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바속촉 한 나의 천사들

by 연희동 김작가

여행은 혼자 떠나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여행 중에 우리 부부는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프랑스 사람들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크루아상 같은 사람들이었다. 누군가 힘들어하면 길 위의 천사들은 무뚝뚝하게 다가와서 상냥하게 도와주고 아무렇지 않게 돌아서 갔다. 이처럼 겉바속촉 한 천사들이 없었다면 나의 여행은 아마 고난의 행군이 되었을 것이다




파리의 연인


여행을 하다 보면 가장 쉬운 것이 가장 어렵다. 지하철 티켓를 사는 일부터 내가 가야 할 노선을 정확히 알고 타는 일이 모두 어렵다. 하긴 서울에서도 처음 가보는 역에서는 헤매기 일쑤인데 파리처럼 큰 도시에서 지하철을 타기가 쉬울 리 없다. 더구나 역무원 대신 기계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전철역에서는 기계를 상대로 표를 구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까르네 한 묶음을 사는 것도 쉽지 않았고 우리가 타야 할 지하철을 타는 데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파리에 온 지 이틀 째. 퐁피두 센터의 현대 미술관에서 관람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왔던 길을 되 집어 가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내리고 보니 엉뚱한 곳이었다.

파리의 지하철은 도시의 구석구석까지 거미줄처럼 엉켜 있다, 그래서 편리하고 그래서 불편하다.

파리의 지하철 노선은 모두 16개 노선으로 이어져 있다. 지금처럼 한 번 잘못 타면 멘붕이 오고 만다. 티켓팅을 하고 에투알 역을 찾아 나섰지만 우리가 타야 할 지하철 노선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천사가 다가왔다. 연인처럼 보이는 두 사람은 나와 남편을 이끌고 한 참을 걸었다.

개찰구를 잘못 선택하였던지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출구를 찾아서 돌아오기를 하면서도 두 사람은 내 걸음에 맞춰 천천히 걸으며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정신이 없는 나는 지금도 그 역이 어디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한참을 걸어 우리가 타야 할 노선의 지하철 역 까지 바래다주고 홀연히 떠나는 두 사람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메르시 보꾸" 밖에 없었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월드컵 축구가 한참 열기를 띠고 있었다. 나는 프랑스 팀을 열심히 응원했다. 이유는 단 하나, 나를 도와준 파리의 젊은 연인도 어디선가 ‘프랑스화팅을 외치며 열광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닐 쉬르라 소르그의 모녀


유럽의 3대 벼룩시장 중에 하나인 닐 쉬르 라 소르그 벼룩시장은 매주 일요일에 열린다. 나는 이 곳을 가기 위해 여행 전에 미리 날짜를 맞춰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프랑스의 휴일은 여행자들의 계획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섰지만 역무원은 출근도 하지 않았고 시골역의 대합실 역시 문이 닫혀 있다. 황량한 역사 앞에서 기다리는 손님은 우리들 뿐이다. 참 한적한 시골역이다. 아직 티켓도 끊지 못하고 하염없이 대합실 문이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저 쪽에서 일가족 인 듯한 사람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시장 가방이 눈에 확 띈다. 한눈에 알아본 나의 천사들이다.


중년의 딸과 엄마 그리고 초등학생인 손자는 닐 쉬르 라 소르그 벼룩시장으로 장을 보러 간다고 한다. 일행이 생기다니…, 마음속에 종소리가 울린다. 손자는 로봇을 살 것이라며 들떠 있고 딸과 엄마는 치즈와 오일 등 식료품을 산다고 한다. 역무원이 나타나기만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일요일에는 역무원도 출근하지 않고 티켓은 철로 옆에 있는 자동 기계가 대신해 준다는 걸 그때서야 알았다. 우리는 함께 육교를 건너 반대편에서 기차를 탔다. 눈 앞에 빤히 보이는 기찻길이지만 사실 우리는 어느 방향에서 기차를 타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우리가 한국에서 온 여행자라고 말하자 "나 혜진 좋아해" 라며 갑자기 소년이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눈치로 보아 걸 그룹 중에 한 명의 이름 같은데 나는 처음 들어 보는 이름과 노래였다. 폰을 열어 살짝 커닝을 해 보니 혜진은 걸 그룹 '포텐'의 멤버 중 막내라고 한다. 처음 들어 보는 아이돌 그룹의 이름이다.


