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츠월드의 소녀들

by 연희동 김작가



영국에서 가장 가고 싶은 곳은? 이곳으로 여행을 오기 전부터 나는 런던 시내나 템즈강, 박물관과 왕궁보다 코츠월드를 꼽았다. 남자들이 예쁜 여자들을 좋아하듯 여자들은 예쁜 마을을 좋아한다. 마을 사이로 잔잔하게 흐르는 강가에 앉아서 송어가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누군가 정성껏 가꿔 놓은 정원, 하얀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과 창가의 꽃들, 이끼 냄새 가득한 푸른 숲, 거기다가 지금은 오월이 아닌가, 장미꽃이 온 마을에 향기를 퍼뜨리고 있는 예쁜 마을 코츠월드를 가기 위해 나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밀짚모자를 썼다.


오늘은 관절에 무리가 가더라도 굽 높은 구두를 신어야겠다. 왠지 코츠월드에서는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닌 듯 각자 방에서 준비하고 나온 우리들의 복장은 모두 소녀들의 모습이었다. 복장뿐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말에 까르르 숨 넘어가듯 웃어젖히는 것도 사춘기 소녀들과 다르지 않았다.


J의 집에서 사흘을 머문 뒤 우리는 J가 추천한 한인 민박집으로 숙소를 옮겼다. 나만 그런가? 나는 유난히 하얀 집에 이끌린다. 어린 시절 동화책에서 보았던 하얀 집에는 공주님이 살고 있었고 옥탑방의 창문으로는 밤하늘의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이 나이에 그것도 머나먼 영국에서 어릴 적 꿈을 이루게 될 줄 몰랐다.


독일에 있는 회사에 근무하는 남편과 일주일에 한 번 주말 부부가 된다는 하얀 집의 안주인은 조용하고 정갈한 분이었다. 아침과 저녁 식단은 풍요롭고 싱싱하였으며 주인은 식기 하나에 까지 정성을 들여서 우리들을 대접해 주었다. 참 과분했다.


민박집의 마지막 날 가든파티

스톤헨지에서 깨 발랄한 여인들


코츠월드를 가기로 한 날, 첫날부터 감기 기운으로 고생을 하던 J가 결국 몸살이 나고 말았다. 너무 무리한 탓이다. 오늘의 약속을 위해 두 시간이나 되는 먼 거리를 운전을 한다면 앞으로 우리의 여행 일정은 마비되고 말 것이다. J는 쉬어야만 했다.


그때 우리를 위해 기꺼이 나서 준 분이 가족들과 주말을 함께 보내기 위해 어젯밤 직장이 있는 독일에서 영국의 집으로 온 하얀 집의 주인아저씨였다.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보내셔야 하는데 그럴 수 없다고 거절을 하기엔 우리의 복장이 너무나 부푼 소녀의 모습이었다.


''모두들 밀짚모자를 쓰셨네요, 괜찮아요 저도 덕분에 코츠월드 구경도 하고 좋지요, ''


배려심 많은 주인아저씨는 네 명의 소녀들을 태우고 코츠월드를 향해 신나게 달렸다.


코츠월드에서는 누구나 소녀가 된다

영국인들이 노후에 가장 살고 싶은 마을 코츠월드, 자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맑고 얕은 냇물이 마을을 안고 흐르고 강가에 앉아서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 회색의 석회암 건물과 꽃들, 잘 가꿔진 정원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낮은 담장들....,

괴테가 말했다고 하지, 독일은 도시가 아름답고 영국은 시골이 아름답다. 고..., 독일의 도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영국의 시골은 너무나 아름답다. 그리고 왠지 마음이 편안했다.


무릎을 꿇고 땅바닥에 앉아 정원을 가꾸는 사람도,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는 사람도 찻집 주인도 노인이었다. 그들이 동심으로 꾸민 마을 코츠월드에서 우리는 사춘기 소녀처럼 가슴이 부풀어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자신과 집, 동네를 가꾸며 나이들어 가는 그들의 삶이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