촤리 티 샾(Charity shop)
언제인가 패키지여행을 할 때였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던 가이드가 해외에 사돈의 팔촌이라도 살고 있으면 찾아가세요 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가장 편한 여행은 누군가 그 나라의 이치에 밝은 사람이 곁에 있으면서 함께 하는 여행이라고 알려 준 말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충돌을 하는 경우가 있고 아님 낯선 곳에서 부딪히는 어려움을 극복하다 보면 끈끈한 정이 생기기도 한다. 지금 우리는 너무나 편한 자유여행을 하고 있다. 어렵고 힘든 일은 모두 친구인 J가 도맡아 해 주다 보니 충돌은커녕 내 손으로 직접 기차표 한번 사 본 적 없이 여행을 하고 있어서 어려움을 극복할 일은 더구나 없다.
영국에서 살고 있는 친구는 우리가 이곳에 머무는 동안 한 곳이라도 더 보여주고 싶어서 알뜰하게 계획을 짰지만 우리는 고삐 풀린 망아지들 같았다. 지나가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그곳에서 마냥 시간을 보내느라 계획은 번번이 수정되었다.
정원이 예쁜 집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서로 사진을 찍어 주느라 시간을 허비하기도 하고 상점의 윈도에 자신의 취향에 맞는 물건을 발견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들어가서 흥정을 하였다.
촤리티 샾은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축냈던 장소이다. 촤리티란 자선을 의미한다. 물건을 맡기는 사람도 그것을 파는 사람도 또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도 모두 자선이라는 데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에 참여도가 높다. 우리가 소위 말하는 구제품 가게와는 맥락이 다른 구조였다.
아침에 촤리티 샾 매장 앞에는 누군가가 사용하다가 필요하지 않게 된 물건이 놓여있다. 출근한 봉사자들은 물건을 청결하게 정리하여 매장에 진열하고 판매된 금액은 전액 자선사업에 사용된다고 한다. 물건을 사는 사람들 역시 자선사업에 동참한다는 생각을 하여 구입하는데 의미를 둔다.
처음 촤리티 샵을 알게 된 것은 신발 때문이었다. 발 편한 신발이 필요했던 내가 사고 싶었던 슬리퍼를 촤리 티 샾의 진열장에서 발견하였다. 우리나라의 백화점에서나 판매하던 브랜드의 신발이 그곳에 있는 것도 놀랐는데 값을 보고 더욱 놀랐다. 주저 없이 골랐다. 남이 사용했던 물건이라 조금 석연치 않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여기는 영국이 아니던가, 우리나라에서는 비싼 수입품에 속하는 물건을 싼값에 살 수 있기도 하고 더구나 내가 누군가를 돕는다는 생각이 모든 것을 덮어 주었다.
매장에는 생각보다 고급스러운 물건이 많았다. 옷뿐 만이 아니라 가방과 구두 액세서리 등. 어느 것은 브랜드의 로고도 떼지 않은 새 물건이기도 했다. 처음에 서먹해하던 일행들도 어느덧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촤리티 샾은 이 곳에서는 인기가 많아서 길을 걷다 보면 자주 눈에 띄었다. 언제인가 프랑스의 촤리 티 샾에서 우리나라 모델들이 옷을 사는 모습을 TV로 보면서 궁금했었다. 안목이 높은 사람들은 고급스런 물건을 저가에 살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누가 사용했는지도 모르는 물건인데.., 라며 선뜻 들어서지 않던 깔끔한 성격의 박이 자신에게 딱 어울리는 액세서리를 고른 뒤부터 일행은 아침이면 스스럼없이 촤리 티 샾을 찾았다.
촤리티 샾은 우리에게 공동의 비밀을 만들어 주었다. 어느 날 아침 일행 중 누군가 평소에 보지 못했던 멋진 가방을 들고 나오면
그거 영국제야.?(촤리 티 샾에서 산거야.?)라고 묻는다. 응 자선 좀 했지 ( 어제 촤리 티 샾에서 골랐지)라고 하면 우리만 아는 대화가 성립된다. 비밀 아닌 비밀을 비밀스럽게 말하는 우리는 여행 전보다 조금 더 은밀 해진 것 같다.
요즘 미니멀 라이프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너무나 많은 것을 소유하고 산다.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한 물건이라서 버리지 못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언젠가 사용하게 될지 몰라서 쌓아두고 보는 물건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이사 가면서 버리는 가구들 중에는 새집에 어울리지 않아서 버리는 멀쩡한 것들도 많다.
우리나라에도 촤리 티 샾과 비슷한 기업이 있다는 걸 최근에 누군가 브런치에 쓴 글을 읽고 알았다.
'클로젯 세어'라는 기업은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옷과 가방 등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도록 (내 물건을 빌려주고 수입을 창출하는) 돕는 기업이며 '마켓 인 유 '라는 기업은 상태가 좋은 중고 의류를 매입하여 저렴하게 판매해서 물건을 순환시키는 사회적 기업이다. 이들이 이윤을 몽땅 기부하는 비영리 기관이 아닌데 비해
'굿 윌 스토어'는 영국의 촤리 티 샾과 비슷한 운영체계 같았다. 물건을 내놓는 사람도 기부를 목적으로 하고 물건을 판 금액 전부를 장애인 사업에 기부한다고 들었다. 어쨌든 내 주변에도 이러한 기업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다행이다.
알맞게 사서 쓰고 남에게 물려주는 촤리티 샾이 내 집 근처에 생기기를 바란다. 그럼 나는 촤리 티 샾의 일등 단골손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