니다.라는 말 따위다,
도착접수를 하고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대기자 명단에 조차 오르지 못하고 있다.
시간은 정오를 훌쩍 넘어섰다. 혹시 내 이름이 누락된 게 아닐까? 마침 진료실 밖으로 나온 간호원에게 물었더니 곧 대기자 명단에 이름이 뜰 것이라 한다.
진료가 아니라 대기자 명단에 오른다는 것만으로 숨통이 트인다. 그때였다, 진료실 문이 열리고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급하게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뭐지?
드디어 자신의 순서가 되어 진료실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던 환자가 무척이나 실망한 표정이다. 정확히 말하면 환자는 만사 귀찮은 듯 제 자리로 다시 돌아오고 환자와 함께 온 보호자가 더 난감해한다.
감감무소식, 그렇게 의사가 자리를 비우고 없는 진료실 앞에서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서서히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이럴 거면 예약시간제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며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 지방에서 새벽 다섯 시에 어머니를 모시고 올라왔다는 보호자는 자신은 아침도 굶고 지금 점심도 굶을 판이라며 푸념을 한다. 예약된 진료시간을 지키기 위해 어제 미리 서울에 왔다는 노부부는 오늘도 집에 갈 수 없을 것 같다며 자녀들에게 전화로 하소연을 하고 있다. 어떤 이는 혹시 의사가 점심식사를 하느라 자리를 비운게 아니냐며 불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거리상 병원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나는 감히 힘들다고 말하기조차 죄송한 사연들이었다.
억울하면 아프지 말아야지 원... 웅성거림이 잦아질 무렵 진료실 문이 열리고 간호원이 복도로 나왔다. 선생님께서는 지금 중한 위급환자를 진료하러 가셨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한다.
진즉에 말해 주었더라면...
그런 줄도 모르고 불만을 터트린 거에 대하여 조금은 미안한 눈치들이다.
"엄니 우리보다 더 위급한 환자를 보러 가셨다니 조금만 참으세요"
앞서 차례가 된 보호자가 휠체어에 앉은 어머니를 위로한다.
우리보다 더 위급한 환자, 이 표현은 진료실 앞에서 지체되고 있는 이 시간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우리 모두에게 더 또렷하게 들렸다.
사실 아까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무료하지는 않다. 다만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빌려준 나의 귀한 시간이 헛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