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용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어머니 말입니다. 겨우 아이 둘을 키우면서 힘들어 쩔쩔매는 내가 여덟 명의 아이를 낳고 기른 우리 어머니를 생각하면 경이로울 따름입니다. 고백하건대 나는 우리 어머니를 보면서 인간은 어머니와 여자, 그리고 남자, 이 셋으로 존재한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에게도 살아가는 방법이 다 있었더군요, 정확히 두 살 터울씩 나는 여덟 명의 자식들을 키우기가 쉽지가 않았겠죠 그중 가장 충성심 있는 한 놈만 잘 다스려 놓으면 나머지는 그놈이 알아서 다 처리해 줍니다. 그놈이 바로 접니다. 위로 오빠가 네 명 아래로 동생이 세 명, 그 가운데에 떡하니 딸로 태어나서 아버지에게는 세상 귀염을 다 받고 자랐지만 어머니에게는 만만한 동지이며 비서이고 매 받이였습니다.
오빠들이 저지르는 비리를 일러바치는 일도 내 몫이었고 잡다한 집안일은 물론, 말 안 듣는 동생들 앞에서 본때로 야단을 맞는 일도 내 몫이었습니다. 나를 향해 한쪽 눈을 지그시 꿈뻑이면서 입으로는 험한 말을 하는 것은 대체 무슨 교육법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교육이 우리 동생들에게는 무척 잘 통했습니다.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대표로 야단맞는 누나를 보면서 그 불똥이 튀기 전에 자기 할 일을 일사불란하게 찾아서 하곤 했으니까요,
우리 동네에 유일한 오락장인 당구장에서 아버지를 찾아오는 심부름을 도맡아 하면서 당구 기술 중에 쓰리쿠션이라는 게 있는 줄 알았습니다. 공을 직접 때리지 않고 벽을 쳐서 튕겨져 나온 힘으로 공을 맞히는 기술이었는데 우리 어머니의 교육방법과 너무나 흡사해서 나는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튼 나는 어머니의 조기교육 덕분에 눈치 천재, 인내심 귀재, 이해심 수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험한 세상에 이 세가지만 갖추면 어디서나 살아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출세도 할 수 있지요
어느 날 내 아이가 택시를 잡아 탔다고 합니다.
”연희동으로 가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잉”
“아저씨도 고향이 전라도 세요? 우리 엄마하고 고향이 같네요”
”흐미 전라도 사람이 전두환네 동네에 산대요 출세 해 버렸구먼요”
얼떨결에 나는 출세한 사람이 된 적도 있었습니다.
첫 아이를 임신한 줄도 몰랐는데 갑자기 몸이 으슬으슬 춥고 속이 답답하고 자꾸만 잠이 쏟아졌습니다.
엄니 나 이러다가 죽을란 갑네요..., 전화통 너머로 내 죽을병에 대한 어머니의 진단이
끝나고 처방이 내려졌습니다.
그런 소리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잉, 지금 당장 시장에 가서 튼실한 장닭 한 마리를 사거라. 그런 다음 그놈을 물에 폭 고아서 하나도 남김없이 먹그라 그 담에 그 뼈다귀는 말이다 잉 느그집 근처 삼거리에다가 묻어야 한다 잉
이게 무슨 황당한 처방이란 말입니까
지금까지 어머니의 말은 한 번도 거역하지 않은 나였지만 닭뼈를 동네 삼거리에 묻어야 한다는 처방만은 도무지 실천할 수가 없었습니다.
너는 아들을 낳을 거다! 아들 선호 사상의 마지막 세대였던 우리 어머니는 사람 인(人) 자의 형상을 한 삼거리에 닭뼈를 묻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비방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고 계셨습니다. 하기야 전국에 있는 돌부처의 코가 납작한 것에 비하면 그깟 비방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은...,
그 해 가을, 어머니의 믿음이 무색하게도 나는 건강한 딸아이를 낳았습니다.
내가 어머니의 말을 어긴 건 그것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먹은 백숙 맛이 지금까지 잊히지가 않습니다. 뽀얗게 우러난 국물과 함께 야들하고 쫄깃하게 찢어지는 닭살을 소금에 찍어 먹었던 그 맛, 전혀 먹고 싶지도 생각나지도 않았던 음식인데 닭 한 마리를 삶아서 혼자서 거뜬히 해치운 나는 입덧은 물론 열 달 동안 누구보다도 건강한 산모로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였습니다. 내가 닭백숙을 좋아하게 된 것은....,
아마도 내가 가장 자신 있게 만들 수 있는 요리는 닭백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요리랄 것도 없지요 깨끗이 씻은 닭을 물에 넣고 삶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요 때론 인삼도 들어가고 마늘, 황기. 전복 등 비싼 부재료로 맛을 내기도 하지만 어머니가 처방해 준 그 날의 백숙 맛을 재현 해 내기엔 어림도 없었습니다. 그 맛을 내기 위해 나는 지금껏 수많은 닭을 삶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딸아이가 자신의 집에 다니러 오신 시부모님께 어떤 음식을 대접해드리면 좋겠느냐고 상의를 했을 때 나는 선뜻 닭백숙을 추천하였고 남편과 함께 한 달 동안 해외로 배낭여행을 갔을 때도 나는 닭백숙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며느리 덕분에 몸보신 잘하고 간다며 흡족해하시는 사돈처럼 나는 "꼬끼오" 대신 " 쿠쿠르 쿠크"라고 우는 프랑스 닭을 삶아 먹고 건강하게 배낭여행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내일은 중복입니다.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딸네 식구들을 불러서 중복 잔치를 할까 합니다. 여름이면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는 사위를 위해서 황기와 엄나무 가지를 넣은 백숙을 끓여 주어야겠습니다. 마늘과 대추도 듬뿍 넣어야겠지요,
뽀얀 국물이 우러나는 야들한 닭백숙을 먹을 때면 우리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어머니의 닭백숙 처방은 그 어떤 편작의 처방보다도 영험하였습니다.
살면서 마음이 허전할 때면 나는 튼실한 닭 한 마리를 삶습니다.