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걸 조건반사라고 하나보다. 작년에 오빠네가 보내준 김장김치가 아직까지 눅진하게 삭아서 남아있고 올해는 동생댁이 맛깔스러운 김장김치를 보내주었으니 한 겨울 김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도 동네 채소가게 앞을 지나갈 때마다 제철을 맞아 풍성하게 쌓아 둔 배추와 무를 보면 사고 싶은 충동이 인다.
예전과 달리 식구도 줄고 살림도 많이 간소해졌음에도 겨울이 되면 거사를 치르듯 김장을 했던 일이 몸에 배어있나 보다.
결국 배추를 주문했다.
원래 김장은 그 양이 많든 적든 혼자서 하면 재미가 없다. 무거운 김치통을 들어주고 간을 봐주는 남편도 옆에 있어야 하고 싱싱한 생굴을 듬뿍 넣고 버무린 김치를 새처럼 받아먹는 아이들도 있어야 한다. 주방에서는 구수한 된장 냄새와 함께 돼지고기 수육이 익어가고 도와주러 온 이웃 친구의 실없는 입담이 양념과 함께 버무려지는 풍경,
이 날은 마치 집안이 장터처럼 소란해야 김장하는 맛이 난다.
올해는 나 혼자 김장을 한다. 솔직히 김장이라고 하기에는 그 양이 적다. 주문한 배추가 그리 많은 양이 아니어서 혼자서도 충분했다. 휴일이 아닌 평일에 날을 잡은 것도 혼자서 하는 이유가 되었다.
이번에는 고춧가루와 젓갈이 들어가지 않는 백김치를 담을 예정이다.
추석 무렵에 햇고춧가루도 미리 장만해 두었고 곰삭은 멸치젓도 다 준비해 두었는데 얼마 전부터 맵고 짠 음식을 몸이 거부한다.
요즘엔 TV프로에 먹방이 자주 나온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매운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보면 내 위가 짜릿해질 때가 있다. 이제는 음식도 자극적인 것보다 순하고 부드러운 게 좋다.
멸치젓과 고춧가루만 들어가지 않을 뿐 백김치에 들어가는 양념도 일반 김치에 들어가는 양념과 다르지 않다. 마늘, 생강을 다지고 찹쌀풀을 끓여놓는다. 배와 양파를 갈아 넣은 뒤 이것들을 물과 함께 섞은 뒤 걸러서 국물을 만들어 놓는다.
무를 채 썰어 파와 함께 속을 만드는 것도 일반김치와 같다. 단지 진한 맛을 가진 젓갈과 붉은 고춧가루만 넣지 않을 뿐인데 일이 수월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자극적이지 않고 순한 음식을 만들면 마음도 차분해지는가 보다. 절인 배춧잎에 켜켜이 소금으로만 간을 한 채를 썬 무로 속을 채우면서는 오히려 책장을 넘기듯 재미가 붙기도 했다.
채반에 담긴 배추도 채 썰어 둔 무도 양념을 우려낸 국물도 모두 하얗다. 강렬한 양념이 빠진 백김치는 순둥순둥한 아이처럼 손안에 착착 감긴다
두 개의 김치통에 양념으로 속을 채운 백김치를 꾹꾹 눌러 담고 그 위에 만들어 둔 국물을 부었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딱 맞아떨어지는 게 역시 음식은 눈썰미가 반이라는 말이 맞는 듯하다.
밖에 두고 하루쯤 익힌 김치를 냉장고에 넣으니 그제야 김치냉장고가 제 역할을 다 하는 것 같다.
나도 마음이 든든해진다.
남편은 도와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던지 힘들게 김장을 하지 말고 내년부터는 김치를 사 먹어도 되지 않겠냐고 한다. 하지만 아직은 내 손으로 만들어서 가족들에게 먹이고 싶다. 오늘처럼 매운 고추와 진한 젓갈을 빼고도 김치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백김치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지금껏 우리의 식탁을 풍성하게 해 준 김장김치의 중심 양념인 고춧가루와 젓갈을 매도한 건 절대 아니다.
고추의 매콤한 닷맛과 오묘한 젓갈의 맛을 어찌 냉대할 것인가, 다만 어떤 이유로 짜고 맵고 진한 젓갈향의 김치를 몸이 거부한다면 대신할 수 있다는 김치를 말하려는 것뿐이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나를 힘들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면 잠시 거리를 두는 게 좋다. 내 몸이 정화되어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백김치처림 슴슴하지만 순수한 맛을 가진 이들과 조우하면서 받아들일 준비를 하면 된다.
기본이 빠진 백김치는 또 저만의 맛을 만들어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