"나도 포텐 좋아해 "라며 아는 척했더니 소년이 반색을 한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알았던 사이처럼 마주보고 앉아 이야기를 하며 기차 여행을 했다. 소년의 엄마는 그곳까지 가는 동안 살롱 드 프로방스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었다. 이 곳에서 가까운 앙페라 성을 추천해 주었고 시간이 있으면 비누 공장을 견학해 보라고도했다. 주로 노스트라 다무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는데 영어를 전혀 못 하는 모녀와 통역기를 이용한 대화였지만 여자들의 수다는 국적불문, 끝없이 이어졌다.


기차역에서 내려 벼룩시장으로 들어가면서 돌아갈 오후 기차 시간까지 친절하게 알려주고 떠난 나의 천사들, 내가 혜진의 팬이었다는 건 거짓말이었지만 서울에 한 번 놀러 오라는 말은 진심이었어,


살롱드 프로방스의 천사 3대




탁월한 능력자 엑셀

프랑스 사람들은 휴일을 가장 철저하게 지키는 것 같다. 토요일에 이어 자신들의 국경일이었던 월요일까지 벌써 사흘 째 거리가 조용하다. 휴일에는 시내버스까지 운행을 중단하는 이 곳은 자신의 차가 없으면 꼼짝달싹 할 수가 없다.


살롱 드 프로방스는 워낙 시골 마을이었고 우리가 정한 호텔은 시내에서도 멀리 떨어진 한적한 곳이다. 우리 계획이 틀어지지만 않았으면 마르세유에서 랜트한 승용차를 타고 이 곳에 왔을 것이다. 주차장이 넓은 호텔을 정해 놓고도 차를 빌리지 못한 낭패가 새록새록 생각나는 것은 하필 도착한 날이 토요일이었고 이곳에서 사흘을 지내는 동안 우리의 발은 꼼짝없이 묶여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주차장도 넓고 수영장도 넓지만 주차할 차도 없을뿐더러 수영을 하기엔 아직 오월의 날씨가 이르다. 호텔에서 10분 정도 차를 타고 기차역으로 가야지만 가까운 도시로 나갈 수 있다.

호텔 지배원인 엑셀에게 도움을 청했다.


귀여움과 우락부락함을 동시에 갖춘 엑셀은 유쾌하게 우리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호텔 자동차가 아닌 자신의 차로 기차역까지 데려다 주고 이웃 도시를 여행하고 역에 내리면 도착 시간에 맞춰 역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날 이후 이곳에 있었던 사흘 동안 엑셀은 꾸준히 우리부부를 도와주었다.


이 곳을 떠나 아비뇽으로 가는 날은 하루 씩 교대로 업무를 보는 엑셀이 쉬는 날이었다. 프랑스 사람들이 법보다 잘 지키는 휴일인데도 불구하고 엑셀은 달려와 주었다.


살롱 드 프로방스는 노스트라다무스가 살았고 그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시내에는 노스트라 다무스의 기념관과 그의 동상이 있다. 하지만 나는 살롱 드프로방스가 낳은 인물 노스트라 다무스보다 탁월한 나의 능력자 엑셀의 이름을 더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론 강 위의 하얀 천사


아비뇽의 생 베네제교를 가장 좋은 위치에서 바라보려면 론 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강 건너에 있는 산책로를 가야 한다. 우리가 유람선을 탈 때만 해도 하늘엔 구름만 몇 점 있었을 뿐 비가 올 것이라 고는 생각 못했다.

유람선에서 내려 얼마 있지 않아 갑자기 시야가 흐려지면서 소나기가 내려 꽂히기 시작했다. 주변엔 비를 피할 곳이 전혀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우산은 물론 이 날은 양산조차 준비하지 않았다. 급한 대로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했지만 이미 몸은 홀딱 젖어버렸다.


