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속 빗줄기를 뚫고 택배 상자가 도착하였다. 멀리 강원도에서 지인이 보내온 옥수수다. 언박싱을 하자 갇혀있던 초록이 숨을 내쉬며 거실 가득 푸릇함이 가득하다
내가 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는 동안 오랜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지인의 아들이 결혼식을 올렸다. 꼭 참석하여 축하를 해 주고 싶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안타까운 건 그쪽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옥수수는 그런 마음이 담겨있는 선물이었다.
옥수수의 푸른 겉잎을 벗겨 내면 은사 같은 수염이 나온다. 이 수염은 버리지 않고 햇빛에 말렸다가 차로 끓여 먹는다. 옥수수수염차가 방광염에 특효가 있다는 말을 들은 뒤로 언제나 옥수수를 살 때면 버리지 않고 말려두곤 하였다. 옥수수수염이 옥수수 열매를 맺게 하는 수정관이란 걸 뒤늦게야 알았다. 수정관 한 알에 옥수수 한 알이 맺힌다고 하니 한 올의 수염도 소중하게 여겨진다. 자연은 의미 없이 만들어진 게 하나도 없다.
노란 알갱이들이 보석처럼 박힌 옥수수, 그 알갱이를 볼 때마다 사람들이 욕심부리지 않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이 세상 어떤 작물도 씨앗 한 알을 심어서 더 많은 씨앗을 얻게 되지만 특히 옥수수를 먹을 때 면 한 알의 옥수수 알에서 번식한 결실의 무게를 손목에서 눅진하게 느낀다.
언젠가 시골의 옥수수밭에서 옥수수를 직접 따면서 수확의 기쁨을 누린 적이 있었다. 옥수숫대 하나에서 얼마나 많은 옥수수가 열리던지..., 그때
'많이 가지려고 서로 다투지 말아라. 걱정 마 내가 너희를 다 배부르게 해 줄 테니',라고 하는 옥수수의 너그러운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실제로 고구마나 감자와 함께 구황작물인 옥수수는 전후세대 우리나라 국민들의 배를 채워 준 구호물품 중 하나였다. 6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한 번씩 샛노란 옥수수 죽을 먹었을 수도 있다. 지금은 옥수수가 또 어느 가난한 나라 아이들의 배를 채워주고 있을까,
산지에서 곧바로 보내온 옥수수는 잎도 수염도 알갱이도 모두 싱싱하다. 발가벗긴 옥수수를 찜통에 넣고 삶았다. 온 집안에 구수한 냄새가 가득하다.
삶은 옥수수는 바로 급속냉동을 시켜 보관하고 몇 개는 옥수수알을 까서 따로 두었다. 밥을 지을 때 함께 넣으면 쫀득하게 씹히는 맛이 있어서 좋다.
옥수수는 요즘 우리 부부의 간식이다. 남편은 냉동실에서 꺼낸 옥수수를 해동하여 가스불에 살짝 구워서 가지고 왔다. 불맛이 밴 옥수수 구이를 먹으며 남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다.
냇가에서 수영을 하고 놀다가 남의 밭에서 서리한 옥수수를 구워 먹었다는 이야기다.
시대가 변하면서 사라진 단어 서리, '남의 물건을 훔치다'라는 '도둑질'이 '서리'로 표현되면 주인의 너그러움 정도에 따라 완전용서가 되기도 하고 손들고 서있는 정도의 체벌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고 한다. 화가 난 주인이 사내놈들을 온통 발가벗긴 뒤 동네 초입에 세워두는 벌을 세웠단다. 여자 아이들이 볼까 봐 모두 사타구니를 움켜쥐고 벌을 섰다는 이야기를 하는 남편은 세월이 흘러 반세기 훨씬 전 이야기인데도 지금도 부끄러운갑다. 그런 남편을 보면서 크게 웃었다. 언젠가 들었던 것 같은 이야기인데 처음듣는 것처럼 웃음이 난다.
옥수수도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