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요동벌판의 장관을 보고 '통곡하기 좋은 곳'이라 했다. 기뻐서건 슬퍼서건 눈물 한 바가지 쏙 빼고 나면 눈물과 함께 빠져나가는 감정뒤에 말간 내가 남는다.
종환자실에서 일반입원실로 옮긴 뒤 사흘 만에 또다시 중환자실로 돌아가야 하는 변수가 생겼다. 남편의 담낭에 염증이 생겨 급히 수술을 하지 않으면 복막염으로 전이될 위험성이 크다고 한다. 수술실 앞에서의 간절함과 조바심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다시 중환자실로 들어가는 남편을 본 뒤, 입원실에 있던 물건들을 챙겨서 집으로 돌아왔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혹시 병원에서 전화라도 걸려올까 봐 잔뜩 불안했다. 다행히 아침이 밝을 때까지 집안은 고요했다. 밤을 무사히 보냈구나 안도하려는 그때 전화벨이 울린다. 중환자 병동의 간호원실 전화번호가 뜬다. 숨이 멎는듯한 순간이다.
"여보세요"
"네 여기 **병원 간호원실인데요 환자님이 자제분들과의 영상통화를 원해서요"
"네???"
갑자기 영상통화라니 도대체 무슨 일인가... 뒤늦게 놀라지 마시라며 환자분은 괜찮다고 간호사가 나를 위로한다.
어려운 수술을 잘 이겨낸 환자에게 주는 포상인지
아님 걱정하고 있을 가족에 대한 배려인지 회사에서 딸은 아빠의 편안한 얼굴을 영상으로 보았다고 한다.
오후 한 시 중환자실의 면회시간이다. 아침에 걸려 온 통화 덕분에 내 마음도 편안해졌다. 입구에서 나눠주는 비닐우의와 장갑, 마스크로 무장을 하고 남편에게로 갔다.
"여보 잘 이겨내 줘서 고마워"
남편은 의식이 또렷했다.
그런데 아침의 분위기와 전혀 다른 이 상황은 뭔가,
남편의 눈이 불안으로 흔들린다. 대충 입모양으로 전하는 말에는 두려움이 가득하였다. 수술부위도 아프고 팔도 저리고 덥고.... 생과 사를 넘나드는 중환자실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심지어 날더러 가지 말고 곁에 있어 달라고 한다. 일반실에서 처럼 간병인의 간호를 받던 때와 다를 것이라고 어제 수술 전에 마음다짐을 그렇게 해줬건만 남편은 엄마에게 고자질하는 아이처럼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불만을 쉼 없이 털어냈다. 문자판으로도 이해가 안 되는 말들을 쏟아붓는다. 남편의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 저러다가 호흡이라도 가빠지고 열이라도 나면 큰일이다. 그때서야 느낌이 왔다. 아침에 가족과의 영상통화는 심리적으로 불안한 환자를 안정시키려는 것이었음을...
'꾹 참자 여보'라고 말했다가 지금 남편에게 참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뱉어낸 말을 도로 주워 담고 싶었다.
면회시간을 초과하여 삼십 분 동안 실랑이를 하다가
밖으로 나왔다. 진이 빠진다.
통곡하기 좋은 곳. 병원의 중환자 가족 대기실은 요동벌판처럼 통곡하기 좋은 곳이다. 누구도 울고 있는 사람을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환자를 면회하러 온 사람들이 다 떠나고 난 텅 빈 가족 대기실에 앉아있으려니 하염없이 눈물이 난다.
아이들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고 의연해야 했던 나의 모습이 점점 무너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착하디 착한 남편이 너무나 힘들고 아픈 고통 속에 갇혀 있는 게 가여워서 눈물이 난다.
"힘내. 이겨내야 돼"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는 내가 무능해 보여서 슬프다.
"이대로 잘 회복이 되시면 내일모레쯤 일반병실로 가셔도 될 것 같아요"
축 쳐진 내 모습이 안스러윘던지 당직의사가 희망을 주는 말을 한다.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이틀만 잘 견뎌보자고 나를 추스르며 밖으로 나왔다.
춥다.
몸도 마음도 모두 다 춥다. 이 계절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