우리를 내려 주고 떠난 유람선이 강변 저쪽에서 손님을 싣고 다시 이쪽으로 와야 지만 강을 건너갈 수 있다. 하지만 비를 맞으며 이곳으로 올 관광객이 있을 리가 없다. 하염없이 애꿎은 강물만 바라보고 있는데

미라클~

강 저편에서 하얀 유람선이 우리 쪽을 향해 오고 있다. 점점 크게 또렷이 보이는 하얀 유람선...., 천사들은 원래 하얀색 옷을 입고 있었던게 맞는 것 같다.


꽁지머리를 한 선장님은 산책로에 내려준 관광객이 걱정되어 빈 유람선을 끌고 이곳으로 온 것이다.

유람선을 탄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


승선은 했지만 천장이 뚫려 있다시피 한 유람선의 객실도 비를 맞기는 마찬가지였다. 선장은 자신이 운전하는 선실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리고 비가 그칠 때까지 그곳에서 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비 오는 날, 유람선에서 바라보는 생 베네제교는 또 다른 모습의 경치였다.


선장님은 자신이 취미로 만들고 있는 작은 조각품들을 내 손바닥에 얹어 주며 자랑을 했다. 참 정교한 솜씨였다.


우리 집엔 그 날 선물로 받은 작은 목각 오리 한 마리가 소중하게 장식되어 있다. 천사가 다녀간 흔적이다.




은발의 프랑스 할머니


비 오는 날, 우연히 만난 친구와 중세의 정원에서 샹송을 부르며 산책을 하는 일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그런데 나는 오늘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는 행운을 얻었다.


비가 조금 멎은 듯하여 론강의 유람선에서 내려 구 도시 성곽으로 마구 뛰어갔지만 중간에서 또다시 장대비와 마주쳤다. 아비뇽 교황청을 오르는 층계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폭포처럼 변하고 정원의 잔디가 물에 잠겨 호수가 되었다.

남 프랑스의 구 도시들이 대부분 산꼭대기에 형성된 것은 적의 침략을 막기 위한 것 인 줄만 알았는데 지금 쏟아지는 물줄기를 보면서 아마 침수를 막기 위한 것도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때였다. 젖은 머리 위로 누군가 노란 우산을 받쳐 주었다.


나의 천사는 은발의 멋쟁이 할머니였다. 할머니와는 금방 친구가 되었다. 할머니가 되면 모두 비슷해 지는가 보다, 덩치 큰 외모와 흰 머리 특히 나를 바라보며 웃는 미소가 나의 외할머니를 닮았다. 실은 외국인의 나이는 겉모습으로 가늠할 수 없어서 민증을 까보면 어쩌면 나와 연배가 같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좁은 우산 안에서 우린 서로 체온을 나누며 팔짱을 끼고 언덕을 내려왔다. 정적을 깨려는 듯 멋쟁이 할머니가 콧노래를 불렀다. 가사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리듬만은 나도 익히 알고 있는 샹숑 '사랑의 찬가'이다.

할머니가 부르는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곧장 이중창이 되었다. 비 오는 날 프랑스 할머니와 함께 노래를 부르며 중세의 길을 걸어 보는 일이 평생에 한 번이나 있을까?.


마침 기차가 지나가자 할머니가 “딩댕 동댕 딩댕” 하며 기차 소리를 흉내 냈다. 나는 우리나라의 기차소리를 흉내 냈다. “칙칙폭폭” “칙칙폭폭”… 우리의 놀이는 각자 자신의 나라 말로 의성어를 흉내 내면서 시작되었다.

“멍멍” “와프 와프,” “야옹야옹” “미야 우” “개굴개굴” “코아 코아” 꼬꼬댁” “꼬코리코…”.

프랑스와 한국의 강아지와 개구리, 고양이, 닭과 새들이 아비뇽 교황청의 비 오는 언덕에서 즐겁게 어우러졌다.

언어는 달라도 우리의 웃음소리는 똑 같았다.


비가 그치고 헤어지면서 우리는 프랑스식 비쥬로 인사를 했다.

