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발렌타인데이다. 언제부터 시작된 축제인지 모르는 발렌타인데이는 나하곤 전혀 무관한 날이다. 오히려 사라져 버린 우리들의 축제가 그립고 아쉬울 뿐이다.
정월 대보름날 아침이면 친구에게 "내 더위 사려"라며 더위를 팔고(여름을 시원하게 보내라는) 단단한 견과류를 이로 깨물어 먹는(이가 튼튼해 지라는) 부럼 까기를 했다. 밤이면 보름달 아래에서 깡통 쥐불놀이 하며 손끝에서 커다란 보름달을 만들어 내며 불놀이를 즐겼다. 우리들의 축제는 이렇듯이 낭만적이었다. 시대에 떠밀려 사라지고 있는 고유한 놀이와 풍습의 끝자락이나마 꼭 붙잡고 싶은 마음이다.
발렌타인데이에는 연인끼리 서로 감정을 교류하는 의미로 꽃과 초콜릿을 선물한다. 꽃은 그렇다 치고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선물하는 까닭은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다. 달콤한 걸로 치면 우리나라 갱엿이 으뜸인데 역시 외래에서 유입된 축제인 만큼 초콜릿에게 밀렸다.
전에 초콜릿을 집에 두고 오랫동안 먹은 적이 있다. 대학생이던 아들이 사귀던 여자친구에게서 발렌타인날 어마하게 큰 초콜릿상자를 선물 받아 들고 왔다. 뜯기가 아까울 정도로 정성스럽게 포장한 초콜릿 상자를 남자친구 엄마가 개봉한 줄 알았다면 얼마나 서운해 할까, 사랑의 크기와 선물의 크기가 비례한다고 생각했던 순진한 여학생에게 이제야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든다.
아무튼 지금껏 발렌타인데이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내가 오늘 초콜릿을 샀다. 그것도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 주려고.,
어제 꽃시장에 꽃을 사러 갔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손녀에게 줄 꽃다발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하필 발렌타인데이와 맞물려 꽃들은 불티나게 팔리고 상인들은 대목을 맞아 부르는 게 값이었다.
꽃시장에 다녀오느라 오후에 있는 탁구교실에 늦었다. 지각한 이유를 말하다 보니 내일은 발렌타인데이고 그래서 꽃상가에 사람들이 많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발렌타인 날에는 누가 초콜릿을 선물 하나요?"
탁구교실에서 가장 연로하신 분이 물었다.
"여자가 남자에게 주는 거래요 "
누군가 대답해 주었다.
"아휴 나는 내일 하룻 내 하늘만 바라보고 있어야겠네요"
이분은 아마 팔순은 족히 넘었으리라, 노고를 이끌고 운동을 하러 나오시는 모습이 열성적이셨다. 부인이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신 건 그때에야 알았다.
이런 극감성의 소유자 같으니라고.. MBTI가 ISFJ 인 나는 간혹 어떤 단어 하나에 혹은 어쩌면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갈 순간의 표정 하나에 감성이 울컥할 때가 있다. 발렌타인 날 아침 나는 아내를 하늘나라로 먼저 보낸 팔순의 노인을 위해 초콜릿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