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가게 할머니

레 보드 프로방스

by 연희동 김작가



알피니스(작은 알프스) 산맥의 자락에 위치한 레보드 프로방스는 마을 꼭대기에 중세기 이 지역을 통치하던 보 (Baux) 영주의 성채가 있는 곳이다. 암반을 깎아서 만든 천혜의 요새인 이 곳은 마을 전체가 은회색이었다.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달려 도착한 곳에는 돌 외에 다른 재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은 듯한 집들이 아기자기하게 모여 있었다. 온통 석회암뿐인 이 곳 마을 입구에 불그스름한 돌덩이 하나가 놓여 있다.

마치 이 마을의 빛깔이 무채색 만은 아니라는 걸 알리는 듯한 이 돌은 보크사이트라는 광물질로 이 곳 땅 속에서 캐낸 알루미늄의 원석이다. 붉은 돌덩이는 한동안 이 마을 풍요롭게 만들어 준 보물이었다.


마을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바위에 조각해 놓은 모형과도 같다, 오랜 세월 퇴색되고 무너져 버린 돌 성벽 안에 아기자기 지어진

집들이 다른 마을에 비해서 더욱 견고하게 보였다. 나무나 흙 등 다른 재료보다 단단한 돌이 더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언덕 위 까지 이어진 구불구불 한 돌 층계가 여행자를 유연하게 이끌어 준다.

하얀 석회암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길엔 레스토랑과 기념품 가게들이 예쁘게 꾸며져 있다. 다른 곳에 비해 가게의 상품들이 유난히 화려하게 보이는 것은 주변이 온통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인 듯하다,


이 곳 사탕가게 할머니의 집이 그중 가장 화려했다. 이끌리듯 사탕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사탕가게 안에서 할머니는 사탕처럼 보였다. 사탕보다 더 화려한 옷을 입고 은발에 하이힐을 신은 멋쟁이 할머니다. 할머니의 알록달록한 옷은 마치 보호색을 띤 도마뱀처럼 진열된 사탕에 묻혀있으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라스트 씬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온통 무채색 배경에 빨간 외투를 입고 걸어가는 소녀의 모습이 도드라져 보였기 때문이다.

회백색의 석회암 건물 속에서 사탕가게 할머니를 발견했을 때 언뜻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났다

어쩌면 이 마을은 할머니의 사탕가게를 위해 이처럼 무채색이 아니었을까 할 정도로 형형색색의 빛깔들이 돋보였다. 그리고 가게 안에서 사탕보다 더 사탕스런 옷을 입고 있는 할머니를 발견하고는 이 마을의 석회암 속에 숨어있는 붉은 보그 사이트를 발견한 첫 번 째 사람처럼 기분좋은 환성이 마음 속에서부터 터져나왔다.

밝은 색깔은 사람에게 밝은 기운을 준다.


사탕속으로 사라지면 다시 나타날 것 같지않은 할머니의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모델료 대신 사탕을 샀다. 할머니는 덤으로 쫄깃한 생강 젤리를 주셨다. 우리는 손잡이가 달린 막대 사탕을 하나씩 물고 가게를 나섰다.


꼭대기에 폐허가 된 성채가 있다. 무너진 성터 위에 올라서면 멀리 줄지어 서 있는 싸이프러스 나무가 보이고 올리브나무와 포도밭이 있는 한가한 프로방스의 전원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 때 보(Baux) 영주의 넓은 농지였던 산 아래 들판은 아직 꽃이 피지 않은 초록 라벤더가 줄무늬 파자마를 입고 언덕을 내달리고 있다. 이곳에서 한 가문의 번영과 몰락의 역사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레보드 프로방스 마을 입구


중세시대, 이 곳의 영주들은 살생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 권력을 휘두르던 곳이 바로 내 눈앞에 있다. 낭떠러지는 그 시대 귀족들에게 주어진 살생권이 행하여지던 곳이다. 영주의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은 이 곳 절벽에서 밀어 버린다는 말을 듣고 뾰족하게 노려보고 있는 절벽에 가까이 가기가 두려워졌다.


산꼭대기에는 아직도 중세시대 보(Baux) 가문의 위용이 군데군데 남아있다. 비록 관광객을 위해 만들어 놓았고 지금도 복원 중이라고는 하지만 무거운 공기는 아직 그대로 맴돌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이 오랜 세월 그 자리에서 지켜보았을 석회암 바위들을 달구고 있다.


요새를 돌아보는 동안 할머니가 준 막대 사탕은 그새 다 닳아 없어지고 말았다.

오던 길로 내려오는 동안에 아직도 사탕가게가 그곳에 있을까?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내가 신기루를 본 것만 같다.


여행을 다녀온 뒤 나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스케치했다. 내가 다시 그곳에 가게 된다면 꼭 이 그림을 전해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