키가 큰 나의 은발의 천사는 작은 내 키에 맞춰 한 참을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아비뇽에서 만난 은발의 천사


오늘은 나도 천사


아비뇽에서 아를로 가기 위해 역으로 나갔다. 오늘도 기차는 파업 중이어서 대신 이곳 역에서 마련해 준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버스를 타려면 역 앞에 있는 정류장에서 기다려야 하는데 버스마저 감감무소식이다.

대합실 안에서 우리 또래의 외국인 부부가 초조하게 기차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았다. 아마 기차가 파업이 된 줄 모르고 마냥 기다리는 여행객처럼 보인다.

코리안 타임이란 말은 이제 옛말이다. 제시간에 도착하고 출발하는 우리나라의 정확한 배차 시간에 길들여진 우리는 기차가 늦자 바로 역장에게 확인해서 차후 대책을 알았지만 무슨 일이든 성급하게 서둘지 않고 여유로운 이들은 마냥 오지 않는 기차만 기다리고만 있었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 살롱 드 프로방스의 기차역 앞에서 망연자실하고 있었던 우리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우리를 도와주었던 프랑스 청년의 도움을 생각했다. 남편은 그들에게 다가가서 오늘은 기차가 파업이며 우리도 아를로 갈 것이니 함께 가자고 하였다.


영국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고 정년퇴임을 한 기념으로 아내와 함께 여행을 왔다는 이 부부는 우연히도 우리와 직업과 여행 동기가 비슷하다. 아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그들 부부는 우리가 어느 쪽 한국인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싸우스 코리아’라고 하자 “오빠는 강남 스타일”을 부를 줄 안다면서 말 춤을 추는 흉내를 냈다.


아를로 가는 버스마저 결행되고 대신 님(nimes)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중간에서 다시 시내버스로 갈아타야 하는 힘겨운 여정을 하는 동안 영국인 부부는 우리 곁에서 떨어질 줄 모르고 함께 했다. 아를의 고성 앞에서 부부는 전에 내가 나의 천사들에게 했던 것처럼 “베리 땡큐”를 외치며 손을 흔들고 헤어졌다.


만약 오늘 만난 영국인 부부가 나처럼 여행일지를 쓰고 있다면 ‘오늘은 멀리 코리아에서 온 천사를 만났다’라고 쓰지 않았을까? 오늘은 우리도 누군가의 천사가 되어 준 날이다.

친구가 된 영국인 부부들



나의 천사는 공무원


생 나자르 역에서 퐁투아즈 까지 가는 교외 전철 RER을 타고 퐁투아즈에서 다시 크레이로 가는 전철로 갈아 탄 뒤 오베르 쉬르 우아즈 역에서 내리세요”

파리의 호텔에서 일주일을 머무는 동안 호텔 지배인 알렉스는 매일 아침 우리의 노선을 체크해 주는 걸 게을리하지 않았다. 오늘은 파리 교외에 있는 작은 도시 오베르 쉬르 우아즈를 가기로 한 날이다.

사실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모네의 고향집이 있는 지베르니와 고흐가 마지막에 살았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를 두고 갈등을 하였다.

알렉스는 우리의 갈등을 한 번에 결정해 주었다. 두 개의 키를 양손에 하나씩 쥐고 우리에게 선택하라고 했다. 내가 그의 한 손을 가르치자 그는 그게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가는 키라고 했다. 프랑스식 유머였다.


파리에서 곧바로 가는 교통편이 없어서 노선이 조금 복잡했다.

고흐가 마지막에 살았던 동네 오베르 쉬르 우아즈를 찾아가는 길을 수학공식처럼 힘들게 외여야 했다.

오늘의 여행은 또 얼마나 파란만장할지...,


택시를 타고 생나자르 역으로 왔다. 바로 어제. 오르세 박물관에서 클로드 모네가 그린 생 나자르 역의 증기기관차를 그림으로 보았다. 하얀 연기를 뿜으며 들어오는 증기만 없을 뿐 기차가 들어오고 나가는 모습은 그림 속 풍경과 똑같다.


파리 시내를 벗어난 기차는 북쪽을 향해 달리고 기차 안은 썰렁하다.

