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맨 먼저 한 일은 손가락을 쥐었다가 펴 보는 일이었다.
엄지, 검지, 장지, 약지, 새끼까지 강아지 이름 부르듯 손가락 이름을 차례로 불러가며 나긋나긋 손가락을 꼽아보았다.
어랍쇼? 된다. 쥐었다 펴고 잼잼, 좀 더 강하게 쥐락펴락 다 된다, 이럴 수가..., 손목도 살짝 돌려보았다. 움직일 때 약간 시큰하지만 위아래로 좌우로 아무 탈없이 잘 움직여진다.
어제, 그동안 쉬고 있던 탁구를 다시 시작했다. 에어컨을 시원하게 틀어놓은 실내탁구교실에서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는 회원들의 모습이 활기차 보인다. 그들과 함께 다시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게 무척이나 감사하고 행복했다. 어느 날 갑자기 환자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는 감회다.
운동 첫날인 만큼 살살 몸이나 풀고 가려던 처음의 생각과 달리 복식게임을 하면서 그놈의 승부욕이 발동했나 보다. 상대가 멀리 보낸 공을 뒷걸음을 쳐서 받으려다가 이런...,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공백의 후유증이다.
모두의 걱정스러운 시선이 나에게 꽂히고 부끄러움이 엄습했다. 아무렇지 않은 듯 털고 일어나 다시 게임을 이어갔지만 아무래도 넘어질 때 바닥을 짚었던 왼쪽 손목이 불편하다.
집에 와서 곧바로 냉찜질을 하고 경과를 두고 보기로 했다. 오늘 아침의 자가진단은 별 탈이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병원에 가서 치료는 받아야 했다.
X-레이사진을 찍었다. 다행히도 뼈에 이상은 없다. 의사 선생님은 손목에 부목을 대 주며 근육이 놀랐을 뿐이라며 당분간 움직이지 말라고 한다.
고맙다, 나의 좌측 수근골아! 너의 순발력 있는 살신성인으로 내 골반뼈가 무사했구나. 하마터면 고관절을 크게 다쳤을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똑같은 자식인데도 잘난 자식 앞장 세우는 못난 어미처럼 나도 모르게 왼손을 편애한다.
오른손은 왼손을 쓰담쓰담. 내 오른손은 질투심도 없지, 체념적인 희생정신이 안쓰럽다.
젊어서는 종아리나 손목이 가느다란 여자들을 무척 부러워했다. 특히 발목이 가느다란 여성이 굽이 높은 하이힐을 신고 있으면 참말로 멋졌다. 누가 봐도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가녀린 팔과 다리는 통뼈를 가진 나 같은 사람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일 뿐이었다.
하지만 공평하게도 인생 후반기에는 나처럼 통뼈인 팔과 다리를 가진 사람이 좋다. 무엇보다도 안정감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처럼 넘어져도 쉽게 금 가지 않는 통뼈인이야 말로 젊은 시절 가녀린 멋에 가려 보지 못한 진정한 멋이 있다.
통뼈라서 좋다, 건강이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