우리가 탄 객실엔 맨 앞에 혼자 앉아 있는 젊은 여인과 우리 부부뿐, 이 곳이 어디쯤 인지 짐작할 수도 없어 막막하다. 나는 앞에 앉은 승객에게 다가갔다, 자칫하다 역을 지나치게 되면 큰 낭패다.

가까이에서 보니 아시아계 여성이다. 무턱대고 반가웠다. 인사는 내가 했지만 그다음부터는 남편 몫이다. 언제부터 인지 우리의 소통은 그런 식으로 서열이 정해졌다.


"어디까지 가세요..?”

"오베르 쉬르 우아즈”


이럴수가, 우연히도 우리와 목적지가 같은 동행을 만나게 되었다.


"퐁투아즈는 멀었나요.?”

"아니 다음 역이에요”


행선지가 같은 그녀 덕분에 퐁투아즈에서 수월하게 크레이로 가는 열차를 갈아탈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역 밖으로 나와 티켓을 다시 끊어야 했다. 우리 두 사람이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면 많이 허둥댔을 것이다. 프랑스 사람이기는 해도 이 길이 초행이었던 나의 천사는 크레이 역에서 잠깐 헤매던 것을 계속 미안해했다.


크레이에서 오베르 쉬르 우아즈까지 가는 동안 우리는 일행처럼 서로 바라보는 좌석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었다.

프랑스 대사관에서 일한다는 그는 일본계 프랑스인이었다. 우연히도 나와 그녀 엄마의 나이가 같았다. 오늘은 남편이 아이를 맡아보고 있으며 자신은 온전한 휴일을 즐기는 날이라고 한다.

남편에게 아이까지 맡기고 혼자 온 여행인데 우리가 방해하는 아닐까? 그녀가 지금은 프랑스인이기는 하지만 남에게 피해주기를 싫어하는 일본인이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 조심스럽게 물어봤지만 오히려 즐거웠다고 한다.

마을 초입에 있는 고흐의 동상 앞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조용하고 작은 마을에서 이 곳 저곳 다니다 보면 어디선가 또 한 번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날씨가 우중충하다. 곧 비라도 내릴 것 같은 날씨지만 이런 날씨가 왠지 고흐를 만나기에는 더 좋을 것 같았다.

나는 거리의 옷 가게에서 두툼한 카디건을 하나 사서 입었다. 몸도 마음도 따뜻해졌다. 천사는 어디로 날아가 버렸는지 작은 마을에서 그 후론 다시 마주치지 않았다.

여행의 신은 오늘도 우리를 저버리지 않았다. 땡큐!..





부드러운 천사의 손 길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날, 여행의 날짜가 하루하루 지날수록 무거웠던 가방이 점점 비워지고 내 마음은 무언가로 가득 채워졌다.

바르셀로나의 엘 프라트 공항으로 향하기 전 마지막 점검, 여권과 지갑도 그대로이고 제일 중요한 우리의 건강에도 이상이 없다.


매일 아침 고혈압 약을 먹는 남편과 고지혈증 약을 복용하는 나는 날짜가 지날수록 줄어드는 약 봉투를 대하는 마음이 달랐다. 남편은 아직도 약이 이 만큼이나 남아 있군…이라며 긍정적인 말을 하였지만 나는 줄어드는 약만큼 하루하루 지나가는 게 아쉬웠다. 이제 약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서로 표현은 다르게 하였지만 우리의 마음은 똑 같이 여행의 하루가 지나가는 것을 아쉬워했다.


우리 두 사람의 팀워크도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다. 남편이 국내 면허증을 챙겨 오지 않아 그 여파로 한 차례 크게 싸울 뻔하였지만 유난히 쓸쓸하고 고적했던 살롱 드 프로방스의 분위기가 남편 없이 나 혼자 여행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오히려 그 뒤로 서로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되어서 여행 마지막 날까지 탈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남편은 무릎에 통증을 느껴서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았다. 여행 중에 통증이 유발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다행히 여행의 마지막 날까지 잘 지내고 있다. 단 한번 베르동 계곡에서 지면에 발이 붙어있지 않고 뛰는 역동적인 스냅사진 찍기를 시도하면서 조금 힘들어했지만 그 후로 괜찮아졌다.

이제 비행기가 이륙하기만 하면 나는 집으로 간다. 여행의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라고 한다. 지금 나는 여행의 가장 큰 기쁨을 누리고 있다. 또 하나의 기쁨은 우리가 앉은 옆 자리의 좌석이 아직도 비어 있다는 것이다. 장거리 비행 중의 한 가지 소망은 바로 옆자리가 비어서 여유롭게 타고 갈 수 있기를 바라 마음이다.


“죄송합니다”


훤칠하게 잘 생긴 젊은이가 옆 자리에 앉는다. 늦게 까지 좌석의 주인이 오지 않자 나는 은근히 기대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뒤늦게 제 자리를 찾아온 승객이 조금은 반갑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를 보호해 주던 여행의 신이 아직 자신의 임무를 끝내지 않았음을 그때까지 우리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옆 자리의 손님은 바르셀로나에서 학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우리나라 유명 대학병원의 외과 의사였다. 우리가 긴 시간을 주로 걸으며 여행했다는 말을 하자 대뜸 발 건강에 대해 물었다. 남편이 여행 전 무릎이 아팠던 이야기를 하자 거침없이 남편의 발을 자기 무릎에 얹히고 손으로 진찰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오래 걸었는데도 족저근막염에 걸리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무릎 관절을 눌러보며 상태를 진단해 주었다.

그의 손은 금 손이었다. 그의 손 길이 무릎을 쓰다듬을 때 남편은 너무나 행복했다고 한다.

우리 여행의 마지막 천사는 그렇게 우리 곁을 다녀갔다. 천사의 손 길이 닿았던 남편의 무릎은 그 후로 지금까지 탈 없이 건강하다.



나는 이제 천사 인턴이 되겠습니다


40여일 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우리에게 아이들은 '여행의 귀재'라는 호칭을 붙여 주었다. 젊은이들도 숱하게 당한다는 소매치기도 당하지 않았을 뿐더러 아무런 사고 없이 건강하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 아빠에 대한 찬사의 표현이다.


‘여행의 귀재’라는 말은 당치않다. 아침에 일어나면 우리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며 오늘은 어떤 일을 겪게 될까 궁금해하였고 무슨 일이 닥쳐도 파이팅을 하자고 의지를 굳혔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미라클 데이였다. 매일 경험해 보지도 못한 위기에 처했으며 그럴 때마다 어디선가 나타난 누군가가 문제를 해결해주고 홀연히 사라졌다. 마치 나의 천사들이 곳곳에 숨어서 세상을 향해 첫걸음을 뗀 우리의 여행에 도우미가 되어 주는 것 같았다.


프랑스에는 길 위에 천사들이 많았다. 휴일에 도착하여 교통상황이 좋지 않은 살롱 드 프로방스 역에서 택시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지나가던 시골청년 천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서 겨우 택시를 탈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런가 하면 뒷자리에 아이까지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를 호텔까지 태워다 준 마음씨 좋은 아줌마도 잊을 수 없다. 롱샹 궁전의 박물관 앞에서 우리에게 “노인은 할인돼요”라고 넌지시 일러 준 마르세유의 노부부도 고맙다. 문 닫을 시간이 지났음에도 늦게 도착 한 우리를 위해 여유 있게 기다려 준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의 문지기 아저씨의 미소도 잊을 수 없다. 파리시내의 교통편과 지리를 아침마다 알려주었던 호텔 지배인 알렉스는 여행의 시작을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이밖에도 무거운 트렁크를 덥석 들어주던 사람들과 길을 알려 준 사람들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익스 큐스 미” 는 천사를 부르는 나의 주문이다.

여행 중에 갑자기 어려운 일이 닥치면 나는 주문을 외워 천사들을 불렀고 그들은 아무런 보상 없이 나를 도와주고 홀연히 떠났다.

도움을 주고도 나의 해결자로 자신을 선택해 주어서 고맙다는 표정까지 짓는 이들,

어이없을 만큼 감사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배운다.

나도 이제 누군가를 돕는 천사가 될 것이다. 여행이 준 가장 큰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